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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으로 영혼의 때를 지울 수 있을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07 조회수897 추천수3 반대(0) 신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신을 알려면 또 성찰을 하려면 자기내면을 들여봐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겉을 보면서 내면을 보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단 겉모습에서는 뭔가 보이기 때문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 눈으로 확인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도 많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가 자신의 눈이 맑아야 합니다. 자신의 눈이 맑지 않으면 어떤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성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찰은 하나의 관찰입니다. 관찰을 하려고 하는데 잘 볼 수가 없다면 어려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관찰의 근원은 바로 눈과 관련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일단은 먼저 눈이 열려야 볼 수 있습니다. 그 눈은 단순히 보이는 것만 보고 그 형체가 어떤지를 우리의 뇌가 인식을 해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사과와 배는 똑같은 과일입니다. 우리는 일단 사과와 배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모양만으로는 구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모양을 흑백 사진기로 촬영을 했다면 쉽게 구분을 할 수가 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과와 배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색깔입니다. 색깔로 과일을 구분할 수 있듯이 우리의 내면 상태를 알 수 있는 눈을 가지려면 그냥 단순히 우리가 보는 시각적인 눈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마음의 눈이 명징한 상태가 되어야만이 제대로 우리의 마음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은 시력이 좋지 않으면 눈이 좋아지는 약을 먹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은 어떻게 하면 맑아질까 하는 고민을 해봤습니다. 

 

눈의 시력은 인간이 노쇠하면 자연적으로 퇴화가 되기 때문에 떨어지는 게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마음의 눈은 시간이라는 것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마음의 눈은 인간의 욕심과 같은 탐심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마음은 청춘이다. 이 말은 어떤 말과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으로 말하면 지금 육체는 늙었지만 마음은 늙지 않고 예전과 그대로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이 말은 또 달리 표현하면 마음의 때가 묻지 않았을 땐 맞는 말입니다. 사람은 이처럼 될 때가 있지만 보통의 경우는 세월이 흐르면서 또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의 순수한 마음 그대로 유지를 하는 경우가 좀처럼 드문 게 사실입니다. 그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파에 찌들다보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때도 금방 묻은 때는 옷을 보더라도 때가 금방 묻었을 때 바로 세탁을 하면 깨끗하게 되지만 찌들었을 땐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을 통해서 알 수가 있을 겁니다. 바로 우리 마음의 눈도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됩니다. 마음의 눈이 혼탁하면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세상도 깨끗하지 못하게 되는 이치와 같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사람과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도 여기서 결판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누구나 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인데 누구는 하느님을 체험하고 누구는 체험하지 못하는 것의 근원적인 이유는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맑느냐 혼탁하냐에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길과 정답은 의외로 아주 쉬울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답은 '사랑'입니다.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보려고 하면 자연적으로 그에 따라 마음의 눈도 혼탁하다면 정화가 될 것입니다. 마음의 눈에 있는 수정체가 마치 수정처럼 맑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도 우리의 가슴에 전달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더라도 하느님의 심판대에서 만나는 하느님과의 조우를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때가 아니라 먼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심판대 앞에서 만나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또 한편으로는 설램으로 기대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기대가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바로 세상을 살면서 하느님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은 하느님을 언젠가 만난다는 그 사실 자체가 행복한 꿈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많이 몸소 체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길은 그냥 되는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힘은 바로 우리가 늘 접하는 말씀에 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더러운 영혼을 씻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지게 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랑은 그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말씀을 먹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바로 내 영혼이 영원의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느님 나라에 입성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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