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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13.,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12 조회수1,798 추천수3 반대(0) 신고

 

                                          루카 6, 17. 20-26(연중 6 주일)

 

오늘 여러분은 행복하세요? 우리 앞에는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이라는 두 길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참 행복의 길’과 ‘불행의 길’을 제시해줍니다.

 

오늘 <제1독서>인 예레미아서에서는 말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예레 17,5)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에레 17,7)


그리고 이를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이 덧없음을 말하면서’(1코린 15,17),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1코린 15,19)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축복과 행복의 길은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행복”은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강령입니다. “행복”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은총이며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행복으로 제시되고 있는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신 당신이 다스리는 나라이기에, 행복은 곧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 자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태오의 ‘여덟 가지 행복’을 네 가지로 함축시켜 말하면서, 동시에 네 가지의 불행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선언은 제자들에게 직접 2인칭(너희)으로 선포되고 있습니다. 곧 제자들은 부유한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고, 배부른 사람들과는 반대로 굶주리는 사람들이며, 웃는 삶들과는 반대로 우는 사람들이고, 좋은 대우를 받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온갖 잔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 마치 모순처럼 보입니다. 만약 우리가 현실의 세속정신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행복선언은 현실을 넘어있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현실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더 깊은 의미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주는 동시에, 삶에 대한 태도의 방향전환을 요청합니다.

한 마디로, 모든 축복은 첫 번쩨 축복, 곧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에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의 약함과 죄스러움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주님께 신뢰를 두고 의탁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들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자신들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임을 인정하는 이들입니다. 생명도, 건강도, 힘도, 돈도, 그 어떤 선이든 모두가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행복해 하고, 감사하고, 나누는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것,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6)에 대해서만 잠깐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누군가가 칭찬해주고 호의적으로 말해주고 좋게 말해주면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반면에 꾸중하고 질책하며 나쁘게 말해주면 우울해하고 불행해 합니다. 그토록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고, 비위맞추며 눈치보고 타인의 말 한마디에 우지좌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눈이 하늘을 보고 있지 않는 까닭일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혹은 인간적인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일, 곧 하느님의 뜻 안에서 관계 맺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인간관계를 개선하여 좋은 관계를 맺고, 단순히 공동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도, 단지 인간적인 아름다운 세상이나 복지사회를 위해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오손 도손 재미나고 즐겁게 살고자 하는 것도, 그저 열심히 사랑하며 미워하지 않고 살고자 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미움을 벗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 속에서 사랑하는 일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벗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고통과 슬픔 안에서 사랑하고, 바로 그것을 통하여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1요한 3,18)하는 일이요, ‘먼저 하늘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마태 6,33) 일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곧고 좁은 길을 걷는 이들이 모든 사람에게 칭송과 존경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어둠의 유혹과 은총에 대한 저항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만 듣는 사람이 아니라, 좋지 않게 말하는 사람이 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그러한 말이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인지는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루카 6,22).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솟은 기도 -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6,20)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다 내려놓고, 당신만을 차지할 것입니다.

굶주릴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 외에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도 마음을 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울 줄을 알게 하소서!

죄를 슬퍼하되, 자비 안에서 위로받고 기쁠 것입니다.

진정,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오로지 당신의 것이오니,

배척받고 모욕 받으면서도 기뻐할 줄 알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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