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 사순 제1주간 월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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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3-06 | 조회수82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 주님께서 거룩하시니 주님의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 복음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주해 최후심판 마태오는 앞에서 인자의 내림을 묘사한 바 있다. “인자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서 큰 권능과 영광을 갖추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큰 나팔(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낼 것이요, 그들은 하늘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그의 선민들을 모을 것입니다. 마태오는 인자의 내림 속편으로 이제 인자의 최후심판을 묘사한다. 최후심판은 심판한 인자의 착석,인류 집결, 선인들과 악인들의 분리, 심문과 언도, 처벌과 포상 순으로 전개된다.
중요한 문제 두 가지만 미리 밝혀 둔다. 인자에게 심판받는 ”모든 민족들“은 인류라는 점이다. 이방민족들과 유다민족,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가릴 것 없이 인류 전체라는 것이다. 종말심판 기준은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는 자비행인데, 여기 불쌍한 사람들은 불쌍한 그리스도인 또는 불쌍한 전도사에 한정되지 않고 불쌍한 사람이면 누구나 해당된다. 평소에 가난한 이들과 한맺힌 이들과 굶주린 이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시고 , 병약한 이들을 돌보시며 율법상의 죄인들과 윤리상의 죄인들과 즐겨 어울리신 예수님인지라 이제 최후심판에서도 저들과의 진한 연대성을 선포하신다. “너희가 나의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준 것이다....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주지 않았을 때마다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마태오의 예수께서는 자비행과 그 비슷한 실천을 누누이 강조하셨다. 31절 31-32ㄱ절은 마태오가 24.30-31의 소재와 표현을 약간 바꾸어 번안한 것이다. 인자가 영광스러운 어좌에 앉는다는 소재는 신약성서 중에는 마태 19.28;25.31에만 있고, 유다교 문헌 중에는 에티오피아 에녹서 45.3; 51.3; 55.4; 61.8; 62.2-3.5; 69.27.29에만 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하느님 친히 어좌에 앉아 최후심판을 하신다. 천사들이 13,41-42에선 죄인들을 모아 차별하고 24.31에선 사방에서 선민들을 모은다. 이와 대조적으로 25.31에선 내림하시는 인자를 호위할 따름이다. 34절 임금은 본디 하느님을 가리키는 상징적 존칭인데 여기서는 인자를 뜻한다. 예수님을 임금으로 만든 그리스도교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 “나라를 상속받아라”는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것을 뜻한다. 이는 영원한 삶을 상속받는 것,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과 같다. 40절 마태오복음에는 “ 이 작은 가운데 하나”라는 고정 표현이 네 번 나오는데, 그 편집사적 율법을 보면 전도사 또는 보잘것없는 미천한 그리스도인을 뜻했다. 마찬가지로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형제들”은 그리스도인들 또는 제자들을 가리켰다. 그런데 25.40에서는 최후심판의 판관이신 인자께서 불쌍한 무리를 일컬어 “나의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 하신다. 그리고 사람들이 저들에게 베푼 자비를 당신 자신에게 베푼 것으로 간주하신다. 소외자들과의 유대, 천민들과의 연대를 이보다 더 진하게 표현할 길이 또 있을까? 종말심판 기준은 신앙과 종파도 아니고 기도와 예배도 아니며 자비행위임을 명심하라. 자비와 사랑은 그리스도신앙의 가치서열 가운데 지고지순한 가치다. 아니 자비와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교,불교, 유교 등 종교의 울타리조차 뛰어넘는 인류 보편가치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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