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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21 조회수3,617 추천수13 반대(0)

나는 누구인가?’ 인류의 오래된 질문입니다. 직책, 성별, 국적, 성격, 종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성직자는 오랜 시간 저를 규정한 정체성입니다. 남자이며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유순하지만, 급한 성격입니다.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인지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제자들은 예언자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셨음을 볼 때,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누가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까? 율법학자는 대답합니다. 강도당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질문하십니다. ‘너 어디에 있느냐?’ 너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은 너는 무엇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너는 누구냐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종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합니다. 불교는 깨닫는 존재라고 합니다. 깨닫는 사람은 번뇌를 벗어나서 해탈에 이른다고 합니다. 시간, 공간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재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재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이 됩니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살면서 영원한 생명을 체험하게 됩니다. 시간, 공간은 물론 육체의 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됩니다. 직책, 성별, 성격, 국적, 성격으로 규정하는 나는 정신에 옷을 입혀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것들은 바람 불면 떨어지는 낙엽과 같습니다. 진정한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영원을 꿈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자신을 이야기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직책을 가졌어도, 명예를 가졌어도, 재물을 가졌어도, 권력을 가졌어도 그 옷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비록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배운 것이 부족할지라도, 장애인일지라도, 가난할지라도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베드로 사도의 자리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생전에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자리를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고, 동생 안드레아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을 만난 뒤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교회는 사도들의 으뜸이라고 생각하였고, 기꺼이 베드로에게 교회의 사도좌의 권위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죽기까지 예수님의 뒤를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3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따라서 우리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고백을 합니다. 베드로 사도를 계승하는 교황은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지금 이곳에서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나누는 이곳이 이미 천국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신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조건으로 용서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권위는 주장하고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권위는 유리와 같아서 쉽게 깨지고,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아낌없이 내어주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 권위는 불의와 폭력 앞에서 위축되지 않으며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기 마련입니다. 나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나의 권위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권위가 아닙니다. 나의 체면과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권위일 뿐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참된 권위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 나눔과 희생으로 사라지지 않는 우리들의 자리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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