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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8주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26 조회수1,171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9년 3월 3일 연중 제8주일

 

2022년 02월 27일 일요일

연중 제8주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 잔 부스러기 같은

‘티’와 일반 성인 크기의 배에 달하는 ‘들보’가 함께 비교되는 해학의 말씀 속에서,

우리네 인간의 타고난 기질이 엿보입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얻는 자기만족과 뿌듯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상대보다 우위에 서서 그의 단점을 고쳐 주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곤 합니다.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와 비슷한 말들을 얼마나 자주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은 그 비판적인 시선을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남을 지적할 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로 먼저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상주하고 있는 저에게 오늘 복음 말씀은 큰 묵상 거리로 다가옵니다.

신학생들을 지도하며 ‘진실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형제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등

다양한 요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잘못이나 단점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지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이나 잣대가 나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부끄럽게도 저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한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누군가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에게 ‘본’(本)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상대방의 눈 속에 박힌 티를 빼내 주겠다고 신나게 소매를 걷어붙이기보다,

자기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빼내려는 노력을 상대방에게 보여 주는 것이 훨씬 감동적입니다.

회개는 그렇게 쌍방에서 함께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다해, 연중 제8주일

생명의 말씀(2.27. 서울주보)

 

내 눈의 들보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오늘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에 이어 나오는 구절입니다.

살면서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심판합니다.

상대의 작은 허물과 미성숙함을 들추어내며 그의 단점을 짚어냅니다.

그러면서 상대방보다 내가 더 잘났다는 우월감에 우쭐함을 느끼며 만족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객관화해서 스스로를 판단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런 상황을 남의 눈에서 티끌을 빼 주겠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눈에 들보가 들어 있음을 깨닫지 못한 어떤 사람에 대한 비유로 표현하십니다.

사실 눈은 우리 신체 기관에서 매우 예민한 곳 중 하나입니다. 미세한 혈관과 신경이 모여 이루어져 있고, 작은 티끌 하나만 들어가도 금방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에 비해 들보는 티끌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부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들보는 보통 집을 지을 때,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며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들보가 작은 눈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그만큼 자신의 눈 속에 거대한 들보가 들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성찰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눈에 작은 티끌만 들어 있어도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는데, 하물며 들보가 들어 있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내생각과 주장이 얼마나 완고해진 상황이라는 말 일 런지요.

그래서 우리가 완고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내 눈의 들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들보를 가지고 살면서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았던 스스로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들보를 빼내야 앞이 밝아져 다른 형제의 티도 빼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상황을 경제적 가치로만 판단합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아니면 손해나는 일인지에 따라 분간하지요. 다른 어떤 사람은 내가 사람들 앞에 멋있게 드러나는지 그렇지 않은 지만 바라보기도합니다.

앞의 상황은 돈의 들보, 뒤의 상황은 자아라는 들보가 들어 있기에 그러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눈에 들어 있는 들보를 바라보게 해줍니다. 미처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완고해진 내 눈의 들보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들보를 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말씀’이 우리 스스로를 깨닫게 해 줄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거울이 되어 우리 스스로 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도 말씀을 자주 읽고 접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우리 눈의 들보를 인식하고 용감하게 빼내어, 새로운 시선을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보도주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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