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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86) 나의 젊은 가난이 이웃에게는 무엇이었길래?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16 조회수1,041 추천수1 반대(0) 신고

(486) 나의 젊은 가난이 이웃에게는 무엇이었길래?

                                                        이순의

 

얼마 전 해에 전화 한통을 받았다.

30년 정도 전에 이웃으로 살았던 벗께서 나의 전화 번호를 알아내려고 애를 썼노라며, 기어이 통화를 하고 싶었단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느냐고 여쭈니.........

 

성당에 다니는 지인께 꼭 찾고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였단다. 그래서 이름을 알려 주니 굿뉴스에 동일한 이름의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과 맞는지 모르겠다고 하여, 서로 글의 내용과 삶의 추적이라든지! 섬에서 살은 줄거리들이 맞아 떨어졌고.

 

결국 그 지인이라는 교우분께서 적극 나서서 당시에 내가 거주하던 본당까지 알아내어 , 강산이 거의 세번이나 바뀌었을 만남을 이어주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였고, 본당 사무실에서는 본인인 나의 동의도 없이 덜컥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전화를 본당 사무실에서 전화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나는 거절하지 않고 오랜 반가움에 흔쾌히 동의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반가운 젊은시절의 이웃이자 벗께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간단하면서 반가운 인사가 전해지고 이어서 아이들 안부를 묻게 되고!!!!

 

그런데 장성한 자식들의 안부를 묻는데 오랜만의 안부치고는 너무나 황망하여........

내 아이의 안부에 대하여 안부를 묻기에 대학은 어디를 갔고, 지금은 직장을 다니다가 퇴직하고 새로운 목표를 공부하기시작했다고 전하던차에........

<서울대도 못 갔구먼. 그런데 그렇게>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아이들이 유치원도 가지 전에 이웃으로 살다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헤어진 이웃 벗께서 거의 30년만에 전화를 해서 한다는 소리치고는 너무나 모욕적이었다. 바로 착신 번호로 전화를 하였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처음 몇일간은 참으로 분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견딜수가 없었고, 굿뉴스에 묵상글을 올린 나의 노출에 대하여 후회가 막심하였고, 본당 사무실 직원들의 전화번호 노출이라는 경솔함도 원망스럽기 이를데가 없었다.

 

거의 몇년을 화를 풀지 못해서 그분께서 운영한다는 매장으로 찾아가 강산이 세번이나 변하도록 마음이 모질었을 그분을 수소문하여 만나볼까도 여러번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시간은 약이었고, 고단한 삶은 나를 돌아보게 했고, 유치원 생이던 아들은 장성하여 엄마에게 조언을 시작했다.

 

나는 반지하 방 한칸에 살았고, 그분은 2층집에 방이 둘이고 거실도 있는집에 아이도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어떤면으로든 나보다 부자였고, 동네 아낙들과 두루두루 모여 운전면허 학원도 다녔고, 내 아이는 학습지 한 장 시켜줄수 없을 때 동네 아이들이 모여 구룹과외를 하는 모임에도 섞여 있었다. 또 얼마지나지 않아서는 집을 사서 이사도 하였고, 그 이사한 집에 집들이도 갔었다. 

 

반대로 나는 운전면허 학원비가 없어서 그 아낙들 사이에 끼지 못했고, 학습지 한 장을 살 돈이 없어서 미니스케치북을 사서 골목에 버려진 헌 학습지를 주어다가 비슷하게 그려가며 창작해가며 만들어서 내 아이도 뒤처지지 않게 그렇게라도, 그런 노력이라도, 해서 자식을 키워 내야하는 젊은 엄마였고, 동네 아이들은 엄마랑 아이랑 같이 만들어서 놀이처럼 배우는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단칸방인 우리집에 오는 걸 좋아했고, 

 

그래도 동네 친구들이 구룹과외를 하는 날에는 못가게 해도 어느틈에는 그집 문턱에서 친구들이 선생님이랑 재미있게 공부하는 것을 구경하여서, 2층집 이웃께 주의를 받아야 했었던.......

그래서 아빠께 돈을 좀 빌려 오라고 해서 그 구룹과외 책과 학습지들을 샀다, 더 이상 친구들 속에 끼지 못하고 현관문턱에서 구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미된 아픔으로 무리를 해서 소속감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한 달도 안되어서 그 구룹과외가 해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 아파트로 가서 하게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 구룹의 엄마들은 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하지 않았다. 사놓은 책과 학습지들은 또 아이랑 엄마랑 둘이하는 놀이가 되었고, 내 아이는 엄마랑 그려서 하는 학습지도 좋아했지만 그 학습지와 책들도 매우 만족하며 즐겁게 놀았다.

 

그리고 인생의 지팡이가 시켜서 섬마을로 이사를 가야했고,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던 그 틈에도 끼지 못하고, 또 떨어졌다느니, 어땠다느나, 하는 그들의 대화를 속으로는 부럽게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섬에 가서 농사를 지으려면 운전을 해야하니 운전학원을 가라고 남편이 학원등록비를 주었다. 그런데 다섯번 떨어졌네. 세번 떨어졌네. 하며 아낙들끼리 하하호호하며 즐기던 시험을 나는 한 번 등록하여 한 번에 실기까지 모두 합격하고,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것이다.

 

다같아 모여 끼리끼리 하하호호하던 젊은 날의 벗들 중에서 가난해서 가장 늦게 학원에 등록한 내가 가장 먼저 면허증을 취득한 기억들! 그 면허증으로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 그래도 나의 젊은 날의 가난한 반지하 단칸방 시절의 그 벗들이 나는 그립고 좋았다. 그때는 큰 기대감이 없었다. 처녀시절에 시설에서 봉사해 본 경험은 손가락이 열개고 발가락이 열개고 때 되어 걷고 또 때되어 말하고..... 이런 모든 것이 행복이었고, 학습지 살 돈이 없으면, 그 학습지를 살 돈을 벌러 가는 길을 택하기 보다, 그 학습지를 만들며 아이랑 함께하는 시간을 택했으므로 나에게는 큰 욕심도 기대도 없었다.

 

환갑이 넘은 지금 생각해도 그때 돈벌러 가지 않고미련스런 가난을 택하여 살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자식의 인생을 어미가 모르므로 두가지의 삶을 가르쳐 주고 싶었을 뿐이다. 속인의 삶과 성직의 삶! 어떤 삶을 살아도 인생이 인생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공부를 다그쳐 본 적도 없고, 목표를 정하여 첵망한 적도 없다. 심지어 영어 일기를 써 오라는 중학교 숙제에 엉망인 아들을 도와줄 수 없어서, 본당의 보좌신부님께 그 일기장을 도와달라고 청하는 엄마였다. 

 

다행히 보좌신부님은 뭐라고 영어로 적어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영어일기장은 영어도 아니고 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가끔은 그 보좌 신부님을 떠 올리며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추게 된다. 또 아주 가끔은 그 신부님께 전화 드려서 지금은 영어를 잘 한다고 알려 드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듯이 나는 아이에게 서울대를 가야된다는 상상도 해 본적도 없고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도 없다. 그런데 강산이 세번이나 변했을 세월이 흐른 뒤에 코흘리게 내 아이가 어른이 된 지금 <서울대도 못갔구먼, 그런데> 라고 딸깍 끈어버리는 전화를 받고 참! 

 

2022년 사순시기가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지구 전체가 격리기간 중이기도 하지만, 나의 신앙도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예전처럼 미사도 성체조배도 신앙활동도 심지어 기도조차 금지 되어 있다.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던 마음도 시간은 또 약이고, 시련은 비움을 낳고, 내 인생을 내가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는 겸손을 발견한다. 이대로를 인정하자. 하늘의 때가 되면 또 하늘의 지팡이가 나를 움직여 인도하시겠지.

 

나는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살았을 뿐이다. 가난한 걸뱅이인데 굴하지 않아서 미움을 받았을까? 그 오래 전의 이웃인 벗의 전화로 참으로 근래의 몇 년동안 나를 돌아 보게 되었다.

남들이 알지 못하지만 속으로 얼마나 가난한 물질이었던가?! 그러나 그 가난한 물질에 굴하지 않고 살게 하신 것도 하늘의 뜻이요, 굽히지 않고 만족하여 노력하고 골병든 인생도 하늘의 뜻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단 한 순간도 내것이 아니었으며, 지난 고생과 모욕들, 그리고 작은 사랑과 행복들, 질투와 자선 등등 모든 것이 하늘의뜻이었다는 것을!

 

30년 전쯤에 어찌 상상하고 살았겠는가?

30년쯤 후에 이웃인 벗께서 추적하여 나를 알아내고 모진 모욕을 하리라는 것을 그때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걸 알았다면 그집의 남매들에게 내가 이웃 사랑을 줄 수 있었겠는가? 몰랐으나 줄 수 있었던 이웃 사랑이었을 것을! 30년 씩이나 그런 마음을 품은 그분의 마음이 그 전화 한 통으로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아직도 편하지 않다면 그 또한 내가 다스릴 것은 아니며,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늘께서

그 젊은 날의 벗의 마음을 편케 하소서.

 

<이보시오. 우리 아들은 서울대도 못 갔구요. 지금도 공부 중이라서 어미가 먹여 살려야 한다오. 그러니 댁의 귀한 남매 보다 잘나지 못하다고 여기시고 고소하게 기뻐하시구랴. 그러셔도 괜찮아요. 댁의 귀하신 남매와  그런 내 아이는 절대로 절대로 바꿀 수 없을테니까요. >

 

내 인생도 내가 마음대로 못해서 하늘 뜻 대로 사는데, 자식의 인생을 어미가 어찌 안다는 말인가?! 

다 하늘의 뜻대로 사는거지!

이래서 고해성사 끝에 이 기도를 해야하는 것이었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하여도 사하여 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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