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07 조회수2,882 추천수9 반대(0)

인문학으로 성경 읽기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도미니코 페티의 걸작과 습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도미니코 페티는 요한복음 19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라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하나는 거의 습작의 수준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성을 기울인 걸작이었습니다. 걸작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미술관에 전시되었습니다. 하지만 피렌체에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습니다. 도미니코 페티의 걸작은 그곳에서는 그리 높게 평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다른 걸작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습작으로 그렸던 작품은 독일의 뒤셀도르프 미술관에 전시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걸작에 있지 않았습니다. 습작처럼 그렸던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을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그림에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이것을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왔느냐?(Ego pro te haec passus sum. Tu vero quid fecisti pro me.)” 독일의 진젠도르프 백작은 이 그림 앞에서 깊이 묵상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영국의 해버걸이라는 여성은 이 그림 앞에서 깊이 묵상하였고 영혼을 울리는 성가를 작사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똑똑하고 잘났던 바리사이의 기도보다는 겸손했던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넉넉한 가운데서 헌금했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의 헌금보다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하느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 이방인이었던 시렙다 과부의 집에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했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도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방인이었던 나아만을 치유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굳이 방문하지 않고 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고 했던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학력, 능력, 업적, 재물, 명예, 권력, 신분과 같은 것들에는 큰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습작이라고 생각하는 겸손, 희생, 나눔, 인내, 기도, 봉사, 절제와 같은 것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셨던 유다는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 넘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반석이라고 하셨던 그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던 베드로는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갔던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키레네 사람 시몬이었습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린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베로니카였습니다.

 

저는 교구청에서 5년 동안 성소국장으로 지냈습니다. 교구장이신 추기경님, 주교님들, 국장신부님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교황님의 한국방문을 준비하는 모임에도 함께 했습니다. 어찌 보면 제 사제생활의 걸작과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5년도 감사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주교님, 다른 국장신부님들이 많아서 저는 그리 드러날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경기도의 작은 성당에서 3년 동안 지낸 적이 있습니다. 신자수도 적고, 헌금도 적고, 할 일이 그리 많지도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제 사제생활의 습작과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습작과 같았던 그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사제생활 중에 다시 돌아가고픈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 감사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빌라도가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을 보라.’ 예수님의 모습에서 결코 걸작의 품위를 찾기 어렵습니다. 가시관을 쓰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 습작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구원은 걸작과 같은 빌라도의 권위에 있지 않았습니다. 걸작과 같은 헤로데의 신분에 있지 않았습니다. 걸작과 같은 대사제 가야파와 안나스의 율법에 있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한 없이 초라해 보이는 이 사람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었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려고 하는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는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요?

 

사순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편견과 오만 그리고 교만과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참된 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나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욕망, 이기심, 자존심, 명예 그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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