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08 조회수1,622 추천수11 반대(0)

어린왕자에 그림이 하나 나옵니다. 중절모로 보이기도 하고, 뱀이 삼킨 코끼리로 보이기도 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같은 그림이 다르게 보입니다. 심리학에서는 같은 그림을 다르게 보는 성향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노파와 여인루빈의 꽃병입니다. 같은 그림인데 노파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젊은 여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그림인데 마주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꽃병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모습이 같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치 양자역학처럼 관찰자가 보는 것에 따라서 그림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같은 현상을 놓고도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서, 직책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기도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님을 신성모독의 죄로 고발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집과 아집이 마음에 들어오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됩니다. 형제들은 어머니의 묘소가 맞는다고 하는데 장남은 엉뚱한 묘지를 어머니의 묘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장남의 고집을 꺾지 못한 형제들은 결국 다른 사람의 묘를 이장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묘에 성묘하러 왔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의 묘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던 장남은 정중하게 사과하고, 이장했던 묘를 다시 원상으로 복구하였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이 말했던 묘를 다시 이장했습니다. 아집과 고집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빌라도는 아무런 죄가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결정했습니다. 대사제는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위해서 죽은 것이 좋다는 엉뚱한 예언을 하였습니다. 유다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 넘겼습니다. 호산나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했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아집과 고집이 진리이신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치매에 걸리신 어르신이 침상 밖을 나오다가 넘어져서 크게 다쳤습니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자꾸만 침상 밖으로 나오려고 하였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모두 걱정하였습니다. 어르신이 제대로 판단 할 수 없는 치매환자였기 때문입니다. 고령으로 제대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이 걸을 수 없을 거라는 이유를 찾으면 10가지도 넘었습니다. 다들 안타깝게 바라볼 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때입니다. 새로 온 막내 간호사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신발이 작네요.’ 보니까 할아버지의 신발이 정말 작았습니다.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발에 맞는 신발을 가져다 드렸습니다. 어르신은 힘은 들지만 신발을 신고 조심스럽게 화장실을 다녀오셨습니다. 걷지 못할 거라고 단정 지은 사람들의 눈에 할아버지는 치매환자였고, 걸을 수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품은 막내 간호사는 할아버지의 신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을 차별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한 때는 이집트에서 차별받던 이방인이었지 않느냐?’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가끔씩 인종차별 때문에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Black Lives Matter.'’Stop Asian Hate.'를 외치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백인도, 흑인도, 아시아인도, 남미에서 온 사람도 모두 이방인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편견을 버리는 것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회개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니느웨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고,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순시기를 지내는 것은 니느웨 백성들처럼 우리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했던 요나처럼 하느님의 뜻을 우리의 이웃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나는 너그럽고 자비롭도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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