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13.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12 조회수1,517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 9, 28-36(사순 2 주일)

 

오늘은 사순 제2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믿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는 장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많은 후손을 약속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창세 15,6)

 

이처럼, 아브람의 믿음 위에 계약을 맺으시고 그의 후손에게 줄 땅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화답송>에서는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시편을 노래합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으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시 27,7-8.13.)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멸망이 오고, 믿는 이들에게는 “당신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시켜주실 것”(필리 3,21)이라고 하면서,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필리 4,1)라고 말합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수난을 앞두고,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미리 보여주면서 제자들의 믿음을 굳세게 합니다.

복음사가는 먼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려 산에 오르셨다.”(루카 9,28)고 전합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을 때나 겟세마니에서 십자가를 받아들이셨듯 때처럼, 중대한 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줍니다. 곧 죽임을 당하시기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시간이 임박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시던 중에 변모를 이루시는데,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루카 9,30).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루카 24,4;“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 귿르에게 나타났다.”)에 나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예언자들을 대표하며,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출애굽을 통해 약속된 땅으로 인도했듯이, 엘리야가 불붙는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듯이, 그들이 예표한 바가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될 것을 미리 알려줍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니며 예언을 이루시는 분이요, 예언된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아니라 엘리야 다음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임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날 일을 말하고 있었습니다.”(루카 9,31). 이는 예수님께서 이루실 구원과 그를 위한 수난과 죽음을 알려주심과 동시에,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나중에 부활 무덤 안에 나타난 “두 남자”의 말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들은 당황하는 여자들에게 말합니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나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루카 24,6-7)

 

결국,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1코린 15,3.4) 이루어지게 될 것이며,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습니다.”(루카 9,34). 그리고 그 속에서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우리는 이와 유사한 말씀을 예수님께서 세례닫으시는 장면에서도 들었습니다. 곧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마르 1,12;마태3,17)라는 말씀입니다. 이 둘은 예수님의 신원을 아버지께서 직접 밝혀주시는 장면입니다. 전자는 그 신원을 예수님께 밝혀주시는 장면이고, 후자는 제자들에게 밝혀주시는 장면입니다. 전자는 <2사무엘>(7,14)에 나오는 나탄의 예언을 이어받은 <시편>에 나오는 “너는 내 아들”(2,4)이라는 표현과 <이사야>에 나오는 “내 마음에 드는 이”(42,1)라는 표현이 합쳐진 것으로, 메시아인 “왕”“주님의 종”이라는 두 예언적 인물을 합쳐줍니다. 그리고 후자는 <이사야서>의 “내가 선택한 아들”(42,1)이라는 “고통받는 주님의 종”(53장)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뒤에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께 대한 유혹의 말, 곧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 23,35)라는 말로 다시 반복됩니다. 그러니 이는 예수님을 인류구속을 위해 죽게 될 “종”임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신원을 밝혀주시며,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가르쳐주십니다. 곧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하시며, 그들이 아드님처럼 영광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흔히 말하기를 ‘은혜로운 회개의 때’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 걸까? 지금, 나에게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아니라면, 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가? 혹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지 못해서 일까? 아니면, 그분의 가르침과 말씀을 듣지 못해서 일까?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모든 선물을 받고 또 받았습니다. 우리는 진정 그분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들은 말씀에 응답하지 않는 까닭에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일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나는 말씀 아래 머물러 있는가? 들은 말씀에 응답하고 있는가?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실현되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말씀 아래에 머무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들려오는 말씀이 내 안에서 성취도록 말씀께 승복하는 일입니다. 말씀께서 나를 맘껏 쪼물딱거릴 수 있도록 말씀께 자신을 허용하는 일입니다. 말씀의 힘을 수락하는 일입니다. 변화의 힘이신 말씀께 자신을 건네 드리는 일입니다. 내 자신이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초막이 되어 드리는 일입니다. 내 자신을 그야말로 말씀이 이루어져야 할 공간이요 장소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은 내 자신이 아니라, 말씀을 주인 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주님!

말씀 아래 있게 하소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말씀이 제게서 실현되게 하소서!

말씀에 응답하는 일, 바로 그 일을 제가 하게 하소서!

말씀으로 변모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