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06 조회수1,973 추천수9 반대(0)

1970년이니까 52년 전입니다. 당시 성당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밖으로 행렬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성체거동이었습니다. 지금은 교통상황도 그렇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기에 그런 행사를 하는 성당이 거의 없습니다. 풍수원 성당이나, 장호원의 감곡 성당이 성체거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체현시, 성체강복, 성체거동과 같은 신심은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봅니다. 초대교회는 오랜 박해를 견디고 신앙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곳곳에 성당이 세워지고, 감실에 성체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자유에 감격한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였습니다.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성체조배를 하는 것도 감격이었습니다. 성체에 대한 신심은 성체강복과 성체거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중남미에는 이런 전통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성체에 대한 신심은 지금도 세계성체대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1989년에 44차 세계성체대회를 주관하였습니다.

 

한국교회도 박해를 받으면서 성직자 없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미사 없이,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신자들은 미사가 그리웠고, 성체가 고팠습니다. 드디어 1886년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한국에도 성당이 세워지고, 신자들은 성체조배, 성체현시, 성체강복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03년 처음으로 용산 신학교에서 성체거동이 있었고, 이런 전통은 197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성체거동은 주교님들의 관심이 있었고, 신학생들과 신자 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습니다. 관공서에서도 성체거동 행렬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였습니다. 성체거동은 신자들에게는 자부심을 주었고, 비신자들에게는 천주교를 알리는 선교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성체거동의 신심은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1984103위 시성식과 같은 행사의 기틀이 될 수 있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미사를 자국어로 봉헌 할 수 있게 되었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성체거동의 신심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철학과 신학의 이성적인 토대 위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상생활은 전례, 신심행사, 친교, 나눔의 감성적인 부분도 필요합니다. 이성이 없는 감성만의 신앙은 광신이 될 위험이 있지만, 감성이 없는 이성만의 신앙 또한 건조하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우리의 발과 손입니다. 우리가 오랜 전통의 설날, 추석을 기다리는 것은 가족은 이성으로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21세기의 밝은 세상에 초를 밝히는 것은 초가 가지는 전례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성탄과 부활의 전례와 축제는 우리의 이성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삶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추어진 우리의 전례와 축제가 재현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 앉은뱅이, 나병 환자, 중풍 병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죽었던 사람까지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 참된 평화와 참된 자유의 나라가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루라는 시간을 주십니다. 하루라는 시간을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가슴이 따뜻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계산하고 따지기보다는 순수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통하는 주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만 잘 지키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즐겁고 보람된 생활이 될 것입니다. 남에게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먼저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충실하게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둘을 식별하는 지혜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도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이웃을 너그럽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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