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2.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19 조회수1,74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2년 2월 19일

연중 제6주간 토요일

복음 마르 9,2-13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11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13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요즘 고등학교 다니는 남학생 중에는

이마에 여드름이 나면 학교가 아니라

피부 관리샵에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자신을 온전하게

볼 수 없습니다일부러 거울을

보지 않는 한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결국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은 모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자기를 위해 피부를 가꾸고,

멋진 옷을 입는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다시 말해 남을 위해서 하고 있을 뿐입니다.

군대에 있을 때또 신학교에서

기숙사 생활할 때 거의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보여 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훨씬 자유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타적인 사랑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사랑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보여주기만을 위한 것은

사랑인 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이타적인 사랑은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주님의 시선에 집중합니다.

사랑의 실천 자체에 기쁨을 얻지,

남의 평가에 기쁨을 얻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떠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러운 변모 장면을 보여주십니다.

이를 마르코 복음에서는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라고 전합니다.

태양과 빛의 찬란한 광채는 하느님의 현존을

반영하는 것으로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얼굴이 너무나 빛나서

사람들이 쳐다볼 수가 없었다는

기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복음의 예수님 모습은 옷조차도

새하얗게 빛났다고 표현하면서

더 영광스러운 하느님의 광채가

빛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

그런데 여기에 이스라엘이 가장 존경하는

모세와 엘리야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베드로가 여기에 지내면

좋겠다고 말합니다예수님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잊은 것입니다.

인간 구원을 위해 오신 주님의 사명을 잊고,

그냥 영광 안에만 머무르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였던 세상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예수님의 사랑은 편한 곳에

머무는 사랑이 아닙니다.

또 보여주기만을 위한

화려한 사랑도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그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내가 옳기만을 바랄 게 아니라

어떻게 틀렸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늘 틀리기 때문이다(마크 맨슨)

(라파엘로 산치오, '주님의 거룩한 변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