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6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12 조회수2,119 추천수11 반대(0)

가톨릭다이제스트에서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흑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의 이야기입니다. 외모 때문에 따돌림을 많이 당했습니다.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운명처럼 한 여인을 만나고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 둘 사이에 하느님의 선물로 예쁜 아이가 생겼습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가정에 큰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감전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한쪽 눈과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아내는 간난아이를 업고 남편의 병수발을 들었습니다. 아내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아픈 남편의 고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남편은 열심히 하는 아내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부부가 어머니처럼 따르는 수녀님이 병실에 자주 찾아왔고, 부부는 다시 힘을 냈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파도처럼 다시금 형제에게 찾아왔습니다. 남은 한 쪽 눈도 점차 시력을 잃어갔습니다. 다행히 수술을 하면서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의족을 얻게 되었습니다.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장애인들을 위한 상담을 하면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하느님께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가 제게는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우리는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원하는 것들이 채워지면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재물, 권력, 명예, 성공을 채우고 싶어 합니다. 수영장이 딸린 넓은 집이 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 있고, 어딜 가나 존경받는 명예가 있고, 명품으로 치장하고 여행도 다닐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한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많은 시간 힘들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얻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기도 합니다. 반대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아마존의 원주민, 아프리카 내전의 주민, 고향을 떠나 방황하는 난민, 가난한 나라에서 사는 주민들의 모습을 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그분들은 채울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배우고 싶어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못하는 삶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꽃은 피고, 사랑은 열매 맺고, 희망이 함께 하는 것을 봅니다. 어린 시절입니다. 지금보다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했고, 잠자리도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해질녘까지 뛰어놀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둥근 밥상에 모여 기도하던 가족이 있었습니다. 꽃과 구름과 들판이 있었습니다.

 

오늘 성서말씀에서 우리는 행복의 또 다른 기준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원하는 것을 채우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고통과 슬픔은 먹구름처럼 다가오지만 그것이 하늘의 태양을 없애지 못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가진 사람은 고통과 슬픔 뒤에 밝게 드러나는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걸어간 길입니다. 예언자들이 걸어간 길입니다. 성인과 성녀들이 걸어간 길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가난, 고통,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였던 이 시대의 신앙인들이 걸어간 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행복은 소유함에 있지 않다고 선포하십니다. 가난할지라도, 슬픔 속에 있을지라도,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박해를 받을지라도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슬픔, 고통, 아픔을 위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유할지라도, 성공했을지라도, 권력을 가졌을지라도,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하느님께 신뢰를 두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것은 재물, 권력, 명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아야 할 것은 사랑, 헌신, 나눔이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멀리 있는 길을 항해하는 배가 폭풍을 만나지 않고 조용한 바다로만 갈 수는 없다. 멀리 있는 길을 항해하는 배에게 폭풍은 벗과 같은 것이다.” 어떤 분은 어쩌면 지금 삶의 먼 항해 길에 폭풍을 만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삶이라는 배가 험한 파도에 몹시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삶의 여정에서 다가오는 폭풍우를 피하고, 그 폭풍우를 벗어나기를 기도하기보다는 그 폭풍우를 이겨내고 그 폭풍우와 맞서 싸울 힘과 용기를 청할 수 있기를 기도하였으면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폭풍우의 한가운데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고, 그 주님의 힘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참된 삶의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가야할 곳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입니다.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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