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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과의 시간/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19 조회수1,271 추천수1 반대(0) 신고

 

하느님과의 시간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과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체 방황을 하고 있다면

먼저 자신이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그리고 자신은 누구인지를

먼저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갈망하는 분에 대해 분명히 알고

다가가야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려는 대상과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감내해야 할

일들도 살펴보고 사랑하기 위해

자신이 버려야할 것과 치러야할 대가에 대해서

헌신적인 마음가짐을 가질 때

비로소 초점이 생겨나게 된다.

상대에 대한 통찰과 이해심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위해선 대상에 대한

관심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하느님을 청하기만하면

주시는 분으로 착각을 한다.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

자식 간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서로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사랑이 전해짐으로써

마음의 일치가 이루어지고

헌신적 사랑의 결실이 맺게 된다.

하느님과의 만남에서도 이러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일방적인 관계를 맺을 뿐,

남남이나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소통한다는 것은 대상자가 자신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어야 소통할 수 있는

시초를 만들어 갈 수가 있다.

생각날 때만 기억하는 것은

소통의 관계가 될 수 없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 자신의 삶이

하느님 안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충분한 교분의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에게 성큼 다가간다면

그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겁을 내거나 주의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표징을 보이도록

어느 정도의 노력을 줄 때,

상대도 마음의 문을 열게 되듯이

하느님과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한다.

그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체험관계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상대가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데

혼자서 친한척하고 혼자서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도 그것은 짝사랑에 불과하다.

짝사랑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진솔한 마음이 전달되고

그 마음이 상대의 마음의 문을 열게 될 때

비로소 사랑의 시작단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관심을 열도록 하는 것은

필수적인 기도이다.

그러나 기도가 친밀하지 못하고

거룩한 변모를 위한 기도가 아니면

짝사랑과 같은 기도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그 영광은 우리를 구원의 단계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글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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