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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 연중 제6주간 수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15 조회수1,136 추천수3 반대(0) 신고

1독서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1,19-27
19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20 사람의 분노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현하지 못합니다.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22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3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
25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26 누가 스스로 신심이 깊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아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신심은 헛된 것입니다.
27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일

무엇보다도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는 19.27절에 주로 이 주제와 관련이 있는 단절어를 보았다. 19.21절은 말씀을 듣는 태도를 말하고, 19.20절은 분노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20

20절은 본디 문맥과 상관없이 전해온 말(단절어)인데, 필자가 19ㄷ절의 분노한다와 관련시켜 이 자리에 삽입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의 의는 바오로가 말하는 이와 다르며, 오히려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의와 비슷하다. 야고보가 말하는 하느님의 의는 뜻이 담긴 계명,특히 사랑의 계명과 그 계명을 따르는 생활을 가리킨다(3. 18 참조)

 

21

21절은 영세자들을 위한 훈계를 연상시킨다. 더러움과 사악은 이방인으로서의 과거를 말하는 것 같다. “뿌리내린 말씀18ㅈ러의 진리의 말씀과 같은 것으로 사도들의 전통교리를 가리킨다. 히브리어의 영혼은 생명체인 인간 전체를 뜻한다.

 

22

말씀을 듣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반드시 실천한다는 뜻도 포함한다. 실천이 야고보의 최대 관심사다.

 

25

자유의 완전한 법이란 모세와 법을 완성하는 예수의 교사, 특히 사랑의 계명이다. 이것은 사람을 억압하는 법률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과 목표에 걸맞은 참된 자유로 이끄는 법이다.

 

26

야고보서가 집필될 무렵 교회 공동체에서는 종교에 관한 논쟁이 많이 벌어진 것 같다.

 

27

고아와 과부들은 곤란한 처지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대표적 존재다. 이런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이미 구약의 대표적 존재다. 이런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이미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가장 절실한 윤리적.종교적 요구였고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심판의 평가기준이 된다. 야고보가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실제적이며 평범한 신앙생활이다.

 

세속이란 이방인들의 사고방식과 개인적인 욕심을 의미한다(4.4 참조).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22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벳사이다의 소경을 고치시다

여기 이적사화는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신 이적사화와 매우 닮았는데 두드러진 공통점을 지적하면. 사람들이 예수께 병자를 데려오고, 예수께서 병자를 따로 데려나가서, 환부에 침을 바르신다. 그런 까닭에 두 이적사화는 전승과정에서 짝지어 전해온 이중이적사화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는데 예를 들면, 여기서는 단계적으로 고쳐주신다. 단계적 치유는 그리스 이적사화에 더러 나오는 소재다. 치유이적 사화 끝에 으레 나오는 목격자들의 반응이 안 보인다. 시몬의 장모를 고치신 이적사화에도 경탄이나 경탄사가 생략되었다.

 

22

벳사이다는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드는 하구 동쪽 호숫가에 자리잡은 어촌이다.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필립보의 고향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그곳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벳사이다에 대해 불행을 선언하셨다.

 

26

눈을 뜨게 된 사람을 보내시며 집으로 갈 것이지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신다. 마을 밖에 있는 외딴집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씀은 마르코가 메시아 비밀사상과 관련하여 자주 내세우는 함구령의 일종이다. 예수께서는 별난 기적쟁이로 소문나는 것을 싫어하시고 다만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받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 그레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기적사건을 소문내지 말도록 명하셨다는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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