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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떻게 하면 율법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23 조회수905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오신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이해를 한다면 약간 논리적인 모순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예수님 시대에 있었고 또 그 이전에 계속 존속해왔던 율법이나 예언은 불완전하고 또 불완전했다는 이런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뜻에서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머리로 하느님의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부족한 인간의 생각으로 그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원래 개별적인 율법 하나 하나는 분명 완전한 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율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사람이 문제였을 겁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어떤 뜻입니까? 하나의 법을 가지고도 해석하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때 흔히 범할 수 있는 오류입니다. 한마디로 이건 법이나 세상 모든 논리를 자기 유리한대로 임의적으로 해석할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세상에서도 법이라는 것은 공정해야 하고 또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은 법이 정의라는 원칙에 어긋나는 이율배반적인 논리입니다. 마치 이런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강생하시여 오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죽음의 그늘에 있는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이라는 것은 왜 일어난 것인가요? 야고보 성인의 말씀에 의하면 죄로 인해서 생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성경적인 해석에 의하면 인간의 욕심과 탐욕이 불러온 결과인 것입니다. 이런 욕심과 탐욕의 근원도 자세히 보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남과 함께 공존하고 공생하려고 생각한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강자는 약자를 짓눌러야 합니다. 그냥 힘으로도 누를 수 있습니다. 이때 힘이라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물리적인 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은 법망을 잘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럴까요? 인간이 만든 법에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로 이런 것 때문에 헌법소원도 있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법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과 율법은 완전함에도 왜 미완의 법이라는 것이라고 하는 말씀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 당시에 저명한 율법학자와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로 보면 사회의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율법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법을 마치 인간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계명을 자기들의 안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적용하고 또 계명을 악용해왔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원래는 완전한 것이었지만 완악한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로 생긴 이 현상을 바로잡지 않으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인류구원이라는 대업을 이루시기가 어려우실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렇다면 그 율법을 어떻게 하신다면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실 수가 있을 것 같습니까? 부족한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의 대원칙을 정하신 것 같습니다.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신 대명제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들 익히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부자청년과 나눈 대화에서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계명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것은 가난한 이를 위해서 사는 것처럼 사랑 실천이 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자선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의 완성의 한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많은 율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법이라는 것은 법의 이념인 대원칙이 있으면 그 원칙에 따라 법을 해석하면 가장 합리적인 법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래서 법의 최종 해석은 헌법이념에 입각해서 법을 해석하는 원리와 같을 것입니다. 헌법이념에 부합한 이론이 바로 하느님의 가장 큰 계명의 정신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는가를 가르쳐주신 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대전제가 산상설교와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산상설교는 아주 훌륭한 하느님 나라의 헌법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헌법 정신은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됩니다. 어려워서 어려운 게 아니라 실천하려고 하는 의지가 결여됐을 땐 그게 어려운 것이 되지만 그걸 실천하려고 하는 의지만 강하다면 그리 어려운 것만도 아닙니다. 사실 산상설교도 자세히 곰곰이 생각하면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려면 마음이 가난해야 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할 때만이 이것도 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원리가 하늘나라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저희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방법이 율법을 완성하는 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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