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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생활을 하긴 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20 조회수1,378 추천수1 반대(0) 신고

 

과일 농사를 짓는 농부를 보면 봄, 여름, 가을 이렇게 세 계절을 열심히 나무를 가꾸고 해서 가을에 최종 수확을 앞두고 기다릴 때 일년농사를 지으면서 보람을 맺는 기쁨은 풍성한 수확의 기쁨이 가져다 주는 결과물입니다. 수확의 기쁨 앞에서는 그간 힘든 모든 노고가 다 눈 녹듯이 한순간 다 사라집니다. 예전에 외가와 당숙모님이 딸기 농사를 경남 진주에서 지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농사를 짓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농부의 마음이 어떤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직업이 농부이기도 하셨습니다. 비유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까?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마음도 이와 같은 농부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이라는 곳에 당신의 씨를 뿌렸던 것입니다. 이 씨는 신앙의 씨앗입니다. 마치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탯줄로 연결됐을 땐 탯줄을 통해서 영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에 그냥 자연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땐 엄마의 또 다른 보살핌이 없다면 살 수 없게 됩니다. 처음엔 젖을 먹고 이유식을 먹고 하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밥을 먹으면서 차차 성인으로 변화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한 인간이 성장하는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씨에서 싹이 돋아난 것과 같을 것입니다. 마치 세례를 받기 위해 예비자 교육을 받은 것은 엄마의 뱃속에 있는 태아와 같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의 자녀라는 씨는 싹이 틋지만 이 싹이 잘 자라서 나중에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말라 죽는 사람도 있게 됩니다. 이런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여기서는 하느님에게 있는지 우리 신앙인에게 있는지 하는 책임소재는 논외로 하고 한번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비유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삼 년째 와서" 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이 표현을 자세히 보면 삼 년 후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면 모르겠는데 삼 년째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해마다 오셨다는 것입니다. 가령 삼 년 후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면 이 둘의 미세한 의미상 차이를 한번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삼 년 만에와 삼 년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나무가 됐든 씨앗이 됐든 그 결과물인 열매를 맺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 사실상 내포된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굳이 삼 년째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을 리가 만무할 것입니다. '째'라는 접미사에서 묻어나는 이미지는 기다림이라는 인내심의 한계와 같은 그런 느낌도 듭니다. 왜냐하면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삼 년 동안이나 열매가 맺었는지 기다렸지만 맺지 못하는 걸로 보니 잘라버리시려고 하는 말씀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아는 하느님의 속성과 약간 배치되는 면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기다림에도 인내가 있다고 하는 일반적인 성향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인내가 없어서셔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여기서 하느님은 예수님과 같은 동일 신분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복음 말씀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로 인해서 땅이 훼손되는 그런 결과가 있기 때문에 땅마저도 못쓰게 되는 걸 막기 위한 방편이 되기 위해서 무화과나무를 잘라버리려고 하셧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씀 같습니다. 오늘 비유에서 등장하는 이 땅은 그렇다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신앙공동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앙공동체라는 땅에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영적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 공동체는 하느님의 숨결이 숨어 있는 땅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게 된 것은 오늘 제2독서 말씀 때문에 하게 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바위에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모두 영적 양식을 먹고 영적 음료를 먹은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들이 사실 광야에서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죽어서 널브러졌다고 할 정도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원인은 바로 악을 탐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경고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독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제2독서 마지막 말씀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열매는 바로 회개라는 열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서 또 영적으로 공동체에서 보살핌을 잘 받고 있다고 해도 우리 개인 개인의 신앙의 삶이 하느님 말씀 앞에서 회개의 삶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열매가 맺지 못하게 되면 그건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에도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될 때는 공동체의 다수를 위해서 그 하나의 나무 때문에 전체 땅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자르시겠다고 하시는 비유를 말씀하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칫 잘못 이해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회개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결과가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니고 자신의 삶이 회개가 되지 않아서 공동체에 누가 되는 그런 상황이 일어날 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주의 깊게 묵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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