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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은 어떻게 유혹을 이겨내셨는가? 그 비결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06 조회수680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깊은 신학적인 지식이 있어야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촌부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보면서 가장 많이 언급된 말씀으로 대표적인 것이 '말씀'입니다. 같은 표현이고 같은 내용이지만 오늘은 다른 각도에서 한번 이걸 바라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악마는 예수님을 세 가지 유형으로 유혹을 합니다. 그 유혹 각각에 대해 극복 방안이 예수님께서는 세 번 다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라는 표현으로 말씀하십니다. 결국 말씀이긴 말씀이지만 표현이 바로 성경에 기록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을까를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이런저런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오죽하면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기도 가운데 주님의 기도에도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가 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사실 이론적으로 보면 말씀만 잘 기억하면 유혹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한 사실임에는 분명하지만 이게 유혹에 넘어갈 땐 워낙 유혹의 손길이 강해 그땐 그게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 해도 그럴 경우가 많이 있는데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그야 말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유혹을 이겨내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이 유혹이라는 놈의 정체를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많이 묵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죄로 유인하는 유혹은 장시간에 걸친 유혹도 있지만 보통 대개 보면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짧은 시간을 지혜롭게 잘 넘겨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 유혹의 시간을 넘기지 못해 유혹에 빠진 상황과 또 넘겨서 유혹에서 벗어난 경우를 잘 비교해보면 유혹이라는 놈의 정체를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렇게 하다 보면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데 조금은 힘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먼저 빠진 경우를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이런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만약 이런 경우에는 이런 것도 가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혹이 대죄로 이끄는 유혹이라면 고해성사도 봐야 하는 그런 죄라면 더더욱 아쉬움이 클 것입니다. 먼저 고해서에 가야 하고 또 고해소 앞에서 줄을 서서 다른 사람도 물론 죄를 짓지 않지는 않지만 그 모습이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에 남의 이목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런 모습이 썩 좋은 모습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련의 과정을 앞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때 자신이 그 유혹이 다가올 때 그 순간만 잘 극복했다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며 그때 자신이 그 순간 유혹을 이기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더 한심한 노릇이 되는 것입니다. 

 

역으로 이겼을 땐 이런 경우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잘 이겨냈으니 망정이지 이기지 못했더라면 또 고해소 앞에서 줄을 서며 기웃기웃 해야 하는 그런 모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해보면 순간의 유혹을 잘 이겨낸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죄에 빠지고 빠지지 않는 손익을 계산한다면 죄에 빠지지 않는 게 훨씬 이익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설령 이렇게 해서 어떻게 한 번은 잘 이겨 극복했다고 해도 다음에도 그렇다면 이게 잘 되면 모르는데 그게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근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에도 어떤 임계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몇 번만 이렇게 잘 고비를 넘기게 되면 어느 시점에서는 이게 일종의 면역이 돼 왠만한 유혹에는 쉽게 넘어가지 않는 수준까지 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과연 말처럼 실제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유혹이라는 놈의 정체의 본질을 알 수가 있습니다. 유혹이라는 놈은 아주 짧은 시간만 강력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입니다. 유혹은 그렇다면 시간에는 아주 약하다는 한계점을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그 시간만 잘 넘기면 유혹이라는 것도 별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모든 유혹에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곰곰이 잘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몇 번의 실패의 경험이 있다면 그 실패의 원인을 잘 분석하면 충분히 잘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게 흔히 우리가 말하는 성찰이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죄에 빠졌을 때 회개를 한다고 했을 때 그냥 죄를 고백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면 쉽사리 다음에도 그 죄에 빠질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게 온전한 성찰을 하지 않는 데서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성찰은 온전히 죄를 회개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되지 않으면 통회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단순히 죄를 고백하는 수준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죄를 고백한다고 해서 그 죄를 고백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냥 입으로만 죄를 말한 것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어떻게 보며 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더 낫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수준이라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 정도라도 하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일말의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마저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없다면 완전히 죄성에 무디어져 있어서 자신의 양심조차도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분간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주일 복음은 예수님께서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으실 때 말씀으로 극복하신 예를 들어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을 주십니다. 이 교훈은 바로 우리가 성경을 그만큼 자주 읽어야 한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말씀을 자주 보더라도 이와 함께 병행해야 하는 것은 우리를 유혹으로 빠지게 하는 그런 유혹의 힘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유혹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그걸 역이용하면 쉽게 유혹에 덜 빠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덤으로 작용하면 좀 더 우리가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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