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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5 연중 제7주간 금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24 조회수779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5,9-12
9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11 사실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 낸 이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욥의 인내에 관하여 들었고,
주님께서 마련하신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은 동정심이 크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
12 나의 형제 여러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그 밖의 무엇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 할 것은 .”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9

9절은 7-8절과 10-11절의 맥락을 끊는 단절어다. 그 내용은 4,11-12와 비슷하다. 7-8절과 9절의 공통된 점은 종말이 임박했다는 사실이다.

 

10

예언자들은 이미 유다교에서 인내의 본보기 및 순교자로서 존경을 받았다. 신약성서에서도 이런 전통을 받아들인다.

 

11

1.2-4.12 참조.

 

예수의 모범을 말하지 않고 욥의 인내를 끌어댄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데, 야고보는 여기서도 유다교의 전통적 훈계를 이용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주님이 마련해 주신 결말주님의 결말을 의역한 것이다. 그것은 욥의 수난 끝에 주님이 새로 내려주신 축복이다.

 

여러 가지 훈계

5,12-20은 신자생활의 여러 가지 실제적 경우를 위한 훈계를 나열한다. 맹세에 관한 훈계는 앞뒤 문맥과 상관이 없다. 어떤 처지에서나 기도하라는 훈계를 하면서 병환의 경우를 좀더 자세하게 언급한 다음 기도의 효력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으로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죄인을 회두시키는 문제를 다룬다. 13-15,16-18,,19-20의 짧은 세 단락은 ”,“죄인이라는 낱말로 연결되어 있다.

 

12

마태오와 야고보의 훈계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동일한 단절어를 각기 나름대로 채집,수록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 말씀은 법정에서 하는 맹세에 관한 훈계가 아니라 당시 일상생활에서 성행하던 맹세에 관한 훈계다. 이것은 맹세 금지의 새로운 법규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진실을 말함으로써 맹세가 필요없는 생활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것이다.

 

단죄받다심판에 빠지다의 의역, “단죄받지 않는다는 말은 9절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와 연결된다.

 

 

 

 

 

 

 

복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2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

이혼논쟁

예수시대 이스라엘의 혼인법과 이혼법을 살펴보면 쿰란 종파만은 일부일처제를 주장한 데다 이혼과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다.반대로 바리사이들은 일부다처제를 묵인했을 뿐 아니라 신명 25.1-4를 따라 이혼과 재혼을 쉽게 허락했다. 물론 여기 이혼이란 언제나 남편이 아내를 소박하여 내보내는 것을 뜻하는데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야그렇게 할 수 있었다. 무엇이 수치스러운 일이냐에 관해 바리아시계 율사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는데 간음, 풍기문란, 음식을 태우는 것, 계명을 어기는 것,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 따위를 수치스러운 일

로 보았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이런 일을 발견하고 버릴 마음이 있으면, 이혼장을 만들어 아내에게 건네준다. 그 순간부터 아내는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가 된다. 이혼장에 소박 사유를 쓸 필요는 없고, 단지 남편 아무개가 아내 아무개를 소박하니 다른 남자가 데려가도 무방하다는 내용을 적은 다음 남편과 두 증인이 서명하고 날짜를 기록하면 충분하다.

 

바리사이들의 이혼관례에 대해 예수께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시어 일혼 불가를 선언하셨다. “누구든지 제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그를 간음하는 것입니다. 또한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계 중 제6간음하지 말라는 금령과 관련하여 이혼을 단죄하셨다. 어째서 이혼이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잘못인가? 당시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가 홀로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아무래도 재혼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이혼을 단죄한 말씀을 두고 여려가지 해석을 내렸다. 유다교인들이 모세의 이혼법을 내세워 소박을 정당화하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원초적 뜻을 내세워 예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들이 2-9절의 논쟁을 꾸몇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이혼 자체를 단죄하기보다 이혼한 다음 재혼하는 것을 금하셨다고 보았다. 이들이 마르 10.11‘루카 16.18절의 단절어를 만들어서 전했다. 마태오 복음작가가 소속한 교회 신도들은 신명 24.1수치스러운 일음란한 일로 국한시켰다.

 

, 남편이 아내의 음행을 발견하는 경우에만 그를 내보내고 재혼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마태 5.32;19.9의 예외 규정을 참조하라. 70년경 마르코가 복음서를 집필할 무렵 이방계 신도들은, 아내를 내보낸 다음 재혼하면 간음하는 것처럼(11)“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12)라고 주장했다.

 

이런 말은 그리스 사회에서나 할 수 있었다. 55년경 에페소에서 고린토 교회로 써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풀이했다: 이혼해서도 안되지만 부득이 이혼한 경우 재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비신자 부부 가운데 한편만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에는 신자편에서 이혼을 주장해서는 안되지만 비신자편에서 이혼하려고 하면 갈라서도 무방하다.

 

예수께서 이혼을 단죄하신 말씀을 초대교회에서는 이처럼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해석했다. 마르 10.2-9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랐고 그밖의 다른 대목에서는 한결같이 확대해석했다. 그럼 오늘날 우리는 예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분이 반이혼법을 제정하셨다고 볼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는 한갓 입법자 아니면 율사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렇게 보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아내를 버리는 남편들에게 일대 회개를 부르짖으신 예언자 아니면 율사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렇게 보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아내를 버리는 남편들에게 일대 회개를 부르짖으신 예언자적 외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유로 아내를 버릴 수 있을 까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이 한 몸이 되는 비결을 익힐 수 있을까 궁리하라는 외침이시다.

 

1

10장은 예수 상경기,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에서 갈릴래아 지방과 그 지방에 있는 가파르나움을 거쳐서 이제 유다 지방과 오르단 강 건너편으로 가신다. 거기서 예리고로 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실 것이다. 이 상경 여정은 대체로 마르코가 꾸민 것이다.

 

2

바리사이들은 아내를 버리는 관례를 예수께서 단죄하신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이혼에 관한 질문을 던져 예수로 하여금 이혼법을 폐기하는 말씀을 하도록 유도한다.

3-4절에서는 바리사이들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그들은 모세의 이혼법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영향을 받아 이혼을 반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5

5-9절에선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명확히 밝힌다.

 

모세가 이혼법을 반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혼을 찬성해서가 아니라, 유다인들이 부부일신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부득이 잠정적으로 그런 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6

창세 1,27 인용문.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만드셨다고 그리스도인들은 이해했다.

 

7

7-8절은 창세 2.24인용문. “자기 아내와 합하여는 베자와 알렉산드리아 사본 등에는 있지만 본문비판가들이 흔히 삭제한다. 삭제한다면 사람”(7)은 남편과 아내 ”(8ㄱ절)을 뜻한다.

 

8

그리스도인들은 결혼에 관한 하느님의 원초적 뜻이 창세 1.27;2.24에 나타난다고 확신한 나머지 두 구절을 인용한 다음 이제 8-9절에서 결론을 내린다. 부부는 짝지어 주신 주례이시다(9ㄱ절) 그러므로 이혼은 용납되지 않는다(9ㄴ절).

 

10

마르코 논쟁(2-9)과 단절어 (11-12)을 연결하려고 제자교육 소재(10)을 만들어 삽입했다.

 

11

초대교회 일부에서 이혼은 허락하되 재혼만은 금지한 흔적이 엿보인다

 

12

로마와 그리스에서는 부인에게도 이혼하고 재혼할 권리를 인정했다. 그러나 거기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남자편에서 이혼한 다음 재혼할 수 없는 것처럼 여자편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12).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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