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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의 수요일 독서와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02 조회수1,522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순 때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단식입니다. 단식을 하면 육체도 건강하고 정신도 맑아집니다. 왜 단식을 하면 건강해질까요? 저는 이 자리에서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비유로 말하자면 뭔가 채워져야 하는데 그 채워지는 압력이 가해지지 않기 때문에 자동으로 다시 분해가 되어 나오고 이때 나오는 물질 중에 노폐물이 많기 때문에 몸에 축적된 노폐물이 다시 몸 밖으로 배출되는 대사가 이루어져 건강해진다는 원리입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육체가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하게 돼 있습니다. 

 

이런 육체의 단식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요즘 들어와서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의미가 덜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중요한 것은 마음의 단식입니다. 영의 단식입니다. 본질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의 단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육의 단식을 통해 강제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몰입시키는 수단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 구심점은 바로 어디일까요? 바로 하느님일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을 얼마나 생각할까요? 어떤 사람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외형적인 기도로 하느님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어쩌면 높은 관상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삶 그 자체가 기도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미 그 수준까지 갔다면 거의 성인의 수준에 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같은 범인들은 그 수준까지 가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처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13절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이때 옷은 옷의 의미도 상징적으로 나타나겠지만 이 옷이 상징하는 또 다른 으미는 육체를 상징하는 면도 있을 겁니다. 이 말씀만 봐도 우리는 영의 단식을 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국한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마음을 찢어 하느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굳어지고 완고한 마음을 찢어야 할 것입니다. 죄성으로 기울려고 하는 마음을 거슬러 다시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되돌리려고 할 때 역행하는 힘으로 우리의 마음을 찢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분명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그 아픔은 연어가 원래의 고향으로 가기 위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할 때 거스러는 힘과 똑같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람과도 마치 같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고향인 천상을 가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향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이곳에 살면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굳어져 있으면 우리는 영영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우리가 가야 할 영혼의 세계를 동경하기 위해서 우리의 굳어진 영혼에 생기를 돋구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순 때만 해야 할 게 아니라 항상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는 그렇다고 회개를 한답시고 항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기도와 단식을 통해서 자신이 회개를 한다는 것을 겉으로 보여주는 회개를 하는 것 같은 그런 회개는 의미없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느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잘 생각해보면 하느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하는 것이라면 이것도 좀 이상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건 하나의 가식적인 회개에 지나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느님께로 회귀입니다. 하느님께고 귀향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명절 때 고향으로 가 부모님을 찾아뵙듯이 말입니다. 하느님께로 회귀하는 데에 꼭 있어야 할 게 바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한편으로는 황송한 말과도 같습니다. 어떻게 과연 우리 피조물이 하느님과 감히 화해를 한다는 말씀일까요? 화해라는 것은 쌍방의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해의 당사가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피조물의 입장이 돼서 말입니다. 바로 그 화해의 도구로 희생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하겠지만 특히 사순 때만큼이라도 우리는 희생해야 할 이유도 없이 희생되신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슬퍼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 그렇다고 기뻐해야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그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는 것은 찬란한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 길만이 부활로 가는 영광의 길이 될 것입니다. 최종에는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는 게 목적이지 부활하지 않고 그 도중에 머물게 된다면 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가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점을 잘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순 절기가 우리도 최종 부활하는 몸으로 거듭나기 위한 몸을 입기 위한 예비 연습과도 같은 것이 되어야 할 것이고 이 과정도 부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부활 단계에서 그만 그치고 만다면 우리의 수고는 그냥 헛수고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럼 답이 나왔을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때 하나의 절기에 해당하지만 이 사순 절기를 어떻게 보내야만이 우리의 영혼에 유익할지 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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