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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 에즈라 느헤미야기 개론[2/3] / 귀환과 성전의 재건[1] / 에즈라기[2]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12 조회수880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에즈라 느헤미야기 개론[2/3](에즈라/느헤미야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에즈 4,6-23에 들어 있는 문서들을 성전 건축이 아닌 다른 작업의 중단에 관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곧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시대에 이루어진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 시도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 같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치하에서 느헤미야가 이 작업을 재개하고 끝내려고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도 잘 설명이 된다(느헤 14; 6). 에즈 4,6-23에 나오는 행정 서신의 내용 자체도 분명히 성전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성벽의 복구에 대해서 말한다(4,12.13.16). 그렇다면 이 문서가 어떻게 해서 훨씬 이전 시대의 성전과 관련된 이야기 중간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모른다. 같은 페르시아 임금의 명령으로 중단된 작업이기 때문에, 에즈라-느헤미야기가 편집될 때에 다리우스 시대의 성전 건축 작업과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시대의 성벽 건축 작업을, 혼동하였을 수도 있다.

 

둘째 문제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각각 언제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였느냐이다. 본문이 말하는 연대순이다. 먼저 에즈라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제7년에 예루살렘에 도착해(에즈 7,7) 개혁활동을 한다(에즈 810). 그 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제20년에 느헤미야가 와(느헤 2,1) 예루살렘 성벽건축 활동을 수행한다(느헤 17). 그런데 느헤 8장에 따르면, 그 이전 느헤 17장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던 에즈라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 백성에게 율법을 봉독한다(느헤 89). 끝으로 느헤미야는 바빌론으로 돌아갔다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제32년에 두 번째로 예루살렘에 와 다시 활동하는 것이다(느헤 13,6). 그래서 이 두 사람이 같은 기간에 예루살렘에 살면서 서로 관련 없이, 서로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일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이는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둘 다 같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에게서 공적인 사명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에즈 7,11; 느헤 2,7-8).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설명이 제시된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 에즈라가 아주 잠깐만 머무르고서는 바로 페르시아로 돌아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두 사람 사이에 본격적인 임무 교대가 이루어졌다고 가정해야 한다. 느헤 89장에는 에즈라가 다시 돌아오고, 느헤미야는 페르시아로 갔다가 십여 년이 지난 뒤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게 된다는 것이다(느헤 13,6). 그러나 이 가정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 밖에 느헤미야가 두 번째로 예루살렘에 머무르는 동안에 에즈라가 귀향하였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한다. 이 경우 두 인물이 동시에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느헤 8,9도 설명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에즈 7,8에 나오는 연대가 수정되어야 한다. 곧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제7년이 아니라, 27년 또는 제37년이(곧 기원전 438년 또는 428)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역시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끝으로 느헤미야의 활동 전체를 에즈라의 활동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는 것인데, 이것이 그럴듯한 가설일 수 있다. 느헤 17장과 1013장이 바로 느헤미야의 재건축과 개혁 활동을 말한다. 그 뒤 상당 기간 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일세가 아니라 이세 제7, 곧 기원전 398-397년경에 에즈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해(에즈 7,7) 개혁을 수행하고(에즈 710), 율법의 장엄 봉독에 이어 경신례를 복구하는 것이다(느헤 89). 그러나 이 역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리고 에즈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에 느헤미야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느헤 8,9). 그러나 이는 두 사람을 같은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말하고자 했던 마지막 편집자에게서 나왔을 수 있다. 이 편집자는 두 인물의 체류 기간과 개혁 연대를 계산에 넣지 않은 채, 무엇보다도 평신도인 느헤미야보다 사제이며 율법 학자인 에즈라에게 우선권을 부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신학적 동기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의 연대를 흐트러트려 놓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하나의 가설일 뿐, 완전히 만족하는 해결책은 아니다.

 

아무튼 이 두 역사서가 자주 읽히는 책이 아님은 분명하다.[계속]

 

[참조] : 이어서 ‘3. 에즈라 느헤미야기 개론[3/3]’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에즈라,느헤미야,아르타크세르크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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