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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 화요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21 조회수1,167 추천수2 반대(0) 신고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사도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본디 고대 로마에서 222일은 가족 가운데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이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이를 기억하는 관습에 따라 4세기 무렵부터 이날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무덤을 참배하였다. 이것이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의 기원이다. 그러나 629일이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를 함께 기념하는 새로운 축일로 전해지면서, 222일은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최고 목자로 공경하는 축일로 남게 되었다.

 

 

 

 

1독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인 원로>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5,1-4
사랑하는 여러분,
1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원로들에게 같은 원로로서,
또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2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3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4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자기 직분을 다하라

5,1-5는 장로들과 일반 신도 두 부류에 대한 훈계다. 장로들에 대한 훈계는 말마디들이 1디모 3,2-7;8-13; 디도 1,7-9와 비슷하지만, 여러 소재가 사도 20,17-36에 나오는 바오로의 고별사와 매우 비슷하니, 그런 전승자료를 자유로이 원용한 것 같다. 교회 직분에 관해서도 양쪽 다 같은 제도를 암시한다. 이 대목에 엿보이는 교회 제도는 65-80년까지 지배적인 제도였을 것이다. 바오로의 교회에서는 아마 “감독자와 봉사자의 제도가 채택되었던 것 같다.

 

1

장로들이 다스리는 교회제도는 유다교에서 비롯했다. 초기에 얼마 동안은 이 장로중심의 제도와 필립 1.1에서 말하는 감독자와 봉사자중심의 교회제도가 병행했던 것 같다. “같은 장로로서는 이 서간의 필자가 시몬 베드로일 경우 겸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서간이 베드로의 친서가 아닌 경우에는 필자가 실제로 장로로서 다른 장로들과의 일치의 유대를 표현하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리스도 고난의 증인이란 목격자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으로서 수신인들에게 고난을 참아받으라고 말한 자격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니면 단지 복음의 진리를 증언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도 있다. 묵시록에 나오는 증인도 역시 고난을 겪는다.

 

2

필자는 당시 교회에서 통용된 직분지침을 자기 나름대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하느님 양떼를 잘 치십시오하는 목자 표상의 배경은 구약이다. 야훼 친히 백성의 목자로 자처하시고 또한 다윗 같은 좋은 목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필자는 이 상징어를 그리스도에게 작용하여 그 목자 직분에 동참하는 장로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으로 처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못해 하지 말고는 아마 장로 직분을 위임받은 사람은 그 어려운 일을 꺼려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그 직분을 위임받은 것은 하느님의 뜻이다. 자신해서 적극적으로 수행하라는 것이다.

 

3

맡겨진 몫은은 돌보아야 할 양떼즉 교회다. “폭군으로서 군립하지 말라은 말은 아마 마르 10.42-45; 루카 22,24-27에서와 같은 예수의 가르침을 배경으로 한 것 같다.

 

4

목자들의 으뜸은 예수다. “월계관은 구원의 상징이다.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베드로의 고백

10.13-20은 마태오가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을 옮겨쓰면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끼워넣은 것이다. 마태오 복음을 양분하는 경우 흔히 갈릴래아와 그 주변에서의 활약상 그리고 예루살렘으로의 이동과 예루살렘에서의 활약상으로 나눈다. 그러므로 마태 16,13-20은 갈릴래아와 그 주변에서의 활약상을 마무리하는 대단원이다.

 

13-26절은 예수의 정체에 관한 세 가지 여론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한 신앙고백을 대담형식으로 엮었다.

 

14

마르 8.29에선 예언자들 중 한 분이라고만 하는데, 마태 16.14에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중 한 분이라고 고쳐썼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도성을 위해 많이 기도하는 분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는 예레미야가 죽지 않고 승천해서 저승에 있다는 사살이 깔려 있겠다. 사람들은 그런 예레미야 예언자가 재귀하여 예수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여겼던 것 같다.

 

16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이 마르 8.28에선 단순히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인데, 마태오는 부연하여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한다. “살아 계신 하느님은 거짓 신들, 즉 생명이 없는 우상들과는 아주 다른 신이라는 뜻이다. 또한 살아 계신 하느님은 생명을 주시는 신이라는 뜻도 있다.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과 지극히 가까운 분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이 예수께 내리신 칭호다.

예수의 자신이 아들로 자처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섬겼다.

 

17

17-19절은 분명히 마태오가 13-16절과 20절 사이에 끼워넣은 삽입문이다. 그 중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행복선언은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에 대한 예수님의 해명인데 이는 문맥을 고려해서 마태오가 만들어낸 것이다.

 

바르요나를 아람어 합성어로 본다면 유나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요한 1.42;21.15에선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이라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이라 한다. “살과 피는 자연인간이란 뜻이다. 자연인간은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고백을 할 수 없고 오직 하느님의 계시가 내려야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

18-19절에선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세 가지 약속을 하신다. , 시몬 베드로를 초석 삼아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교회 창립 약속(18).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겠다는 약속, 매고 푸는 권능을 주시겠다는 약속(19ㄴ절)이다. 하나같이 시몬 베드로를 매우 우대하는 약속들이다. 이 약속 말씀들은 베드로를 예수님의 수제자, 교회의 으뜸 사돌로 높이 만든 시리아 전승들이었는데 마태오가 그것들을 채집. 수록했다. 다만, 마태오가 세 가지 약속 말씀들을 모두 채록했다는 학설(호프만), 마태오는 교회 창립 약속(18)과 매고 푸는 권능 약속(19ㄴ절)만 채록했고 하늘나라의 열쇠 약속(19ㄱ절)은 마태오가 만들어 삽입했단 학설(그닐카)이 맞서고 있다.

 

시몬에게 주신 별명은 아람어로 게파다. 게파를 그리스어로 의역하면 페트로스 또는 페트라가 된다. 우리말 역문 그대는 베드로입니다. 나는 이 바위 위에를 아람어로 되옮기면 그대는 게파입니다. 나는 이 게파 위에가 된다. 지금의 신약 원전 그리스어에서는 그대는 페트로스입니다. 나는 이 페트라 위에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께서 시몬에게 게파라는 별명을 주신 것은 확실시되지만 그를 제자로 삼으신 때에 주셨는지. 아니면 12제자 소집 때에 주셨는지 알 길이 없다.

 

교회는 칠십인역에서 유래한 낱말인데. 거기서는 히브리어 카힐을 에클레시아로 번역하곤 했다. 카힐과 에클레시아는 모두 어원을 따져 보면 불러모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 구약의 경우, 카힐과 에클레시아는 하느님이 불러모으신 이스라엘 백성 또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임을 뜻한다. 신약의 경우 교회는 하느님이 새롭게 불러모으신 그리스도인 백성 또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뜻한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불러모으신 백성이요 모임이기도 한 까닭에 그리스도의 교회라고도 하는 것이다. 네 복음서를 통틀어 교회라는 낱말은 딱 두 번 오직 마태 16.18;18.17에만 나온다. 마태오는 교회와 유다인들의 회당을 엄격히 구별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평소에 예수께서 교회 설립 계획을 세우신 바 없다는 것이 신약학계의 통설이다. 그렇다면 18절은 마태오가 소속했던 시리아 교회의 교회관을 반영한다 하겠다. 18절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시몬 베드로의 인격을 초석 삼아 당신 교회를 설립코자 하신다. 개신교계에선 교파적 선입견에 사로잡혀, 베드로의 신앙을 초석으로 삼았다는 절을 펴곤 하는데 어불성설이다.

 

병계의 문들은 명계 자체 또는 명계의 권세들을 뜻한다. 한 부분으로써 전체를 가리키는 셈족 사고방식이 들어 있다. 명계의 권세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내리누르지 못하는 까닭은 명계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 종말까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19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지도자는 사람들이 거긱로 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 줄 권능과 책임이 있다. 그런데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은 하늘나라를 잠가 버렸다. 그들 대신 이제 시몬 베드로가 그 열쇠를 물려받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열어 주고 거기로 들어가게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명한 것을 다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는 길밖에 없다. 특히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참뜻을 환히 밝혀주신 산상설교의 교훈들을 지키도록 가르쳐 마땅하다.

 

19ㄴ절의 변형태가 둘 있다. ”여러분이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요, 여러분이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입니다“(18.18). ”여러분이 어떤 사람들의 죄들을 사해 주면 그들을 위해서 사해질 것이요, 어떤 사람들의 죄들을 잡고 있으면 잡혀있을 것입니다“(요한 20.23). 베드로 한 사람에게 하신 약속과 여러 사람에게 하신 약속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오래된 전승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어쨌든 마태오는 두 약속을 상반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상보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요한 20.23의 사죄 약속은 후대 개작으로 보아 무방하다.

 

율사들은 두 가지 뜻으로 매다-풀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어떤 일을 금지하다- 허용하다는 결의론적인 용법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을 파문하다-파문을 해제하다는 종단규범적 결정은 하늘에서도“, 곧 하느님께서도 그대로 가납하신다니 실로 엄청난 권능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베드로는 제멋대로 결정해선 안되고, 항상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윤리적 또는 교회규범적 결정을 내려 마땅하다. 또한 베드로는 홀로 결정하지 말고 온 교회의 여론을 수렴하여 결정을 내려 마땅하다(18.18 참조).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옯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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