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8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26 조회수1,865 추천수9 반대(0)

1988년 한국천주교회는 내 탓이오.’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당시 사회에 만연한 반목과 갈등 그리고 분열과 다툼은 자신의 잘못은 돌아보지 못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자동차 뒤에 내 탓이오스티커를 부치고 다녔습니다. 천주교회에서 시작하였지만 언론과 방송에서도 소개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였습니다. ‘내 탓이오.’라는 말은 미사를 시작하면서 사제가 신자들과 함께 죄를 고백하면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모든 허물과 잘못을 남에게 돌리기보다는 나의 허물과 잘못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이 하였나이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가난한 세리가 겸손하게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며 바쳤던 기도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워 하느님께 바쳤던 기도와 같습니다.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하는 것은 경제가 풍요로워지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부유한 나라에서도 폭력과 갈등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물질적인 풍요만으로는 메말라가는 감성을 치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살과 총기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로는 삶의 외로움을 치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하는 것은 서로를 향해서 마음을 열고 주고받는 말 한마디입니다. 어떤 말이 있을 까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와 같은 말입니다.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아무나 하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대신에 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큰 상처를 주는 말을 아주 쉽게 합니다. ‘당신의 잘못입니다. 누가 이렇게 했습니까? 왜 늘 그렇습니까? 잘 할 줄 아는 게 없네요.’와 같은 말입니다. 가족 간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이웃 간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면 고마울 일들이 생깁니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굳게 닫혔던 마음이 열리기 마련입니다. 가족 간에도 불평을 이야기하면 불평할 일들이 생깁니다. 이웃 간에도 비난의 화살을 쏘면 다툼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합니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향기가 되어 가족과 이웃의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보좌신부 때입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본당 주임신부님께 많은 것을 배울 때였습니다. 용산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주일학교 교사 모임이 있어서 늦게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임신부님께서 문을 안에서 잠갔습니다. 밖에서는 열 수가 없어서 벨을 눌렀습니다. 주임신부님께서 문을 열어 주면서 지금 몇 시야!’라고 하셨습니다. 늦어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신부님의 말씀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들어오라고 하셨으면, 늦은 이유를 물었으면 저는 자초지종 말씀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시계가 없어서 묻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가 지구 초등부 주일학교 지도신부를 맡았기 때문에 늦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부님도 나중에는 이해를 하셨습니다. 제기동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월요일에는 주임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늘 일찍 성당에 가서 조배를 했는데 한번은 미사에 조금 늦었습니다. 미사 후에 신부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임신부님께서 수녀님을 부르더니 말씀하였습니다. ‘조 신부가 늦을 사람이 아니니, 20분 전에도 나오지 않으면 미리 연락하세요.’ 저를 야단치지 않으시고, 저를 믿어주시는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감사했고, 고마웠습니다. 주임신부가 되었을 때 저도 보좌신부님을 평가하고 비난하기 전에 먼저 들어주고 믿어주기로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도 어째서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더러 네 눈의 티를 빼내 주겠다.’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 속에 티를 꺼낼 수 있다.” 신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내가 하지 못했던 선행을 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하지 못했던 자선을 베푸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서 힘겹게 투쟁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제 눈에 있는 들보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분들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당에서도 그렇습니다. 아무런 내색 없이 차량 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늘 함께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우리 눈의 들보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분들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는 분들입니다. 이제 곧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서 파릇파릇한 봄의 새싹이 돋아날 것입니다. 아무리 겨울이 추웠고, 길었다고 해도 봄의 기운은 이길 수 없고 그 봄의 기운은 대지 위에 생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남의 눈에 티를 바라보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고, 부당한 일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눈의 들보를 깨닫는 것은 더욱 지혜로운 일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은 더욱 큰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곧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이번 사순시기에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제가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많이 했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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