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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 연중 제7주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19 조회수1,004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

<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 주셨지만, 저는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26,2.7-9.12-13.22-23
그 무렵 2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뽑은 부하 삼천 명을 거느리고
지프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아 그곳으로 내려갔다.
7 다윗은 아비사이를 데리고 밤을 타서 군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때 사울은 진지 안에서 머리맡 땅바닥에 창을 꽂아 놓고 잠들어 있었다.
아브네르와 그의 군사들도 사울을 둘러싸고 잠들어 있었다.
8 아비사이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오늘 원수를 장군님 손에 넘기셨으니,
이 창으로 그를 단번에 땅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습니다.”
9 그러나 다윗이 아비사이를 타일렀다. “그분을 해쳐서는 안 된다.
누가 감히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고도 벌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
12 다윗은 사울의 머리맡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왔다.
주님께서 그들 위에 깊은 잠을 쏟으시어 그들이 모두 잠들었기 때문에,
다윗을 본 사람도 알아채거나 잠을 깬 사람도 없었다.
13 다윗은 맞은쪽으로 건너가 상대와 거리를 멀리 두고
산꼭대기에 서서, 22 응답하였다.
여기 임금님의 창이 있습니다. 젊은이 하나가 건너와 가져가게 하십시오.
23 주님은 누구에게나 그 의로움과 진실을 되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지만,
저는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다윗은 사울에게, 주님께서 사울을 자기 손에 넘겨주셨지만, 자신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2독서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45-49
형제 여러분, 45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46 그러나 먼저 있었던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은 그다음입니다.
47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48 흙으로 된 그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속한 그분께서 그러하시면 하늘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49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45

자연적 생명체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프쉬케또는 간단히 살아 있는 혼”,“살아 있는 존재”. 이 표현은 창세 1장에서 사람뿐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적용된다. 바오로는 프쉬케를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는데, 하나는 히브리어 네페쉬에 해당하는 뜻으로 생명을 뜻하거나 해당하는 사람 자신을 뜻한다. 다른 한편, 바오로는 프쉬케를 여기 45절에서처럼 생명을 주는 원리라고 볼 수 있는 에 대조시켜 사멸할 생명()”라고 볼 수 있는 에 대조시켜 사멸할 생명()”의 의미로도 드물게 사용한다.

 

마지막 아담”, 즉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다는 그리스도론적 언표다. 바오로에게서도 생명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49

원어는 에이콘. “. 모습. 모사등을 의미한다.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원수를 사랑하라

27-28절에는 원수 사랑의 세 가지 사례가 있다. “미워하는 사람들. 저주하는 사람들. 헐뜯는 사람들따위 원수들을 위해서 선행을 축복하며 기도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형리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하니 그분은 원수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다.

 

29

앞뒤 문맥은 여러분에게하신 말씀인 데 비해서 29-30절은 당신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 내용인즉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악을 감수하여 악순환을 차단하라는 것인데, 그 세 가지 사례는 한결같이 충격적이다. 성현이 아닌 이상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구체적인 요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선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만 하는 법규가 아닐 것이다. 그 이유인 즉, 예수님은 법규를 제정하는 입법자가 아니셨기 때문이다. 사실 그분은 율사들 계열에 속하기보다는 예언자 계열에 속했던 것이다.

 

또한 대제관의 경비병이 예수님의 뺨을 때렸을 때 그분은 다른 뺨을 돌려대지 않고 오히려 항의하신 사실도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지침을 업신여겨도 좋다는 말인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여기 구체적 지침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유다교의 동태복수법을 넘어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시오는 반복수법으로 환원되고, 또한 반복수법은 마침내 이웃 사랑으로 환원된다. 또한 29-30절의 구체적인 지침은 결국 이웃 사랑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라 하겠다. 29절의 병행문이 마태 5,39-40에 있는데 그 표현과 내용이 약간 다르다. “오히려 누가 당신한데 당신의 당신의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그에게 다른쪽 뺨마저 돌려대시오. 당신을 재판에 걸어 당신의 속옷을 가리려는 사람에게는 겉옷마저 내주시오.”

 

30

30절의 병행문이 마태 5.42에 있는데 그 표현과 내용이 조금 다르다. “당신에게 청하는 사람에게는 주고, 당신에게 꾸려는 사람은 물리치지 마시오.”

 

31

31절은 매우 값진 훈계인 까닭에 황금률이라 한다. 황금률은 이미 예수 이전에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예로, 힐렐은 너에게 기껍지 않은 일을 네 이웃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자공과 공자 사이의 이런 대담이 논어에 전해온다. “자공이 남이 나에게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나도 남에게 그것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하고 말하자, 공자는 자공아, 네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금률은 사랑의 이중계명과 함께 예수께서 가르치신 윤리규범 중 가장 포괄적인 원칙이다.

 

32

비록 죄인들이라 할지라도 반대급부가 있는 경우에는 상대방을 돌보는 법. 그러나 제자들은 반대급부를 바라지 말고 상대방을 돌봐야 한다는 사례 세 가지가 32-34절에 있다. 이 가운데서 32-33절의 변체가 마태 5,46-47에 있다. ”사실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여러분이 무슨 보수를 받겠습니까? 세관원들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여러분이 무슨 넘치는 일을 한단 말입니까?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앉습니까? 그러나 34절은 마태오에 없는데, 루카는 어록에 있던 마태 5.42를 참작하여 34절을 만들어 덧붙였을 것이다.

 

35

루카는 27. 33.34절을 합쳐서 36ㄱ절을 만들었으리라. “그러니 여러분의 원수들을 사랑하고 잘해 주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시오(34).”

 

35ㄴ절에서는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동기를 두 가지 제시한다. 우선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들이 되는종말론적 보상을 받기 위함이지만, 종국적으로는 하느님의 가이없는 인자하신 처사를 본받기 위함이다. 35ㄴ절의 변체가 마채 5,45에 전해온다. “여러분은 하늘에 계신, 여러분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악한 사람들에게나 선한 사람들에게나 당신의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들에게나 의롭지 못한 사람들에게나 비를 내려 주십니다.”

 

36

36절은 본디 단절어. 내용인즉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처사를 본받으라는 것인데. 공관복음의 경우 35.36절에만 하느님의 모방사상이 명백히 드러난다. 36절의 변체가 마태 5.48에 있다. “그러니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완전하게 되시오.” 36절은 어록을 고스란히 옮겼고 마태 5,48은 어록을 고쳤다. 현재의 문맥에서는 원수 사랑 집성문을 끝맺고 자비에 관한 집성문(37-42)을 유도한다.

 

판단하지 말라

37.38.38.39.40절에 다섯 가지 단절어가 있고 41-42절에 한 가지 비유를 덧붙였다.

 

37

어느 누가 지금 이웃을 대하는 그대로 종말에 하느님께서도 그를 대하시리라는 종말론적 인과율이다. 37절의 변체가 마태 7,1-2ㄱ에 있다. “판단하지 마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판단받지 않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판단하는 그대로 여러분도 판단받을 것입니다.”

 

38

38ㄱ절은 어느 누가 지금 이웃에게 베풀면 종말에 더 후하게 받으리라는 단절어. 종말론적 은총률이다. 마르 4.24 끝에도 간략하게나마 종말론적 은총률이 있다. 마태 20,1-15에도 같은 사상이 있다.

 

38ㄴ절은 종말론적 인과율. 같은 단절어 변체가 마태 7,2ㄴ에도 있고 마르 4.24에도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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