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31 조회수1,742 추천수10 반대(0)

우연한 기회에 신학교 선배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1995년 이집트,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같이 갔었습니다. 1997년 미국으로 유학 온 선배는 열심히 공부하였고, 박사학위를 마쳤습니다. 이제 교구로 돌아가면 쉽고 편한 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교구청에서 주교님을 도와서 일할 수도 있었습니다. 본당사제가 되어서 공동체와 함께 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느 것이든지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배는 메주고리예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마치 바오로 사도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체험하고 삶이 변했던 것처럼 선배도 메주고리예 성지순례를 하면서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교구의 방침에 따라서 일단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성지순례 중에 체험한 것이 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그리고 교구장님의 허락을 얻어서 교구사제에서 미국에 있는 카프친 수도회 사제로 소속을 바꾸었습니다.

 

선배 사제의 차는 작은 경당 같았습니다. 뒷좌석에는 제의가 있었습니다. 차의 오디오에서는 성시간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니 오랜 시간 운전도 즐겁다고 합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장밋빛 미래는 아니었을 겁니다.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들에게는 배신자로 취급당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교구를 떠나 수도회로 자리를 옮긴 선배도 예상치 못한 일로 오해를 받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묵묵히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메주고리예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헤어지는 길에 선배는 메주고리예 성모님의 메시지를 번역한 책을 주고 갔습니다. 성모님의 전구하심으로 건강하게 주어진 소명을 다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1981년에 시작된 메주고리예 성모님의 발현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성모님의 발현이 계속되고 있기에 교회는 공적으로 성모님의 발현지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신자들과 사제들의 순례는 허락하고 있습니다. 순례지에서 행해지는 전례와 신심활동이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교황특사를 파견하였고, 메주고리예 성지가 교회의 가르침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6년 처음으로 메주고리예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전례는 거룩했습니다. 손에 묵주를 들고 순례하는 신자들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거룩한 전례와 아름다운 신자들이 만났으니 그곳은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와 같았습니다. 그 뒤로도 신자들과 함께 메주고리예 성지순례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은총이 넘쳐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의 메시지는 다른 성모 발현지의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기도할 것을 요청합니다. 미사, 묵주기도, 성경읽기, 성체조배, 성시간, 십자가의 길, 화살기도와 같이 적어도 하루에 3시간 이상 기도하도록 요청합니다. 굳은 신앙을 요청합니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인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며 오직 그분만이 평화를 주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회개를 요청합니다. 죄로 인해 닫힌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도록 요청합니다.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삶의 변화가 있을 수 없고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단식을 요청합니다. 단식은 비단 음식을 포기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이기적인 자아를 죽이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형되는 것입니다. 평화를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평화를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길은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고, 그분께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 신앙, 회개, 단식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이웃과 하느님께 어떤 다리를 놓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부정과 비난의 다리는 분노와 미움을 키우게 됩니다. 칭찬과 긍정의 다리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이웃들에게 비난과 부정의 다리가 있다면 그것을 치워버리고 칭찬과 격려, 긍정과 사랑의 다리를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으로 세상을 보셨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신앙의 눈, 믿음의 눈, 사랑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길가에 핀 작은 꽃에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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