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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27 조회수1,277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에 스스로 의롭다는 바리사이, 예수님, 흔히 말해서 나는 죄인이요 하는 세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나는 의롭다는 바리사이는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죄인들과 같이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나에게 주기로한 재산을 주세요.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집을 나갑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무런 감사하다는 말이 없이 집을 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을 탕진하여 버립니다. 그리고 다시금 아버지에게 돌아가겠다고 하는데 그런데 아버지에게 회개를 하기 위해서 간다는 것 보다는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는 자신을 내치지 않으실 것이라는 마음으로 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먼 발치에게 아들이 오는 것을 보시고 먼저 달려 갑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이전의 일은 잊고 아들의 입에 입 맞춤을 하고 그리고 자신의 옷을 벗어서 입혀 줍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살진 소를 잡아서 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밭에서 일을 하던 큰 아들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 잔치의 광경을 보고 큰아들은 어찌 된것이냐고 물어 봅니다. 순간 집안의 하인이 작은 아들이 돌아와서 주인님이 잔치를 배푼다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순간 큰 아들은 아버지에게 서운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저는 이날 이때껏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서 죽도록 일만 하였는데 저애게는 염소 한마리 않주시더니 방탕한 동생에게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냐고 하면서 아버지에게 따집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은 작은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 돌아와서 기쁘다는 것이고 큰아들은 나와 항상 같이 있었으니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나 큰 아들은 아버지의 자식입니다. 그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자비로 살 수 있었습니다. 무한한 사랑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들은 아버지로 부터 무엇인가 받아가는 것을 당연히 생각합니다.

 

자식들이 인간이라면 아버지는 하느님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다는 것은 시선의 방향이 나로 향하는 것이라면 의로움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시선 방향 같이 무한히 퍼주는 무한 사랑입니다. 예전의 죄를 따지지 않고 당신에게로 오는 사람은 무한히 안아 주고 사랑을 무한히 주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이 유한으로 시선이 향하고 있다면 아버지는 무한으로 향해 있습니다. 구원은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 안에 머무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 안에서 의롭거나 죄인의 구분하는데 집중하지 말고  주님 자비심에 머물러라입니다. 

 

무한한 자비를 너도 받았으니 너도 다른 사람들에게 무한한 자비를 배풀라는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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