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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겸손한 사람일수록 꿈도 소박할까?
작성자김 글로리아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24 조회수1,286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2년 다해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겸손한 사람일수록 꿈도 소박할까?>

 

 

 

 

복음: 루카 1,26-38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은 ‘성모 영보 대축일’입니다. 현재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에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것을 허락하신 날입니다. 

    

 

    성모님의 ‘아멘!’, 곧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가 아니었으면 구세주께서 온전한 방법으로는 세상에 오실 수 없으셨습니다. 성모 마리아 외에는 모두 원죄를 지니고 있어서 그 원죄에 물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원죄가 없으심은 곧 하느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받아들임은 바로 가브라엘 천사의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란 말씀을 받아들임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임이 겸손함입니다. 

우리도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고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만약 고철 쇳덩어리가 하나 주어졌다고 합시다. 능력이 없는 아이는 그것으로 엿을 바꿔 먹을 것입니다. 그런데 능력자라면 어떨까요? 그것으로 훌륭한 칼을 만들어 자기 능력을 뽐낼 것입니다. 하느님도 그러시지 않을까요?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만들 수 있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꿈을 작게 갖는 것이 겸손하다고 착각합니다. 능력자들은 무엇을 주어도 다 쓸모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그들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히틀러와 같은 인물도 꿈을 크게 가져서 그렇게 되었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자존감이 낮습니다. 그들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그래서 인정받으려 꿈을 갖는 것입니다. 혹은 그 반대로 자존감이 약하여 무기력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다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떠한 목적으로 창조하였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크게 감명받았던 영화가 있습니다. ‘파워 오브 원’(1992)입니다. 

    피케이는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영국계 아프리카너입니다. 농장주인 아버지는 코끼리에 밟혀 죽었습니다. 혼자남은 어머니마저 쓰러지자 어린 나이에 독일인 기숙사 학교에 보내집니다. 당시 영국이 남아프리카를 지배하고 있어서 학교 내에서 유일한 영국인인 피케이는 독일계 아이의 호이포에게 학교폭력을 당합니다. 견디다 못해 오줌싸개가 되고 주눅들어 삽니다. 

 

 

    그런데 자신 가정부의 소개로 줄루족 주술사에게 용기를 배우는 예식을 받습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를 밟았던 커다란 코끼리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장면이 압도적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할아버지께 돌아왔을 때, 피케이는 할아버지의 친구 독일인 박사님과 같이 지내면서 자연의 신비와 머리와 가슴을 쓰는 법을 배웁니다. 독일인 친구들에게 당했지만 그렇다고 독일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켜 남아프리카에 있는 독일인들이 흑인들과 함께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할아버지의 친구도 독일인이기에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피케이는 박사님을 만나러 감옥을 드나들면서 흑인 기엘 피트로부터 권투를 배웁니다. 피케이는 그들의 말을 하면서 흑인들로부터 환영받습니다. 흑인들은 피케이를 전설에 나오는 레인 케이커, 곧 비를 내리게 하고 갈등을 풀어주는 사람으로 믿습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피트는 자신의 동족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수용소 안에서 음악회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백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게 그들을 욕하는 가사를 모든 흑인이 부르게 합니다. 흑인들은 피케이의 도움으로 부족 간의 불화를 종식하고 한목소리를 노래합니다. 이에 그 가사 내용을 들은 백인 간수가 피트를 때려죽입니다. 죽어가던 피트는 피케이에게 당신이 레인메이커라 말합니다. 그리고 머리로 싸우다 가슴으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말해줍니다. 

 

 

    그러나 피케이는 여전히 그들이 믿는 전설의 레인메이커가 자신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18살이 된 피케이는 권투 시합에서 우승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리아도 만나고 흑인들의 자랑인 드마 기드온과 흑인거주지역에서 권투 시합을 벌입니다. 피케이는 흑인으로만 둘러싸인 지역에서 기드온을 케이오로 이깁니다. 기드온은 일어나 피케이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리고 레인메이커임을 사람들 앞에서 선포합니다. 

 

 

    피케이는 기드온의 설득에 따라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레인메이커가 됩니다. 배워야 평등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피케이는 흑인을 위한 야학을 차리지만, 백인들에 의해 좌절당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리아도 죽임을 당합니다. 피케이를 잡기 위해 경찰과 광기에 사로잡힌 보타 상사가 흑인거주지역을 습격합니다. 피케이는 간신히 살아남아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해 기드온과 함께 떠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어린이는 대통령이 되고 싶고 달나라도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냥 무탈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그러면 안 됩니다. 하느님은 나에게 작은 꿈을 꾸지 않으십니다. 내게 닥치는 운명에 물러서지 맙시다. 그것이 코끼리처럼 나를 짓밟으려 해도 나를 만드시는 분은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이십니다. 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모 마리아를 닮는 길입니다. 

 

 

    피케이에게 권투를 알려준 기엘 피트나 사람들에게 자신이 레인메이커임을 선포한 드마 기드온은 성모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믿든지 믿지 않든지 자신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하실 모든 것에 열려 있었습니다. 겸손하게 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의 능력과 자비를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가장 귀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화장실 변기를 수백억 원의 작품으로 바꾼 인물이 있습니다. 예술가 바르셀 뒤샹입니다. 그는 변기를 뉘어놓고 ‘샘’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 변기를 수많은 사람이 박물관에서 보며 감탄합니다. 예술가가 변기를 보며 자신의 예술성을 증명하려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인간을 보며 어떤 것을 증명하고 싶으실까요? 

    살아있는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믿기만 한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가장 고귀한 존재로 만드실 것입니다. 신앙인인데 그러한 큰 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오히려 하느님을 믿지 않는 교만이 됩니다. 구약과 신약의 요셉처럼 하느님께서 나를 향해 꾸는 꿈을 이루어드립시다.

 

 

 https://youtu.be/0iOmk5bI5rY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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