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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성에서 신성으로 가는 길은 불가능한가 아니면 어려운 길인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12 조회수825 추천수3 반대(1) 신고

 

가톨릭 신자는 주일 미사 때와 묵주기도를 정상적으로 바칠 때 필히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바로 사도신경입니다. 처음에 우리는 "전능하신 천주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여기서 믿나이다의 믿다에서 믿는다는 것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요? 우리가 신앙고백하는 그 대상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는 그 사실도 말하겠지만 그건 액면적인 의미일 것입니다. 아마도 좀 더 정확한 의미는 하느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그 사실이 더 정확한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일 처음부터 고백하는 말씀이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거짓 고백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겁니다. 다른 분은 모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엄밀하게 말하면 거짓으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비자 때 수박 겉핧기식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배웁니다. 제가 개종 에 교리를 배운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잠시 배웠습니다. 그땐 보좌신부님이셨고 그분 교리 때 수요일 날에 한 번은 패션오브크라이스트 영화를 교리로 대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솔직한 고백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삼위일체 교리는 결론은 간단하지만 내용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가 되는 듯하다가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약 천삼백만원 정도의 가톨릭 영성 서적을 개종 후 탐독을 했지만 딱 두 권은 아직도 돌파하지 못한 게 있는데 하나는 로마노 과르니 신학자가 저자인 '주님'입니다. 또 하나는 7만원 정도 하는 삼위일체 이론입니다. 

 

주님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삼위일체 이론 그 책은 언젠가는 독파를 하고 싶습니다. 정말 삼위일체 책을 보면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천제적인 머리를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민법총칙보다 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 책에서 발췌독을 하면서 하나 그래도 건진 것은 있습니다. 예전에 본당에서 성경수업을 했는데 교구 봉사자가 나와서 하셨습니다. 그때 개신교 때 알고 있었던 내용을 설명해 주셨는데 이상한 해석을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한 게 틀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땐 제가 배우는 입장이라 수긍이 가지 않지만 아마 개신교에서 해석을 잘못 한 것이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우연히 그 내용이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삼위일체 교리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때 짜릿했습니다. 

 

저는 그 경험 때문에 어떤 부분은 책 한 장을 보는데 하루가 걸린 부분도 있었습니다. 워낙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때 그 신부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서론이 긴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 오늘 제가 묵상한 내용을 말씀드리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묵상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틀릴 수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다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이건 강론을 통해서도 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사실은 의문이 들지 않지만 저는 지금 의문이 드는 게 하나 있습니다. 삼위일체 이론의 결과를 보면 약간 인간적인 생각에 논리적으로 보면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질문을 제가 하면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더 쉬울 것입니다. 삼위일체 이론의 결론만 가지고 이 질문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부 하느님과 성자 하느님의 본성은 같은데 그렇다면 그런 논리로 본다면 성부 하느님도 인성을 지니고 계신다고 해야 맞는 말씀인데 그건 그렇지 않다는 건 어느 정도 성당을 다니면 아는 사실입니다. 이걸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수학적인 개념으로는 이꼴이라는 개념으로 등식이 성립하지만 그 등식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a=b=c 와 a=a=a 입니다. 전자의 등식과 후자의 등식을 합친 개념으로 이해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후자의 등식으로 보는 하느님은 본성은 다 하느님의 본성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a=b=c는 같은 분이라는 속성은 같지만 역할면에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성자 하느님이 인성을 가지고 계신다고 해서 성부 하느님도 인성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는 논리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려면 이런 전제가 수반되지 않으면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오늘 복음묵상의 핵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단 하나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달리 표현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인성을 가진 사람이지만 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인성대로 행하지 말고 하느님의 신성을 가지라는 말씀과 같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 말씀인 48절을 한번 유심히 보겠습니다. "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단순히 저희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뜻도 담고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굵은 글씨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속성인 신성을 너희도 가지게 되면 인간의 몸이지만 하느님의 신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을 저희에게 전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 43절과 44절을 한번 잘 보시겠습니다. 43절은 인간세상에서나 통용되는 말입니다. 44절 말씀은 인간세상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말씀입니다. 단지 이게 예수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43절과 44절 사이에 역접 접속사를 사용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같은 신성을 가진 모습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견주어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느냐 마냐의 기준이 바로 세례만 받았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인성으로서는 할 수 없으며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그걸 하지 않는다면 결단코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맥상 의미를 보면 분명 그렇습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뒷바침해 줄 수 있는 사실이 바로 46절과 47절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잘 보시게 되면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우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도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수준을 세리와 같은 수준으로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사실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사실 세리도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실제로는 그렇게 한다면 세리보다도 못하다는 말씀을 다르게 표현한 것과도 같습니다. 

 

결론입니다. 인성을 가진 인간이 하느님의 신성을 지닐 수 있는 존재로 되는 길은 무엇일까요? 인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인성을 초월한 신성을 가지려고 노력하면 그 신성이 인성을 신성으로 변화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그건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일체유심조'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근데 그게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불가능하다면 그런 말씀을 우리에게 하실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노력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만 바로 오늘 복음 마지막 말씀이 실현될 것입니다. 하느님처럼 저희도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되어야 한다고 필연성을 강조하셨다는 사실도 사실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이게 실현이 되어야 우리가 늘 하는 사도신경의 기도의 첫 고백이 거짓말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런지는 고민해보시면 답이 바로 나올 것입니다. 그 답은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내용도 잘 묵상해보시면 유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내용까지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아도 아주 긴데 너무나도 길게 될 것 같아서 다음 기회에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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