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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십자가를 날마다 지어야 하는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03 조회수1,230 추천수4 반대(0) 신고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 앞에는 수많은 선택이 놓여있습니다. 선택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예전에 모기업의 광고에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는 슬로건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뜻이 됩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도 우리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강론을 통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강론이며 복음도 여러 차례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그냥 흘려 들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첫째가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그 십자가를 지는 데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그것도 매일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냥 십자가를 지고 가는 데 있어서 왜 예수님은 날마다라는 조건을 달았을까를 깊이 묵상해봤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고해의 바다라고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어쩌면 고통이 수반되는 삶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매일 있는 십자가라면 그 십자가를 질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그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달가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인해야 하는 선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을까요?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해도 항상 한결같기만 할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신앙에도 권태기가 올 수 있습니다. 그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권태기가 온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하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바로 변화가 없은 반복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매너리즘은 신앙의 슬럼프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이게 일시적인 감정으로 생기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속된다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원인이 발생하게 되는 최초의 근원지가 바로 우리가 머리로는 알지만 제대로 십자가라는 것에 대해 인식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그냥 단순히 그냥 우리가 아는 십자가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건 어쩌다가 살면서 간혹 우리 곁에 십자가가 온다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고 예수님 말씀처럼 십자가는 우리 주위에 항상 매일 있게 된다는 걸 확고하게 인식하게 된다면 그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건 우리 앞에 하나의 장애물과도 같은 것으로 인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삶 속에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우리의 마음에 골치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골치로 생각된다면 그때부터는 십자가가 우리의 삶에 고통으로 여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신앙이 하나의 짐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짐이라고 생각한다면 신앙적으로 권태기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이런 인간의 속성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게 하시려는 최소한의 수단과 장치가 바로 우리에게 십자가라는 것은 매일 매일 삶 속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올 수 있다는 의미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날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그걸 포기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자기를 인정한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자기부인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상과 하느님을 선택하는 양자택일에서 하느님을 선택하려는 마음을 먹는 게 자기부인과도 같을 것입니다. 말은 쉽습니다. 말처럼 그게 쉬운 것이라면 굳이 예수님께서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셨을 리가 만무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하느님을 선택하려고 부단히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극기승자가 천하승자라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야 도통한다고 했습니다. 유교에선 자기를 이기면 천하를 이긴 것과 같은 급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신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 안에서는 항상 하느님을 향하려고 하는 선과 그와 반대되는 악이 항상 싸우는 것처럼 묘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이 이겨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자신을 부인할 수가 있는 것이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저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으셨습니다. 선택은 결국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행복을 선택하는 길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선택하는 선택지입니다. 죽음과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저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내팽개치는 사람이 선택하는 선택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려면 단호하게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조건이 더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도 해야 하지만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결정적으로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 매달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독서에 나오는 말씀은 병렬로 열거를 해놓으셨지만 의미상 보면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더 강조하시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생명과 행복으로 가는 길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고 그 길이 바로 영원한 행복이 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행복이 될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 매달려야만 된다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는 것도 자신의 힘으로 질 수 있다는 것은 역부족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게 어쩌면 교만이 될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그런 자신감이 있다고 해도 하느님의 도움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바로 기도가 될 것입니다. 결국 종국에는 십자가를 매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가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반증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복음뿐만 아니라 항상 언급되는 '날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는 전제조건을 달지 않으셨지만 인간적인 논리로 본다면 여기에는 날마다 매일 기도를 해야 한다는 전제가 숨어 있을 것 같다는 묵상을 해봅니다. 논리적으로 말씀을 분해해서 곰곰이 묵상하면 그런 결론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십자가를 날마다 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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