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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정한 단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04 조회수888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게 되면 단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잘 알 수 있습니다. 단식은 말 그대로 식음을 전폐하는 게 아닌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건 단순한 육적인 단식의 예일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공정을 부르짓는다고 하면서 마치 하느님의 법규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하느님의 길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갈망하는 듯한 마음으로 하느님 곁에 머물기를 희망하긴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이 바로 단식하는 모습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마저도 실제는 단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이 진정한 단식을 하는데도 왜 하느님은 자기들의 모습을 보아주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듯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 4절에 나오는 말씀을 잘 한번 보시면 이렇습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에 이어지는 그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육의 단식을 하나의 재계처럼 생각하며 하는 그런 것은 진정한 단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게 왜 진정한 단식이 아니라는 것일까를 묵상해봅니다. 바로 독서에는 표면적으로는 그 이유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문맥상 의미를 유추해보면 바로 겉으로 드러내는 외형적인 모습이 진정한 단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단식이 무엇인지는 6절 이하부터 언급돼 있습니다. 여기서 어느 한 곳이라도 음식의 절제를 언급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사실만 봐도 단식이라는 것이 음식을 절제하는 육의 단식이 진정한 단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단식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선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하면 8절에서 보시다시피 상처가 아문다고 하는데 그것도 바로 아문다고 했습니다. 상처만 아무는 게 아니라 의로움이 앞에는 의로움이 있게 되고 뒤에는 주님의 영광이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때 우리가 하느님을 부르면 '나 여기 있다'고 응답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뜻을 담고 있는가요? 

 

모르긴 몰라도 하느님은 '무소부재'한 하느님이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바라볼 때 막연히 공간적인 의미에서도 멀리 우리와 떨어져 계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우리 눈 앞에 보이지 않으시긴 하지만, 하느님의 현존은 우리가 살면서 진정한 단식을 하기만 한다면 그곳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 진정한 단식의 공간에는 인간의 의로움도 의로움이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하느님의 영광은 인간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단식이 이루어지는 공간에는 항상 드러난다는 말씀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 하면 거대한 것만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하느님의 영광은 사실 아주 극히 작은 일 속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비근한 예가 바로 7절에 있습니다. 굶주린 이와 함께 양식을 나누고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은 단순한 자선이라고만 인식을 하는 경우가 많지 실제 이 속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다고는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를 깊이 묵상해보면 바로 이게 하느님의 영광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단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을 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마치 '우문현답'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육적인 단식으로 질문한 거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는 영의 단식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육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이 그 말씀이 무엇을 이야기하시고 또 그 의미가 무엇일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묵상을 해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독서를 잘 묵상해보면 하느님께서 진정 저희에게 원하시는 단식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고 또 그런 단식은 단순한 재계를 지키는 수단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영광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선도 단순한 자선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저도 오늘 묵상을 하면서 새롭게 묵상한 내용입니다. 물론 제가 묵상한 내용이 맞는지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논리상 보면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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