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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12 조회수749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주일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루카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묘사한 것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기술한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보면 기도 중에 만난 인물이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예언서를 상징한다는 말씀은 여러 신부님의 강론 내지는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코너를 통해서 여러 번 언급돼서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래서 마치 이 내용이 소설의 복선과도 같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구름 속으로 사라지신 후에 하느님의 소리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가 울린 것입니다. 그때 보인 것은 예수님의 모습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대해 여러 신부님의 강론이 생각납니다.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내용은 베드로 사도가 한 표현처럼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영광만 봤습니다. 그랬기에 초막 셋을 지어 각각 드리고 그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곧 있을 일이신 세상을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거친 후에 일어나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인데 베드로는 결과만 본 것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에도 한번 언급한 내용이지만 구두 장사하는 사람은 구두가 눈에 잘 들어올 것입니다. 가발 장사하는 사람은 사람의 머리를 잘 보게 될 것입니다. 마치 세상은 이와 같습니다.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게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관도 결정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결정될 수 있습니다. 사라지고 말 세상에 마음을 두느냐 아니면 영원한 세상인 천국에 마음을 두느냐 이게 관건입니다. 여기에 따라 결과가 완전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입니다. 이건 바로 우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끝은 바로 멸망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 세상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2000년 전 사고로 보면 당연한 내용이지만 이 내용을 현대인 지금 시점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은 신학을 하는 이유와 성서를 연구하는 목적이 이런 원인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성경의 근본적인 뜻을 유지하면서 시대에 맞게 해석하기 위해서 신학자와 성경학자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이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점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하늘의 시민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시민은 이런 기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처럼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와 아울러 당부하신 게 있습니다. 이런 것을 고대하며 주님 안에서 굳건히 서 있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으로 어려운 내용이지만 해답이 오늘 복음에 있는 듯합니다. 복음 35절에 나오는 말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입니다. 바로 말씀입니다. 지금은 하늘의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지만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해야 할 게 있습니다. 그에 합당한 조건이 되어야만 주어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듯이 말입니다. 

 

2독서 말씀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원수로 알것이 아니라 그걸 사랑으로 포용해야만이 우리가 멸망의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독서에서 말하는 멸망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뒤에 나오는 말씀을 문맥적으로 해석해본다면 마지막 날에 우리의 모습이 그리스도를 닮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가 되지 않으면 그게 멸망과도 같은 의미라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독서에 나오는 말씀 속에 드러나는 행간의 의미를 잘 보면 그렇습니다. 이와 함께 또 하나 중요하게 볼 게 있습니다. 세상 것만 추구하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는 그게 영광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그게 영광이 아니고 수치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 것은 그 어떤 영광도 영광이 아닐 수 있다는 말씀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논리로는 이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는 오로지 하늘나라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하늘나라의 시민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이 주는 달콤함 속에 묻혀 이 세상 것만 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 결과는 바로 멸망의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길임을 오늘 복음이 저희에게 주는 교훈인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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