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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6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16 조회수1,716 추천수2 반대(0) 신고

 

최근에 시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누구나 어려서는 시력이 특별한 이상이 없는 이상 좋은 시력을 유지하곤 합니다. 시력이 좋을 땐 눈의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7년쯤부터 안경을 쓸 때도 안경이 약간 시력을 보정해 주니 그럭저럭 크게 불편함을 모르고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2년 전에는 안경을 쓰는 것이 번거로워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느새 안경을 써도 시야가 맑지 못해서 안경점에서 다시 시력 검사를 하는데 노안이 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노안이라는 말을 듣고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말을 듣기 전에 교구청에 있는 젊은 자매님이 언젠가 노안이 와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속으로 의아했습니다. 왜냐하면 노안의 개념을 단순히 글자가 상징하는 의미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눈이 늙었다. 즉 노인의 눈이런 개념으로 생각을 한 것 때문에 두 경우의 말에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시력은 다른 기관보다 자연적인 노화가 더 빨리 오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더라면 좀 더 잘 그런 말이 의미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지금이야 기술이 발달돼 안경의 도움으로 세상을 정상적인 시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눈이 먼 사람이 시력이 회복이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안경도 없었을 텐데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손이 안경 역할을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안경은 계속해서 착용해야만 자신의 시력을 보정받을 수 있지만 예수님의 손 안경은 두 번 잠시 착용하는 것으로 그것도 완전히 시력이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손이라고 했지만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같은 개념이지만 손을 단순히 신체의 손이라는 개념보다는 손길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며 묵상을 해봤습니다. 좀 더 묵상이 풍유로워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복음에서는 단순히 두 번으로 예수님의 손길을 거쳐서 회복됐다고는 나오지만 이 의미를 좀 더 지협적으로 범위를 축소시켜서 생각해본다면 전능하신 분의 손길도 한 번만으로도 얼마든지 회복이 될 수 있게 하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두 번째에 회복이 되는 걸 보니 이런 묵상을 해봅니다. 우리도 사실 좀 더 시야를 확대하면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손길이 없다면 과연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손길을 자신이 다만 느끼지 못했을 뿐일 것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에도 신심이라는 것이 나오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믿음과 신심이 좋아서라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다 예수님의 손길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실제는 이렇게 생각을 해야 정상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런 상황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만 그걸 외부에는 쉽사리 드러내지 못했을 뿐이지 내심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은연중에 그런 사실을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접적인 표현을 하면서는 잘 하기 힘들지만 남과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서 자신을 치켜세우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그건 자신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것도 설사 그렇다고 해도 다 주님의 손길이라는 도움이 없다면 힘든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눈이 잘 보이지 않으면 크게 불편합니다. 아무리 안경의 도움으로 잘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눈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건 단순한 불편함만 가져다주지만 우리는 영적인 눈이 막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다가옵니다. 영안이 열려 있지 않게 되면 영원의 세상을 동경하는 갈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뭔가를 봐야만 그걸 욕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영안이 항상 열려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방법은 수도 없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으로 한정해서 생각해본다면 말씀을 계속 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는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눈의 노화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영안에는 노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또 하나의 비장의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오늘 독서 마지막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긴 하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은 영안이 맑을 때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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