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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5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02 조회수2,009 추천수8 반대(0)

198854일 군대에서 제대하였습니다. 3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났고, 같은 모양의 머리 모습을 해야 했습니다. 아침과 저녁에는 인원점검을 하였습니다. 군복을 입었고, 창의적인 일보다는 시키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였고,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저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었고, 늦잠을 자고 싶으면 잘 수 있었습니다. 군복이 아닌 옷을 입을 수 있었고, 머리도 자유롭게 기를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신학생이었기 때문에 성소국장신부님께 인사드리러 갔습니다. 성소국장 신부님은 복학할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지 물었습니다. 저는 청소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복학 할 때까지 돈보스코 청소년 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돈보스코 청소년 센터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 학교 공부에 적응을 못하는 학생들이 기술을 배우는 학교였습니다. 학생들은 기술을 배우면서 방송통신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였고, 매일 아침에 미사를 보았습니다.

 

제게 주어진 일은 학생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신부님을 도와서 미사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할 때 옆에 있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방송통신 고등학교에 갈 때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과 함께 농구, 축구를 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10개월간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낮에는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야학에서 선생님들에게 배웠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학생들에게, 잠시 방황으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학생들에게도 돈보스코 센터는 새 하늘과 새 땅이었습니다. 기술을 배운 학생들은 취직하여 새로운 자리로 옮겨 갔고, 방송통신 고둥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돈보스코 센터는 학생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몸은 힘들고, 기숙사에서 지내는 것이 마치 군대에 있는 것 같았지만 제게는 그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온 신부님들과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자칫 무료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복할 할 때까지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정한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여인은 돌에 맞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돌에 맞으면 죽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죽을 때까지 돌에 맞아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이 여인을 어떻게 할까요?’ 여인의 입장에서 그 자리는 심판의 자리였습니다. 이제 곧 돌에 맞아야 하는 고통의 자리였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며 죽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자리에 앉아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습니다. 한참이 지난 다음 예수님께서는 돌을 들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죄가 없는 사람들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그러자 나이가 많은 사람들부터 자리를 떠났습니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자신들도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이야기합니다. ‘당신도 돌아가시오.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 예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았던 여인에게 이제 심판의 자리였던 곳, 돌에 맞아 죽어야 했던 곳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었습니다. 죽어야 할 여인은 이제 새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시간과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척박한 광야라 할지라도, 설사 감옥이라 할지라도 그곳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헤로데의 궁궐일지라도, 풍족한 삶일지라도 새 하늘과 새 땅은 될 수 없습니다. 순교자들이 죽었던 새남터, 절두산, 서소문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어서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용서와 평화가 있는 곳이라면 곧 돌에 맞아 죽어야 할 곳일지라도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용서를 받았던 그 여인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 드렸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길에 끝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났습니다.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용서와 평화가 있다면 지금 이곳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나는 죽음을 겪으신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나,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내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내 달리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은 온전한 신앙고백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를 초대하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도 바오로 사도와 같은 열정으로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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