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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살레시오회 :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작성자박양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01 조회수1,234 추천수7 반대(0) 신고

재의 수요일만 되면 존경하는 왕신부님 생각이 납니다. 아흔을 훌쩍 넘기셨지만, 아직도 쌩쌩하시고, 총기가 흘러넘칩니다. 송해 선생님 저리 가라입니다. 언젠가 재의 수요일 미사 주례가 왕신부님이었습니다. 형제들의 이마에 바를 재를 손수 준비하셨습니다. 미사 참석하는 형제들 숫자가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기에 조금만 준비해도 좋을텐데, 엄청 많이 준비하셨습니다. 거기다 물까지 듬뿍 부었습니다.

  

저 같으면 재를 머리 위에 살짝 얹어주고 마는데, 왕신부님께서는 형제들 이마에 엄청 큰 십자가를 그어주셨습니다. 형제들은 뚝뚝 떨어지는 잿물을 보며 이게 뭐냐며 얼굴을 찡그리는데, 신부님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형제에게까지 진한 십자가를 그어주신 신부님께서 그 형제에게 재가 담긴 접시를 건넸습니다. 그 형제는 남아있는 재를 모조리 끌어모아 신부님의 이마에 초대형 십자가를 그어드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형제들은 재의 수요일이라 웃으면 안 되는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울을 보신 신부님께서는 너무 좋아하셨는데, 저녁기도 때까지 이마의 십자가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참 대단한 신심가이십니다.

  

또다시 재의 수요일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사용했던 종려나무 가지를 태워 얻은 재를 머리에 얹습니다. 재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타고 남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무가치한 것, 허무한 것, 보잘것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를 머리에 얹을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쳐야겠습니다.

 

“본래 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습니다. 먼지요, 티끌, 무(無)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토록 보잘것없는 제게 큰 은총을 베푸셔서 생명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오늘 지금 저는 여기 서 있지만, 주님의 흘러넘치는 자비가 아니라면, 단 한 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는 미약한 존재입니다. 과거도 저는 흙이었지만, 지금도 흙과 다름없는 존재요, 언젠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신심 깊은 유다인들은 속죄 행위를 요란스럽게 실시했습니다. 일단 식음전폐, 다시 말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씻지도 않았습니다. 일도 손에서 놓았습니다. 평상복을 벗고 거친 삼베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속죄의 재물로 짐승을 잡았습니다.

  

엄청난 양의 재를 만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들이부었습니다. 그것도 양에 안 차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고 옷까지 찢었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잘못은 인간들이 저질러놓고, 아무런 죄도 없는 가축들까지도 속죄 행위에 강제로 동참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요란스럽고 과장된 속죄 행위 대신 다른 방법을 쓰라고 가르치십니다.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너그럽고 자비로우신 분, 분노와 역정에 더디신 분, 주 너의 하느님에게로 돌아오너라.”(요엘 예언서 2장 12~13절) 결국 주님께로의 유턴, 다시 말해서 회개할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아울러 주님께서는 우리가 새롭게 맞이한 이 사순 시기, 어떤 모습으로 자선을 베풀고, 기도하고, 단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주 명쾌하게 세 가지 지침을 내려주고 계십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오 복음 6장 3절)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오 복음 6장 6절)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마태오 복음 6장 17~18절)

  

예수님께서 주신 세 가지 지침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하느님 앞에 애써 꾸미려 하지도 말고, 굳이 감추려 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라는 것입니다. 결국 위선자가 아니라 안과 밖, 말씀과 삶, 기도와 활동이 일치되는 진실된 신앙인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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