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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5주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03 조회수1,093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순 제5주일 제1독서(이사43,16-21)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18-19)

 

18-21절까지는 하느님께서 선택된 백성을 위해 베푸실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예고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느님께로부터 새로운 은혜를 받을 것을 기대하며, 과거의 기억을 버리라는 명령이다.


'예전의 일들' 해당하는 '리쇼노트'(rishonoth; the former things)는 복수형 명사로서 과거에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Forget the former things, do not dwell on the past.

 

 

그렇다면 '예전의 일들'이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탈출>이란 주제로 시작되는 앞의 16-17절의 출애굽 당시의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 길을 내신 분,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꺼져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16-17)


즉 이스라엘의 맏아들을 구원하시고 이집트의 장자를 죽이신 사건을 비롯해 홍해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고, 이집트 군대를 수장시켜 버린 사건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사실 대대로 기억해야 할 일이다(탈출 12,42; 13,10).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 기념비적인 일들을 기억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우리는 이것은 세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번째는 하느님께서 과거의 출애굽 당시에 행하셨던 구원의 역사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구원하여 주실 것임을 나타낸다.

두번째는 과거의 그 일보다 더 위대한 일, 즉 그 기적을 능가하는 기적 일으킬 것임을 나타낸다.

세번째는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기에  더 이상 과거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즉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는 문장은 반어적 수사 의문문이다.  여기에서 '그것'은 앞의 '새 일' 지칭한다. 따라서 이는 새 일 반드시 일어날 것이며,하느님의 백성들이 그것을 친히 두 눈으로 목격하고, 모두가 그 새 일을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 지니고 있다.

 

또한 여기서 사용된 동사는 미완료 형태의 동사로서,  장래에 알게 될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 의심하고 믿지 않는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질타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본다.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19)

이것은 출애굽 사건과 다른 방식으로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구원하실 것을 보여준다. '광야에 길을'이란 표현은 16절의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 길을 내신' 이라는 표현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이끄시기 위해 홍해를 가르고 길을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바빌론에서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시기 위해 그 가운데에 있는 광야에 길을 내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바빌론에서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구원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사막에 강을'이란 표현은 바빌론에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빚어 만든 백성,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21)

하느님께서 왜 그의 백성을 이방 압제자들의 손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그들을 해방하여 고국으로 귀환하게 하시는지, 그 근본 이유를 말해준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본래 하느님만을 위한 존재이며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은'에 해당하는 '암 주'(am zu)는 ' 이 백성은'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문장 성분상 목적어임에도 불구하고 문두에 위치하여 특별히 강조되어 있는데, 많은 백성과 민족 중에서 바로 이 백성만큼은 특별히 하느님 당신을 위해서 만드셨다는 뉘앙스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21)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에 대해 기대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찬양을 이방 모든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만방에 선포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궁극적 목적 바로 이것이다.

 

 

 

2019.04.07. 사순 제5주일 - 서광희 신부

 

2022년 04월 03일 일요일

 

[사순 제5주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구약의 율법에는 이웃의 남편 또는 아내와 간음한 자는 죽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레위 20,10; 신명 22,22-24 참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왜 이 규정을 주셨을까요?

그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거룩함 속에 머무르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레위 11,45; 20,26 참조).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율법 규정을 근거로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려 합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고 받아치십니다.

그러자 단죄하던 자들은 하나둘 떠나갑니다.

타인에게 적용하는 단죄의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할 때,

아무도 하느님과 이웃 앞에 죄인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이웃을 평가하려는 잣대를 날카롭게 연마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냅니까?

그렇게 마련한 잣대를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하며 내면화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본정신인 거룩함은 어쩌면 이웃을 향한 잣대에 집중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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