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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 위에서 그리고 십자가 밑에서 (요한 19장 17-30절)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10 조회수2,062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가 위에서 그리고 십자가 밑에서

 

(요한 19장 17-30절)

17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18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을 가운데로 하여 이쪽 저쪽에 하나씩 못박았다. 19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그것은 히브리 말라틴 말그리스 말로 쓰여 있었다. 21 그래서 유다인들의 수석 사제들이 빌라도에게 말하였다.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나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하고 저자가 말하였다고 쓰시오.” 22 그러나 빌라도는 내가 한번 썼으면 그만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23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그분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속옷도 가져갔는데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 24 그래서 그들은 서로,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 차지가 될지 제비를 뽑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그래서 군사들이 그렇게 하였다.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아멘>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십자가 위에서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일들이 일어납니다십자가 위에는 예수님과 강도들과의 사이에서 발생되는 일이 있고요~. 십자가 밑에는 십자가를 둘러싼 마리아들과 그 마리아들왜 거기에 마리아만 그렇게 수두룩하게 모여 있는지그리고 그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는 군병들그리고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넘겨받는 요한이 있습니다. 그 십자가 위와 십자가 밑의 사건들이 어떠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십자가 위에서의 일을 복음 안에서 한번 조명을 해 보도록 하죠예수님의 십자가 옆엔 강도 둘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어요그런데 마르코복음의 내용을 보면요그 둘이 다 예수님을 욕했다 라고 나옵니다.

<마르15:32> 32 우리가 보고 믿게이스라엘의 임금 메시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던 자들이 일제히 이제 이스라엘의 왕인 메시아가 저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할 거야.라고 그렇게 조롱을 했어요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그의 능력을 보여주면 자신들도 예수를 믿어 주겠다란 비아냥이죠예수님 옆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있던 두 강도도 똑같은 욕을 했다는 거예요예수님 곁의 두 강도는 모든 인류를 상징하는 모형입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강도로 태어나요그래서 예수님이 강도의 우두머리 자리 가운데에서 십자가를 지시는 거예요가운데에서거기가 바라빠 자리였잖아요?

 

<이사 53:12>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범죄자가 되셔서 죽기로 이미 결정이 되어 있으셨던 거예요근데 보다시피 그렇게 죽어야 할 강도들 중에서 예수님이 그 강도들을 대신하여 강도가 되어 죽으신 거예요그래서 바라빠의 자리 그 양쪽 사람들의 괴수였단 말이에요바라빠가고 자리에 매달려 죽으신 거란 말이죠그런데 그 강도들 중에 어떤 무리를 자기 기도 안으로 끌어당기신다 란 뜻이에요그러니까 이런 말이에요모든 인간은 범죄자강도로 태어나는데 그러한 강도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져요한쪽은 끝까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다른 이들의 것을 강탈하는그게 모-든 인간들죄인들의 속성 아닙니까나라는 우상을 위해 나 이외의 존재는 모두 경쟁자요 적으로 간주하는게 강도 아닙니까바로 그 강도예요마귀의 속성이에요그것이....그 강도의 모습으로 멸망의 불못으로 떨어지게 될 자들이고 다른 한 쪽은 여전히 강도는 강돈데 구원받은 면목없는 강도들인 거예요왜 면목없다고 이야기를 하냐면 죽는 날까지 강도처럼 살다가 가요성도라는 인간들도 다! (아닌 것처럼 있지만.) 그걸 성도라고 그래요구원받은 면목없는 강도. .

 

<루가 23:39-43>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한 쪽 강도는 "니가 그리스도 아니냐그렇다면 너와 나를 구원해 봐라"라고 예수님을 욕하고조롱해요그러니까 그건 십자가 아래에서,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우리로 너를 믿게 해 봐~ '라고 조롱했던 그 유대인들과 정확하게 같은 모습이에요그 모습의그 중심에는 전부 인간이 놓여있어요그리고 인간 세상의 현실을 이 세상의 현실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인본주의와 현세 구복적 현실 지상주의가 거기에 깔려있는 거예요이 세상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곳이고 자기 자신들은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대단한 존재라는 거예요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나를 도우라는 거예요우리를 도와라이 세상에서 나를 도우라는 거예요한 편 강도와 십자가 밑에 있던 그 인간들이 동일하게 요구한 게 바로 그겁니다.

근데 분명 조금 전까지 다른 편 강도와 합세해서 능력을 발휘하여 너도 구원하고 우리도 구원해 보라고 예수님을 조롱하던 다른 편 강도가 갑자기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해요자신은 죄인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도 당연하다는 거예요자기 친구한테 그렇게 얘기해 주잖아요"우리는 당연히 죽어야 돼여기서그러나 저분은 여기서 죽을 이유가 전혀 없는 분이야라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아요.

그리고는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요예수님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여러분그게 바로 성도의 마지막 지점이어야 돼요마지막 목표지점다른 거 없어요. "나는 죄인이 분명해요." "하느님저는 하느님의 은혜가 없으면 큰일나는 존재니까 당신의 나라 임하실 때에 나를 좀 기억해 주세요."라는 그런 처절한 외침그게 성도의 마지막 목표지점입니다성화의 절정이라고 하는 거예요그걸요성화를 여러분이 자꾸 내가 무슨 굉장히 훌륭하고 착한 사람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거라고 자꾸 생각하시면 안 돼요聖化라는 건 내가 하느님이 없이 예수님의 은혜 없이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자구나,라는 것을 깊이깊이 깨달아 가는바로 그 과정을 성화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뒤집어서 바껴지는 게 아니라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요그거는요.

 

여러분생각해 보세요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세상에게 당하여 죽음을 향해 가고 계세요거기서 그분이 내려갈 수 있다라는 그러한 요만큼의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세상적 관점에서 볼 때 그분에게서는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어요십자가에 뻘거 벗겨져서 매달려 있어요그리고 곧 죽을 거예요그런데 그분이 뭘 도와줄 수 있어요그런데 그러한 분에게 자신의 내세를 부탁하고 있단 말입니다한 강도가그게 바로 성도인 거예요.

백마를 타고 철장을 든 강력한 왕의 모습으로 오신민속 메시아 사상 속에서의 그런 메시아가 아니라초라하게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무력한 예수를 경험하면서도 그분에게만 진정한 승리가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게 바로 성도예요그래서 때로 성도의 삶 속에서 예수님이 전혀 무력한 존재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존재로 경험이 되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그냥 무력하게 죽어가는 그 예수에게 "당신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좀 기억해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했던 그 강도처럼 너희들도 그런 무력한 예수를 경험하면서 그 예수가 주는 진짜 승리가 뭔지 진짜 복이 뭔지를 깨달아믿음으로 깨달아 그분을 붙들 수 있는 자가 되라는 거예요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거예요그래서 때로는 여러분이 예수님이 전혀 안 도와주는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 완전히 침묵하는 것'처럼나타나는 것입니다그러나 어때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이 자리에 앉아 계시잖아요그게 하느님이 여러분을 붙들고 있는 거예요그렇게 구원은 전적인 하느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 극명한 대조를 보세요한 쪽은 이 세상의 힘을 발휘해서 자신의 세상적 구원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에세상적 구원이라는 것은 세상에서의 만족세상에서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거예요그걸 요구하고 있는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에 의해서 편애에 의해서 그분의 기도 속으로 끌어 당겨진 자는들어가게 된 자는 세상적 힘을 완전히 상실하신 무력한 예수께 다 가"세상을 부탁하는 거예요이 세상이 아니라다가"세상을 부탁하는 거예요의뢰하는 거예요이게 성도와 세상과의 다른 점인 거예요,

▶ 세상의 모든 종교는 세상의 힘을 소유한강력한 신에게 이 세상 부귀영화와 자신의 안위를 구하는 것인 반면에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세상 현실을 전혀 도울 수 없는 상태의 그 십자가 지신 예수께 정말 소중한다가올 세상을 의탁하는 거예요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성도는 십자가 지신 무력한 예수가 불현듯 찾아오셔서 강력한 힘을 소유한 예수가 아닌십자가 지신 무력한 예수가 어느 날 찾아오셔서 내가 보기엔 전혀 나를 뭘 도와줄 것 같지 않은 그분이 찾아오셔서 '너 내가 진짜 복을 줄 건데 이런 내가 너에게 그 복을 약속하고 있는데 그거 진짜 받을래?' 물어보실 때에 '그럼요!'라고 그걸 붙들 수 있는 자로 만들어 가신다,라는 거예요우리를그래서 은혜를 붙들고 다가올 하느님 나라를 기대하는 그리스도교는 인기가 없는 거예요왜냐면 다가올 하느님 나라는 지금 당장의 현실 문제 해결과 아무 상관없이 주어지는 영적 축복이거든요그래서 인기가 없어요. 예수님은 여전히 십자가에 달려서 내 세상적 문제 해결이라든지 소원 성취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분'처럼다가오시거든요그러니까 인기가 없어요.

예수님께 예수님의 나라에 자신도 좀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 그 강도의 현실을 보세요뭐가 변했습니까그 강도의 현실은 여전히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거예요그 현실이 변하지 않아요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그 십자가에서 안 풀어 줍니다아니구원을 얻을 자는 반드시 그 십자가에 달리게 되어 있어요그건 공식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으니그러잖아요그러니까 공식이에요그거는요구원받는 자의 필연적 통과 과정이에요십자가는.

 

그렇게 하느님 아들의 나라를 약속받은 그의 세상 현실은 조금도 바뀐 게 없어요그러나 그의 영적 현실은 지옥에서 천국으로의 대변혁이 일어난 거예요성도는 바로 그걸 추구하는 거예요보이지 않는 그것세상의 현실은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를 지고 죽어가는 현실이에요그런데 예수님이 전혀 도와주지 않아요세상 현실은 전혀 도와주지 않아요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주신 믿음에 의해서 예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현실이 아닌영적 현실에 집중하게 되는 게 성도의 올바른 신앙의 자세인 거예요.

왜냐면 이 세상은 들풀의 꽃처럼 곧 소멸될 한시적인 땅인 반면에 하느님의 나라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의 현실에서는 죽임을 당하는 모습으로 가시는 거예요그러나 이 세상에서그렇게 세상에게 맞아 죽어 떠난 분이 가신 곳이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예요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그 가장 좋은 곳아버지의 나라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에게 맞아 돌아가신 것은 이 세상의 모든 힘을 현실을 그냥 부정하고 기각하는 거예요이 역사가 묵시에 의해 무시당해 버리는 거예요그 역사는 지금 세상에게 당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묵시는 '아니야걱정하지마하느님의 계획묵시는 반드시 이긴다'를 보여 주는 거예요그래서 역사가 묵시에게 공격을 당하는데 세상에서는 역사가 묵시를 이겨 먹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그게 복음의 역설입니다"내 백성들아 진짜 중요한 건 이 세상의 현실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라는 현실이란다~.그 교훈을 몸소 가르쳐 주고 가신 거예요그러니까 이 세상 현실에서는 맞아 죽어버리는 것입니다소중한 게 아니니까.. 요건 그림자거든요근데 이 그림자에 전부 목숨을 걸어요라면 열심히 맛있게 끓여서 여러분 그림자에게 멕여 본 적 있어요이건 그림자라니깐요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옳게 인식하고 배우기 위한 모형들이에요그림자예요그 그림자들한테 라면 끓여 먹이고 만두 삶아 멕이고. (왜 이렇게 오늘은 분식 쪽으로~.)

그래서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 또한그 예수님의 삶을 쫓아서 이 세상의 부질없음과 하느님 나라의 소중함을 몸으로 증거하며 살게 되는 거예요.

 

<시편 22:7-9> 7 그러나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백성의 조롱거리. 8 저를 보는 자마다 저를 비웃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들어 댑니다. 9 “주님께 맡겼으니 그분께서 그자를 구하시겠지그분 마음에 드니 그분께서 구해 내시겠지.”

다윗은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이런 영적인 고난의 현실을 죽는 날까지 겪다가 갔어요근데 하느님이 안 건져 주셨어요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받으신 조롱을 그대로 받았단 말입니다뭐가 틀려요단어까지 똑같잖아요왜요하느님은 이 세상살이를 도우시는 분이 아니라 죄를 해결해 주시러 오신 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에요진짜 중요한 문제는 죄의 해결이란 말이에요죄의 문제의 해결~. 죄 사함(용서)이란 말입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이 기뻐하는어떤 훌륭한 업그레이드된 존재가 되어서 가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너희들을 구원하신다,라는 그 구원의은혜의 현실을 증거하다 가는 거예요그러니까 마지막에 가서는 전부 연약그들의 연약함을 그대로 폭로 당해 버리는 것입니다그래도 하느님은 그들을 안 놓으시더라이걸 독자들아 배워라,라는 거예요성경의 독자인 교회들아 배워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하느님 나라의 관점으로 볼 때세상살이라는 자체가 죄예요이 세상살이는 아담의 후손들이 그 아담 안에 들어있던 죄인들이 쏟아놓은 똥덩어리같은 역사예요이 세상살이라는 거 자체가그럼 하느님은 성도를 거기서 빼내야 돼요그래서 COME OUT MY PEOPLE , 거기서 나와라.라고 이야기 한 거예요내가 거기서 너희들의 세상살이를 도와줄게가 아니라 내 백성아거기서 나와라요한묵시록바벨론에서 나와라~.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라~. 애굽에서 나와라~!

근데 인간들은 갈대아에서 바벨론에서 끄집어내면 다시 바벨론으로 돌아가고 애굽에서 끌어내면 야채와 마늘 그리워하며 다시 글루 돌아가려고 하고그러니까 하느님이 鐵杖을 들고 백마를 타고 그들의 삶 속에 공격해 들어오시는 거예요개입하시는 거예요길을 막으려고요가시로 담으로 그들의 마귀적 속성그 이 세상으로의 귀소본능을 하느님이 막아 버리는 거예요그러니까 예수의 전쟁은 나와의 전쟁입니다내 안에 들어있는 마귀적 속성과의 전쟁.

성도는 죄사함(용서)을 받은 자예요죄에서 떨어진 자예요지금은 물론 죄와 너무 친하게 살고 있지만 거기에서 인제 완전히 차단이 될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성도는 이 세상살이에서 마음을 떼는 자로 살게 되는 거예요점점 그러니까 성도는 그 세상살이라는 거 자체를 자기가치 챙기기나 자기 영광 챙기기에 방편으로 살게 되지 않아요오히려 세상살이에서 자꾸 정을 떼는 자리로 몰려야 되는 거예요그래야 하느님 나라를 소망하고 하느님을 붙들게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 백성들의 삶에 직접 개입을 하셔서 그 세상나라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끌어내는 거예요거기에서 대장 만들어 주는 게 그리스도교 아니란 말입니다하느님은 조롱과 억지와 실패와 실수모함과 배신질투와 다툼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당신 백성들을 세상과 격리시켜요세상에서 정을 떼게 만들어 버려요-속해서그리고는 그들을 아들의 나라로 옮기시는 거예요.

 

여러분하느님은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거기서 나와라그건 진짜 복 아니야거기에는 행복도 없고 만족도 없어나에게 와야 돼내가 주는 복을 받아야 돼." 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어요근데 우리는 지금도 그 말을 안 듣고 있잖아요지금도 안 듣고 있잖아요아니나오려고 요만큼 애도 안 써요우리는요그럴 때 하느님이 그렇게 "나와라나와라할 때 안 나오면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거기서 몰아내실까요그가 사는 집에 불을 질러 버리시는 것입니다그러면, "거기서 나와~." 라고 이야기 안 해도 그냥 튀어나오게 돼 있어요자기가그게 여러분의 인생입니다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에 그렇게 하느님이 불을 지르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는 거예요그게 불로 만드는 鍛鍊인 거예요여러분.. 지금 뜨거워 죽겠죠... 하느님이 계속 불을 질러갖구.. 정 떼라는 거예요여러분이 힘으로 소유하고 있는 관계들.. 여러분이 내 것으로 지금 요렇게 보듬어 안고 있는 세상의 힘들.. 명예.. 인기.. 이런 것들에서 정 떼라고 계속 불질러 버리시는 거예요그러나 그게 잘 가는 것입니다여러분그게 아들의 나라로의 이동을 주도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은혜인 거예요.

 

<골로 1:13-14>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보세요죄사함(용서)과 아들의 나라로 옮겨가는 그것이 같은 이야기로 이렇게 설명이 돼 있잖아요죄의 용서를 받은 여러분들은 반드시 아들의 나라로 옮겨져야 돼요이 나라에서 뿌리박고 살려고 하시면 안 돼요주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서 우리에게 오시는 거예요.

그런데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아들의 나라에는 관심도 없고 이 세상의 현실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서 세상 문제를 해결해 주고 세상의 일을 도와 달라고만 하면 하느님이 정말 그 일을 도와주시겠습니까? 왜 여러분의 기도의 응답이 그렇게 잘 안되는지 아시겠어요전부 그 기도의 내용은 이 세상에서 폼나게 한번 살게 해달라는 거 아닙니까그래서 하느님이 안 들어주는 거예요그러나 그게 잘 가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목적이 다를 때 하느님이 우리의 목적을 쫓으시겠어요당신의 목적을 성취해 가시겠어요하느님의 목적을 이루세요어디서우리의 삶에서하느님의 뜻을 우리의 기도로 뒤집어엎을 수 없다니깐요 그러면 그게 무슨 하느님입니까그래서 성도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니 하느님은 능력의 하느님인데 왜 너를 그 지경에서 구원해 주지 않니?"라는 그런 조롱을 듣게 만들어 버리시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기들의 선악구조와 자기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볼 때 그건 망하는 길이에요연약해지는 길이거든요근데 하느님이 안 도와주잖아요아니하느님은 지금 그 당신의 백성을 돕고 있는 거예요어떻게이 세상에서 빠져나오라고그런데 세상은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하느님이안도와 준다고 생각해요. "그런 하느님 뭐 하러 믿어?" 뿐만 아니에요성도는 이 세상에서 훌륭한 위인으로 변해서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자리로도 못 가요그건 곧자기의 자랑이 됩니다아닌 것 같으시죠모든 인간이 그래요처음에는 "하느님의 은혜로 이만큼 됐습니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게 진짜 자기에게 "진짜 나는 이렇게 변했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했더니 실지로 내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는구나"라는 게 자각이 되잖아요그게 자기에게 점수로 쌓여요자기 의의 마일리지로 쌓이게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때때로 여러분의 삶 속에 개입하셔서 와르르 무너뜨리고 그러는 거예요.^^ 십 년 공든 탑 쌓아놨더니 한 방에 무너지고 그런 거 여러번 경험하시잖아요아닌 것처럼 다 연극해서 그렇지남들에게 들키면 신앙 없는 사람으로 찍힐까 봐 다들 쇼하고 사는 거예요그러나 본인은 알아요계속해서 자기가 끊임없이 무너지고 있다라는 걸그런데 변해요어떻게 변해요?

내가 그렇게 무너진다 라는 걸 나는 하느님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없다라는 것을 내가 실제 진짜 말씀 안에서 깨닫게 되면 내가 부인이 되고 내 안에 들어있는 예수의 삶이 드러나는 거거든요. 그니까 그건 내 꺼 아니에요예수의 삶이에요그래서 그 예수의 삶을 3자가 보고 "저 사람 변했네성숙되어졌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그러나 그건 자기에게 의로 안 쌓여요내 꺼 아니거든요나는 계속 실패만 했거든요성도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로 사는 게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살게 되기 때문이에요내 영광을 위해 내가 창조한 내 백성을 오게 하라그러잖아요내 영광을 위해하느님의 영광을 위해근데 우리는 내 영광을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는 자로 살고 있잖아요그게 언어도단이죠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죽은 흙의 삶이고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없음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감수하는 것그때 뭐가 나와요순종이 나오죠나는 할 수 없으니까고걸 영생이라 그래요내가 비워지고 하느님을 나에게 채워주세요나는 안되네요." 그때 하느님의 생명력이 채워져야 그걸 하느님의 생명영생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완전한 자기비움자기부인그것이 영생으로 가는 길이에요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길을 가면 되는 거예요,

그런게 영생이라면 이 세상 속에서 영생을 사는 이들의 모습이 어떻게 드러나겠냐고요육이 죽어가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니깐요그래야 하느님이 계속 채워질 거 아닙니까내가 죽어가야..그래서 성도인 한편 강도가 십자가에서 그대로 죽는 거예요육이 죽는 거예요근데 그가 죽으니까 그의 삶에 영생이 채워지는 거예요낙원으로 가더라는 것입니다그래서 애굽에서 나온 60만 명이 광야에서 다 죽고 새사람 60만 명이 되어 은혜로여호수아예수를 앞세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거예요그러니까 우리의 광야 인생은 계속 죽는 거예요성도는 그렇게 그의 인생 속에서 죽은 자로 죄인으로 폭로가 되고 그 속에서 예수가 사시게 되는 거예요그게 UNION CHRIST예요그리스도와의 연합내가 비워져야 예수가 나와 연합될 수 있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완전히 비우시고 하느님의 뜻으로 채웠더니 그가 하느님과 하나로서 일을 하실 수가 있었잖아요그게 삼위일체거든요우리가 그리로 부르심을 받는 거예요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내가 비워져야 돼요하느님이 비워질 순 없어요~. 그래서 성도의 삶은 비워짐의 연속이어야 되는 거예요,

 

<갈라 2:15-21> 15 우리는 본디 유다인으로죄인들인 이민족이 아닙니다. 16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7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고 애쓰는 우리 자신도 죄인으로 드러난다면결국 그리스도께서 죄의 종이시라는 말입니까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8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운다면 나 자신이 범법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도 고렇게 욕심 많고 악하게 사는 모습을 여러분 자신과 이웃들에게 들키는 거예요. "내가 너희들의 그 행위로 너희들의 됨됨이로 너희를 구원했는 줄 알아아닌 거야.." 근데 우리가 계속해서 그렇게 업그레이드되는 삶을 그냥 간디처럼 슈바이처처럼 페스탈로찌처럼 허벅지를 찔러가며 열심히 착하게 살다 보면요자꾸 그게 내가 한 것이 되어 버려요그때에는 그게 죄로 쌓이게 된다 말입니다그때 하느님이 콱한 번씩 무너뜨려 주는 거예요. "네가 어떤 자리에서 구원받았는지 잊지 말어~~" 이렇게... 잊지 말라고.... 그런데 우린 너무 쉽게 잊어버리잖아요그래서 하느님이 그렇게 우리의 처음자리.. 우리의 본전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우린 이렇게 우리의 행위와 관계없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의롭게 되어버렸어요. 하느님은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예수의 삶을 보고 우리를 평가해 주시기로 작정하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의 모습을 수시로 폭로당하는 거예요.

 

성도의 구원은 성도의 됨됨이나 자격이나 실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비추어진', 비추어진 은혜의 빛하느님의 열심과 능력에 의한 것임이 그 속에서 드러나는 거예요그래서 "약할 때 강함 되신다"라는 말이 바오로서신에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예요우리는 연약한 자로 폭로가 되고 그 안에서 그 연약함을 은혜로 덮으시는 하느님의 능력하느님의 강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수시로 여러분이 추락해야 되는 거예요그럴 수밖에 없어요부활의 몸을 입을 때까지는 여러분은 수시로 추락할 수밖에 없어요여러분의 연약함 속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되는 거예요내가 뭘 잘해서 내가 다른 이들에게 자랑이 되는 삶이 아니라니깐요우리는요?

▶ 우리의 삶의 주도권은 이제 우리에게서 하느님에게로 목자에게로 압류가 되어버렸어요그래서 목자가 이제 툭툭 치는 대로 가야 돼요양이 목자를 끌고 갈 수 없다니깐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야 돼요푸른 草場으로 몰면 그리로 가야 돼요근데 푸른 초장으로 갔는데도 만족스럽지가 않아이 땅을 사는이 세상을 포기하지 못한모든 인간은 이 세상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처럼살 수밖에 없어요하느님이 분명 푸른 초장으로 몰고 가시는데 이 양새끼들이 전부 이리가 되어서 그 푸른 초장에 만족을 못해요이리는 풀풀에 만족 못 합니다그러니까하느님은 분명 양으로 우릴 불렀는데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서 너무집착이 많아요욕심이 많아요그게 이리 새끼들이거든요그들은 고기를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느님이 푸른 초장으로 끌고 가도 그 존재들에게는 거기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 목자가 툭툭 지팡이로 치는 곳으로 가는데 가는 족족 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되는 거예요때로는 일이 잘 풀리고 소유가 늘어날 수도 있는데 그게 내 마음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그런 걸 경험하면서 그 속에서 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경험해요모든 인간은요성도는그래서 성도의 모든 삶은 '십자가'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여러분. '십자가

 

여러분 곡해하시면 안 돼요제가 일부러 죄를 지으라거나 일부러 연약함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라고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에요우리의 연약함이 폭로됐을 때 죄인들처럼 그걸 자기의 또 다른 선한 삶이나 종교행위로 감추려고 하지 말자,라는 거예요. 그래놓고 나의 자존심과 나의 가치를나의 인기를나의 평판을 챙기려고 하지 말자,라는 거예요그게 모든 죄인들이 속성으로 갖고 있는 거거든요바로 그러한 속성에서 나온 똥 덩어리 같은 역사가 이 인류의 역사인 거예요이게 다-. 그래서 전쟁과 다툼과 시기와 질투가 끊이지 않는 거예요여기에서.

그렇게 인간이 자기 안에 있는 더러움과 연약함을 폭로 당했을 때요그걸 감추기 위해 하는 게 뭐라 그랬어요프로젝션 projection , 투사 [投射]라는 거잖아요그걸 남들에게서 남들의 삶 속에서 자기 안에서 발각이 된 더러움과 연약함을 찾아내요인간들은혈안이 되어 있어요그걸 찾아내면 그걸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고 자기의 깨끗함을 챙겨요비교 상대적인 깨끗함그러면서 자신을 위장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다툼과 분열이 있게 되는 거예요저놈을 악하게 만들어야 내가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 역사가 이렇게 더러운 거예요성도는 적어도 그리로 가지는 말자는 것입니다예수님 옆에 달린 강도처럼 "맞아요저는 죄인입니다여기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 마땅해요하느님지금 차라리 저를 지옥 보내셔도 저는 아무 할 말 없는 존재예요." 이리로 내려가야 돼요그러기 위해선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 여러분이 확실히 깨달야야 돼요경험해야 돼요.

그러나그 자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은혜가 이 죄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감히 하느님께 부탁드립니다당신의 나라 임하실 때제발.. 저는 아무 공로 없지만 저 좀 기억해 주세요." 이 자리가 피조물의 자리인 거예요이 자리가~.그러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 동안에 그 자리로 계속 밟혀 내려가는 거예요그거 이외에 다른 거 할 거는 하나도 없어요그렇게 우리의 연약함과 더러움이 폭로됐을 때 그걸 인정하고 하느님의 은혜의 필연성을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게 성도의 삶인 거예요그래서 성도는 '나는 벌레요사람이 아니라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라는 탄식을 수시로 하게 되는 거예요뭐 대단한대단하게 자랑할 만한 존재로 변하지도 못하고 만족할 만큼 대단한 성공도 하지 못해요그때에 세상은 또 '저가 야훼하느님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하며 또 조롱을 받게 되는 거예요.

 

<예레 20:14,17-18> 14 저주를 받아라내가 태어난 날복을 받지 마라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 17 그가 모태에 든 나를 죽여 어머니가 내 무덤이 되고 내가 언제까지나 모태에 있지 못하게 한 탓이다. 18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와 고난과 슬픔을 겪으며 내 일생을 수치 속에서 마감해야 하는가?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를 받았어야 했는데그때 엄마 뱃속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내 삶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고난과 고통을 통과해야 하는가예레미야 예언자가 이런 말을 했다니깐요하느님의 사람의 인생이 이랬단 말입니다여러분 혹시 이런 탄식 속에 계신 분계십니까? "도대체 내가 왜 태어나서 이런 고난을 겪고 있지?" 잘 가고 계신 거예요예레미야예요여러분이요우리의 연약함과 무력함이 사정없이 폭로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더러움과 어두움을 덮으시는 하느님의 은혜의 빛이 그 속에서 찬란히 빛나게 되는 거예요그러한 탄식의 삶고난의 삶 속에서나는 쇠하고 하느님이 흥하셔야 하는 삶그게 성도의 삶이란 말입니다싫죠보이지도 않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계속 쇠해야 된단 말인가맞아요... 그래서 성도의 삶이 힘들다고 하는 거예요오죽하면 전도서(코헬렛기자는 차라리 자기보다 사산된 아기가 훨씬 복받은 자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전도 6:3> 3 사람이 자식을 백 명이나 낳고 그의 수명이 다하도록 오랜 세월을 산다 하여도 그의 갈망이 행복으로 채워지지 않고 또한 그가 제대로 묻히지 못한다면 내가 말하건대그보다는 유산아가 더 낫다.

애를 백명이나 낳고 모든 소유를 다 갖는다 할지라도 인간은 만족하지 못하잖아요그 불만과 공허가 차라리 낙태된 아이가 더낫다,라고 이야기할 만큼 크다는 거예요그게 모든 인생이 겪는 일입니다적어도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그러한 세상 것들을 많이 가지고서도 '이게 왜 나를 만족스럽게 만들지 못하지?'라고 아파하실 수 있어야 돼요이렇듯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사랑을 온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생일을 사일죽는 날로 깨닫게 되고 오히려 낙태된 자의 평안함을 부러워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거예요. "야 너는 참 편하다그때 이냥 나지도 못하고 죽어서 얼마나 편해나는 나갖구 이게 무슨 고생이냐." 이 고백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구약의 예언자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게 만들었던 그분이 지금 여러분 안에 똑같이 들어와 계세요.

그분이 똑같은 방법으로 여러분을 그 자기부인의 자리로 끌고 가신단 말입니다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분의 고난만을 상고하도록 요구하세요그래서 성도는 예수의 고난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살게 되는 거예요근데 그 복음을 자기 영광 챙기기와 자기 가치 챙기기에 집중하고 있는 세상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그래서 성도는 늘 조롱당하게 되어있어요.

 

우리의 죄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그걸 덮는 하느님의 은혜의 영광이 더 크게 드러난다,라는 이 역설을 이해 못해요더 많이 착해져야 되고 더 많이 선한 일을 해야 되고 그렇게 해야 세상은 우리에게 영향을 받는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죠그러면 세상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라는 건 세상이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일에 박수를 쳐준다는 얘긴데 그러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미움을 당하고 환난을 당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은 다 찢어버려야죠성도의 삶은 그게 아니라니깐요예수의 영광만 드러내야 돼요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욕하고 미워하게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무력함을무력함이 폭로되는 것으로도 괴로움을 당하고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당하면서 또 괴로움을 당하고완전히 양수겹장 이에요진퇴양난그래서 예레미야가 이런 노랠 불렀어요.

 

<예레 20장 7-9>. 7 주님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8 말할 때마다 저는 소리를 지르며 폭력과 억압뿐이다!” 하고 외칩니다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 9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근데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예레미야는 이렇게 조롱과 비웃음의 삶을 살다 갔어요근데 하느님이 안 말려줬어요심지어 무슨 변태처럼 예언자에게 와서 "너 3년 동안 발가벗고 다녀.","아니그게 무슨 말씀이세요하느님~?" ㅎㅎ 근데 하느님이 이기시죠어떻게요? '부끄러운 자가 되어사는 거예요. '벌거벗은 부끄러운 자.' 아담의 모습으로 "세상아 너희들이 지금 멋진화려한 세상의 힘으로 옷을 입고 살지만 이게 너의 모습이다"를 예언자가 그의 삶으로 보여주는 거예요예수처럼하느님이 이겨먹는 삶은 그렇게 나타나요아이.. 그들은 하느님에게 택함 받은 몇 사람몇 사람이죠특별한 사람이죠아니오하느님의 백성은 다 특별해요그들은 모두 선택된 자예요그들은 모두 이 땅에서 작은 예수의 삶을 살아야 돼요벗어그럼 벗어야 돼요낱낱이 폭로돼야 돼요나 자신을... 그게 굉장히 힘듭니다성도는 그렇게 자기의 영광과 자랑과 유익을 위해 예수님의 손과 발을 찌르고 옆구리를 뚫었던 자리에서 자기가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자리로 이동해 가는 거예요내 유익을 위해 예수를 찌르는 자리가 아니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리로 이동해 간단 말입니다그게 성도의 삶이에요그렇게 완전히 못에 박히고 힘을 쭉 빼야 하느님의 힘이 들어오는 거예요.

말씀에 의해서 복음에 의해서 은혜에 의해서 심장이 터지고 손발이 뚫리고 뼈마디가 갈라지는 번제물의 자리로 내려가서 작은 예수의 삶을 살아야 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아담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자들이 바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에요교회는 그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폭로 당하고 직시하게 되면서 하느님의 은혜의 필연성을 배우게 되는 거고 결국에는 하느님의 은혜에 자신의 몸을 던지게 되는 거예요하느님의 은혜 밖에 있는 자들은 계속해서 그렇게 살다가 그냥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지는 거죠... 계속 예수 찔르다가 불못으로 던져지는 거예요그렇게

 

성도는 예수님의 은혜를 입게 되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내세를 부탁한 그 한편 강도처럼 가장 먼저 자신의 죄인됨사망상태에 있는 자신의 본 모습을 자각하게 돼요그게 눈을 뜨는 거예요눈이 밝아졌다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졌다,라는 건 내가 죽은 자임에도 불구하고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처럼신처럼되었다,라고 믿고 그렇게 사는 걸 눈이 멀었다고 하는 거예요그걸 성경은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라고도 이야기하죠어떻게선악을 판단하는 주인이 되었다,라는 거예요주체가 되었다,라는 거예요그게그러나 사실은 그게 눈이 먼 거란 말입니다진짜 눈을 뜬 자들은 "아니네하느님의 생기가 빠져나가면 나는 그냥 네페쉬에 불과한 거구나죽은 흙이구나." 이게 눈을 뜨는 거예요.

 

여러분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 곁에서 십자가에 달렸던 그 강도들은 단순한 파렴치범들이 아니에요십자가 처형은 그렇게 아무나 매달던 게 아닙니다로마의 반역자모반자역모를 꾀하던 자들에게 가끔 던지던 거였어요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바라빠처럼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독립운동을 꾀했던 사람들이었을 거란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우리가 무슨 죄를 졌냐차라리 행동하지 않는 양심너희들이 죄를 진 거지."이런 자부심을 갖고 갈 수도 있단 말이에요그래서 십자가에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가 어떤 자린데 "니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너도 구원하고 우리도 구원해라이런 농을 던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지들한테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죽음의 자리에서그런데 한 사람이 하느님의 은혜가 임하자 "아니구나내가 죄인이구나"를 깨닫게 되는 거예요. "내가 죽은 자구나여기에서 이렇게 죽어도 아무 할 말 없는 그냥 죽은 자구나-." 죽은 흙을 불에다 던진다고 죽은 흙이 "나를이유없이 불에다 던져요?"라고 얘기할 수 없잖아요죽은 흙이니까.

하느님의 생기가 들어가기 전에 모든 존재는 움직인다 할지라도 그냥 죽은 흙이에요티끌먼지로 만들어진 거예요그건 산게 아니란 말입니다그들을 지옥에 던진다고 하느님에게 우리가 "왜 당신은 살아있는 것들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세요?"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거란 말이에요하루속히 인본주의에서 좀 빨리 벗어나세요그게 인본주의예요모든 인간은 다 존귀하고 평등한데 누구는 선택하고 왜 누구는 유기시키는가아니요선택된 자만 살아있는 자예요그들만을 위해 하느님은 역사와 우주를 경륜하세요근데 누가 누구보고 불공평하다는 거예요버릇없이그건 하느님을 모르는 거예요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그렇게 하느님의 은혜가 임하자 나는 죄인이니까 그리고 죽은 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제 아아무런 노력도 열심도 부릴 수 없는 자이니 당신이 나를 도와주는 길 밖에 없다,라는 그러한 자기부인의 고백이 나오는 거예요우리는 그 자리로 몰려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우리의 현실을 한번 돌아보잔 말이에요우리는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이 땅의 현실과 상황과 사건에서 눈을 돌려서 하늘나라에 관심을 둔 구원받은 강도의 모습으로 이 땅을 살고 있습니까아니면 여전히 "당신능력 있다면서그 능력 발휘해서 나 좀 도와줘 봐"라고 주님을 원망하고 있는 다른 편 강도처럼 살고 있습니까모든 인류는 이 두 강도로 나뉘어져요다 강도예요근데 한 강도는 여전히 세상과 자기 자신에 집착하여 "니 능력을 발휘하여 나 좀 도와줘 봐왜 못 도와줘에이고아니구나너 없는 거지원래." 이렇게 가고 있고하나는 여전히 자기의 강도된 모습을 폭로당하면서 "나는 죽어도 아무 할 말 없는 자입니다이 십자가가 내 자리 맞습니다그러나 하느님의 은혜 그거 나에게 조금만 허락하셔서 하느님의 나라로 나를 좀 이끌어 가 주세요."

어떠세요여러분의 문제삶의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그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이 살아있다면 어떻게나를 이렇게 놔둘 수 있냐.라고 원망을 하고 계세요아니면원래 이 자리가 제 자리가 맞습니다그동안 그나마 먹고살게 해 주신 거그거 하느님의 은혜였군요하느님저는 이 자리에서 평생 살라고 해도 아무 할 말 없는 자입니다그러나하느님 나라그것만은 제가 꼭 붙들 수 있게 해 주세요우리가 그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근데 그냥 자기소원 안 들어주면은 그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십자가 옆에서 그분을 욕하고 원망했던 그 사람들처럼 악악거리는 거예요그거 예수님 조롱하는 거예요예수님은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다니깐요영생 주시러 오셨어요근데 왜 자꾸 이 세상의 삶을 현실을 갖고 그 하느님을 괴롭힙니까?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우리 자신과 이 세상에이 세상으로 향해진 우리의 눈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있기에 예수님의 은혜가 왕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그래서 바로 그 십자가 밑에서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갖는 그림이 등장하는 거예요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과 강도들 사이에 천국과 지옥이 갈리는 대화가 오고 가고 있는 가운데 십자가 아래에서는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있어요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발가 벗겨진 상태로 매달려 있습니다아담의 모습이에요근데 십자가 아래에서는 그 발가 벗겨진 예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예수의 옷을 나누는 이들이 탐욕스럽게 제비를 뽑아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벌거벗겨져 있어요그건 아담의 벌거벗겨짐이고 그 아담 속에서 함께 선악과를 따먹었던 우리의 벌거벗음이에요그건 노아의 벌거벗음이고 이 세상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담들의 벌거벗음이에요그 벌거벗음을 예수님이 전가받아 십자가에서 지금 소멸시킬려고 하고 있거든요근데 그 벌거벗은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소유.. 그걸 서로 갖겠다고 제비를 뽑고 있어요.

십자가 십자가~♬ 부르면서 예수님당신 능력 발휘하여 내 소원 좀 들어주세요내 문제 좀 해결해 주세요이게 뭐예요예수님이 가진 옷 서로 갖겠다고 제비뽑는 인간들이랑 뭐가 다릅니까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그 옷 뺏어가지 않았어요. '가져.. 입어..' 여러분그게 복음입니다.

우린 예수를 믿고 계속해서 반복하여 이 십자가 밑의 군병들처럼 살아요그리고 구원받은 강도 말고 구원 못 받은 그 강도처럼 살아요솔직해지자고요그렇게 살아요나와 세상에만 관심 두고 살아요아니정신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느님 나라에만 관심 두고 살아야지! 5분을 못 가또 나와 세상 걱정으로 금방 낙심하고 세상께 쪼금 주어지면 또 기뻐하고그래서 하느님의 은혜가 필요한 거예요.

우리에게 맡겨두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예수님이 (그게 우리의 벌거벗겨진 모습이거든요?) 그 벌거벗겨진 모습십자가 밑에서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옷을 가져가려고 하는그 탐욕스런 그들의 모습이 뻘거벗은 모습이에요그 모습이 되어 예수님이 죽고 예수님의 옷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거예요그 나쁜 놈들에게나에게그게 십자가 은혜입니다.

그걸 알면 알수록 그 예수님의 능력이나 소유를 나의 삶의 방법이나 도구로 끌어다 쓸려고 하는 마음들이 조금씩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그걸 알면 알수록우리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 예수와 예수의 은혜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그래서 우리가 야훼하느님을 알자 힘써 야훼를 알자,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 땅에서 유일하게 해야 할 일복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예수를 알아가는 데에 전념하는 자은혜를 알아가는 거예요여러분이 이 땅에서 도덕적인윤리적인 선한 어떤 일 더하고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일을 못하는 여러분이 폭로 당한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예수의 은혜를 명확히 명료하게 알고 가시면 되는 것입니다원래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뻘거벗고 사는 게 맞아요그 벌거벗음이라는 연약함에 하느님의 능력과 하느님의 의가 옷으로 입혀지는 게 바로 '연합'이라는 거예요보세요~.

 

<창세 2:25> 25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 맞아요,라고 인정해야 거기에 하느님의 옷이 입혀지거든요하느님의 생명력그걸 복이라고 하잖아요. [바라크그게 의의 흰옷이에요그러려면 나는 이렇게 뻘거벗은 존재가 맞아요죽은 흙이 맞아요그래서 하느님이 입혀주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벌거벗고 살 수밖에 없어요그러니까 벌거벗은.. 나는 벌거벗고 사는 게 맞아요,라고 인정한다라는 건 하느님은 분명히 당신의 의의 옷을 입혀주실 거야.. 거예요 라는 확신이 함께 묻어있는 거란 말입니다거기에.

근데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자 하느님과의 관계가 차단이 됐죠근데 벌거벗은 자기의 모습이 자기에게 드러났어요그때 인간은 어떻게어떻게 할까요하느님이 안 가려주시니까 거기에 대한 소망은 끝나버렸어요인제그러니까 세상의 힘과 가치와 명예인기이런 걸로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어야 되는 거예요그게 역사입니다아담의 역사그러나 그건 금방 말라비틀어질 나뭇잎으로 만든 한시적 옷이란 말이에요역사는이 세상의 힘과 가치는그 벌거벗었다,라는 걸 부끄러워하고 이 세상의 것으로 그걸 가리려고 하는 모든 시도가 하느님 '처럼되겠다,라고 하는 인간의 죄란 말이에요바로 그 모습이 되셔서 예수가 죽는 거예요.

여러분천국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그랬죠어린아이들 빨가벗겨 놓으면 부끄러워하던가요좋아서 온 동네방네 그냥 뛰어다니잖아요그 모습인 거예요성도는 하느님 앞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거죽은 흙이라는 거부끄러운 자라는 거 인정하고 하느님의 의의 그 필연성은혜의 필연성을 꼭 붙드는 거예요근데 자기가 벗은 게 부끄러워서 성을 쌓아서 가리고에녹성 아니에요그게.. 카인이 지은 거바벨탑그게 바벨성이라 그랬죠바벨탑 쌓아서 가리고문명문화 만들어서 가리고과학으로 가리고계속 가리는 거예요도덕으로 가리고 윤리로 가리고그러니까 하느님이 필요 없어지는 거예요그러니까 성도는 그걸로는 안 가려진다,라는 걸 반드시 체험하셔야 돼요.

여러분이 착한 일을 많이 하세요그러나 그 착한 일이 얼마나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것인가도 함께 배우세요그래서 우리 홈리스들 빵 나눠주러 갈 거예요얼마나 여러분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없는가를 폭로 당하라고그 찌린내 맡으면서 진짜 내가 이들을 사랑해서 오는 게 아니었구나내 평판내 인기내 자랑 챙기려고 그렇게 착한 일로 나를나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했구나깨닫게 해 드리기 위해 우리도 나갈 거예요.

 

여러분우리는 새 몸을 입기 전에 그렇게 전심에서 우러나나 아닌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열심히 노력하세요노력하셔서 하느님의 은혜가 왜 필요한지를 배우세요내가 노력해서 나를 변화시키겠다가 아니라.. 왜 나에게는 하느님의 은혜가 필요한가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는 거예요훈련하는 거예요근데 그렇게 해서 나는 자꾸 부인당하고 난 계속 실패하는데 그 실패를 열고 예수가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훈련하면 우리가 변하는 것'처럼밖에서는 보이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참 성화의 자리로 우리가 가자는 거예요여러분하느님은 그렇게 이 세상의 힘과 가치와 또이 세상의 여러가지 인기명예이런 것들로 자신들을 가리려고 하는 그러한 인간들의 모든 시도를 '벌거벗음'이라고 이야기를 해요벗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묵시 3:17-18> 17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게 어디에요라오디게아 교회예요여기는 부자 교회였습니다그리고 가장 크게 부흥했던 교회예요그래서 그들이 '우리는 부자다부족한 게 없다가렸다'라고 이야기 한 거예요그런데 하느님은 '넌 벗었다~. 가난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그게 진짜 가난한 거예요그게 내 힘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가난한 거예요하느님이 보시기에그리고 그걸로 나는 가렸어내 치부를 다 가렸어사람들이 다 나를 부러워해 줘사람들이 다 나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줘그게 벌거벗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그러면서 뭐 하라 그래요?) 18 내가 너에게 권한다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이게 뭐예요불질러 버리겠다는 거예요너희들의 삶 속에 내가 고난을 허락하겠다는 것입니다불로 연단한 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그게 진짜 부요라는 것이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흰 옷은 뭐예요예수님의 은혜~. 건강하고 깨끗한 교회 만들어서 많은 사람 오게 해서 부흥하게 만들고또 뭐 착한 일선한 일많이 하고 여러가지 프로그램 막 돌려서 교회 부자 만들고 세상으로부터 좋은 평판 얻는 것그런 거 말고.. 그런 걸로 옷 입을라고 하지 말고오직 예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안됩니다,라는 그 흰옷을 사서 입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은 진짜 인간들은 어쩔 수가 없구나...' 라는 것들이 폭로가 되는 곳이어야지. '우리가 열심히 성경말씀 배우고 열심히 노력했더니 이렇게 지상낙원이 이루어지는구나..' 가 되면 안돼요웬 줄 아세요여기에는 알곡보다 가라지가 훨씬 많거든요근데 거기에 지상낙원이 이루어진다는 게 말이 됩니까말이 안 되잖아요~. 가라지가 훨씬 많은 곳에서.근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깨끗하고 훌륭하고 멋진 교회가 되는 줄 아세요이 죄인들의 속성어떤 방법으로든.. 종교행위든 선한 일이든 무엇으로든 그들의 자존심을 챙길 수 있게만 만들어주면헌금 많이 하세요십일조 꼬박꼬박 하세요그거 다하면 사람들은 굉장히 편안해해요그때에는 예수님 오늘 와도 상관없어은혜고 나발이고내가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그렇게 만들어주면요그 교회가 일치단결하여 굉장히 성령 충만하고 깨끗하고 건강하고 훌륭한 교회됩니다아닐 것 같으세요?

성도라는 사람도 여전히 자기 안에 남아있는 죄성을 부추김을 당하면서 그리로 쫓아가고 요 안에 있는 마귀 새끼들도 그냥 고게 자기 자존심 챙기는 거니까 가는 거예요집 팔아서 헌금하고휴가 내서 직장에서 짤리는 한이 있어도 선교는 가고그러면서 나라는 존재의 평판을 챙기는 것입니다그러면 그 교회가 굉장히 칭찬받고 건강한 교회인 것처럼 보이게 돼요거기에는 하느님의 은혜가 영광이 드러나지 않아요.

 

하느님의 영광은 우리의 불가능함과 무력함과 더러움 속에서 더욱더 밝히 드러나는 거예요그러니까 엉뚱하게 쇼하지 말자는 거예요누가 뭐라고 욕하고 조롱하면 "맞아.. 맞아... 우리는 그런 존재야.. 그래도 잘 봐줬다.." 그리로 가면 돼요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해도 우리의 진짜 모습보다는 잘 평가하는 거예요아니에요맞습니다어떤 나쁜 평가를 한다 하더라도 이 더러운 똥 덩어리 같은 우리이 우리의 실체에 이것보다는 낫게 평가해 주는 거예요그러니까 누가 000 교회 뭐 어쩌고저쩌고 그러면은 "맞아.. 맞아..."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세요논쟁이라는 거설득이라는 거그들에게 절대 먹히지 않습니다,

성도는 무엇이 진짜 부요함인지 무엇이 진짜 부끄러움을 가리는 일인지를 잘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돼요여러분가난한 게 부끄러운 거 아니에요못 배운 게 부끄러운 거 아니에요못생긴 게 벗은 거 아니라니깐요진짜 벌거벗은 거.. 진짜 가난한 거...진짜 부끄러운 건 하느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이 세상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신들의 만족과 행복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세상 것만을 추구하며 사는 자들.. 그들이 진짜 벌거벗어 부끄러운 거예요근데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들의 모습이 나타나는데....바로 그러한 우리의 부끄러움이 되셔서 예수님이 벌거 벗겨져 죽으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로 죄인들의 그 의의 흰옷이 어떻게 입혀지는지를 조명하고 계시는 거예요벌거벗겨진 예수님의 부끄러움을 통해 우리의 부끄러움이 해결되는 그 은혜의 현실을 그림으로 알기 쉽게 보여주는 거죠예수의 옷이 벗겨져서 진짜 벌거벗은 우리에게 입혀지는 거예요주는 거예요그래서 세상의 힘을 상징하고 있는 로마 군병들이 예수의 옷을 가지고 가는 겁니다그게 우리의 모습이잖아요하느님의 선택된 백성들에게 부어지는 하느님의 은혜예요,

 

<고후 8:9>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바로 이 복음의 현실...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그 예수님의 십자가에 무슨 팻말이 붙어있었죠유대인의 왕나자렛 예수유대인은 누구를 상징하는 거예요교회.. 근데 그러한 민속 메시아를 기다렸던 유대인은 가짜 유대인으로 판명됐죠저는 우리 왕이 아니에요카이사르가 우리 왕이에요그랬으니까그건 가짜예요~. 그럼 진짜 유대인들은 누구예요교회예요우리가 진짜 선택받은 영적 이스라엘영적 유대인이에요우리가.

그 유대인의 왕이라는 그 팻말은.. 라틴어.. 그러니까.. 로마 말헬라 말히브리 말로 적혀 있다 그랬어요본문에 보면히브리 말은 종교와 율법도덕윤리를 상징하는 거예요로마는.. 권세권력헬라는지식예수가 바로 그 모든 것의 왕이라는 거예요근데이 가짜 유대인들은 가짜들은 이 세상 죄인들은 그것의 왕인 예수는 모르고 그냥 힘과 지식과 종교와 율법과 도덕이게 힘인 줄 알고 그걸 왕삼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그거 아니다라는 것을 하느님이 보이시는 거예요이가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세 나라 말로 기록된 거예요그게 전 세계온 우주를 상징하는 거예요그 세 나라예수가 왕입니다그걸 인정하는 거예요우리는요보세요~. 우리가 주님주님 하면서 주님이라는 말은 그가 주인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럼나는 머슴이에요. Slave. 죽으면 죽어야 되는 거예요생사여탈을 그분께 압류 당해서 뺏겼어요그분이 주님이니까근데 그분을 주님이라고나의 왕 유대인의 왕 교회의 왕이라고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는데 항상 머슴처럼 부려먹고 있어요내가 왕이에요. 수시로 부르면 와서 병도 고쳐줘야 되고 아무 때나 부르면 와서 내 소원 들어줘야 되고 아무 때나 부르면 와서 내 문제 해결해 줘야 되고.

그분이 목자라니깐요그분이 주인이란 말입니다근데 우리는 십자가를 공부하면서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다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어놓고 그 아래에서 별 해괴망측한 짓을 다하던 그들을 욕하면서 자기가 그 속에 들어있다,라는 것을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와그래서 그냥 한 자라도 들어~. 저는 그게 옳은 건 줄 알았거든요요즘은 그래요그냥 집에서 열심히 놀아라가서 죄짓지 말고언젠가 하느님이 알게 하실 때 네가 이해할 수 있을 거야가서 앉아 있으면 뭐 해요그 은혜를 이해를 못하는데 가서 앉아 있으면 뭐 합니까그래서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내가 믿음을 보겠느냐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이해 못해요은혜의 복음을 세상은 절대 이해 못해요.

 

<이사 61:10 >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옷은 누가 입히는 거예요하느님이 입히시는 거예요거기에 우리가 바느질 한 땀 뜰 수 없어요혼인잔치의 예복은 주인이 이미 만들어서 오는 손님에게 선물로 주는 거예요그걸 입어야 구원받는 것입니다그래서 그거 안 입은 자그거 안 입은 자는 자기 옷 입고 있었다라는 말이잖아요자기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가미된 거그들이 지옥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성도라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기도 하고요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질병에 시달리기도 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하는 거예요그건 진정한 복은 이 세상의 문제 해결이 나 이 세상 속에서의 성공과 번영과 건강이 아니라 은혜로 얻게 되는 하늘의 영생임을 가르치고 교훈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열심에 의해서 주어지는 거예요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입히신다... 보여주는 거라고요하느님이 입히신다...

그 모든 걸 덮으시는 진짜 유대인들의 진짜 왕하늘의 왕예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이 그러한 세상 것들이나 현실에 흔들리지 않고 하늘소망만 바라보면서 그 현실을 밟고 일어서는 것을 하느님께서 세상에게 자랑하고 싶으신 거예요이 세상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내 능력이 내 백성의 삶 속에서 이루어내고 있다라는 걸 세상에게 하느님이 자랑하고 싶으신 거예요따라서 지금 그러한 과정을 겪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 잘 이겨내셔야 돼요아니하느님께서 이겨내게 만드실 거예요그러니까 죽지 말고 살아만 계세요죽어도 못 죽어요... 죽어도 못 죽어.

하느님이 여러분을 완전히 묵사발 내서 옛사람을 죽일 때까지 죽어도 못 죽어요그게 성도예요예수님께서 사십 일 금식하신 후에 여러분 마귀에게 받은 시험이 뭐였죠예수님이 다 거절한 시험. 돌로 빵 만들어라. 세상의 힘우리의 배배를 위한 욕심예수님이 거절했죠그게 우리의 삶이라 그랬습니다성도의 삶이에요우리의 삶 속에서는 이제 그게 거절되는 쪽으로 우리의 삶이 끌려가게 되어있다,란 뜻이에요두 번째가 뭡니까성전에서 뛰어내려서 니 인기 챙기라는 거예요. 니 능력 보이라는 거예요. '천사들이 수종들 거 아냐사람들이 그거 보면 와~~ 진짜 저 사람 능력있는 존재구나그거보고 너 쫓아올 거'라는 거예요고지론 아닙니까거절하셨어요③ '세상 권세에게 절 한 번만 해-. 내가 이 세상 꺼 다 줄께.' 여러분은 세상 힘의 원리에 복종을 못하는 자로 지어져가게 되어 있어요이제복종 안 하면 어떻게 돼요세상 꺼 안 줘요그 자리로 끌려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 세 가지 시험을 거부하신 거예요내 백성은 절대 그렇게 못살게 할 거야절대 그렇게 못살게 할 거야여러분우리가 우리의 됨됨이나 자격이나 조건들을 자랑하여 그리고 나의 소유를 자랑하여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된단다그러니까 너희도 예수 믿고 나처럼 복받아라~. 이게 된다는 거예요안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거 거절하셨다니깐요근데 고지를 점령하여 하느님 나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자,라는 건 어디서 나온 거예요도대체하느님 나라는 순교자들의 피를 타고 확장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죽으면 죽을수록 거기서 하느님이 드러나고 그 하느님이 당신의 나라를 확장시켜가시는 거예요여러분예수님이 십자가에 맥없이 달려서 하느님저들이 내 옷을 제비뽑고 있네요내 가 이 수모를 계속 당해야 됩니까?라고 했을 때 하느님이 그걸 그대로 지켜보게 하셨어요.

근데 오늘 본문이 뭐라 그러냐면 그게 하느님의 말씀을 이뤄지게 하려 한 거래요보세요예수님의 옷이그분이 입었던 옷이 뭐 그렇게 대단히 좋은 옷이었겠습니까여러분 같으면 그거 갖겠어요사형수가 입던 옷--! 아무리 못 살던 때라 할지라도 그 더러운 걸 제비 뽑아서 나눠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근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그래요하느님이 그렇게 정해놨다라는 거예요이미.

그러니까 예수님의 그 수모는 하느님이 도와서 없애주는없애줄 일이 아니라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일이었다란 것입니다하느님이 왜 만들어 놨겠어요"나는 니가 이 세상에서 어떤 수모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 세상 것을 도와주러 온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라그 세상 것이 아닌 하느님 나라의 그 영광그 영생을 너에게 줄려고 그 참 복을 줄려고 하는 존재니까 그런 거 혹시 내가 안 도와준다고 해도 너 당황하지 말아라." 그거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의 삶을 하느님이 그렇게 정해놓으신 거예요근데 그 삶을 다윗이 똑같이 경험한 거 아세요?

 

<시편 22:19-21> 19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20 그러나 주님당신께서는 멀리 계시지 마소서저의 힘이시여어서 저를 도우소서.21 저의 생명을 칼에서저의 목숨을 개들의 발에서 구하소서.

누가 다윗의 겉옷과 속옷을 제비 뽑았겠어요상징이죠내 것을 다 빼앗아 가고 나를 뻘거벗겼는데 하느님이 그거 안도와줬자나요이야기하는 거예요세상이 나를 벌거벗겨서 나를 모욕했는데 하느님이 그거 안도와줬자나요이야기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 일을 겪으셨단 말입니다따라서 하느님의 백성인 다윗이 이 일을 겪었다면 여러분도 당연히 겪으셔야 돼요세상이 여러분을 발가벗겨 놓고 여러분의 소유를 갖고 억지를 부려가며 지들이 찬탈해 가는데 하느님이 안 도와주셔.. 그때 당황하지 마시란 말예요예수가 그렇게 살다갖고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다 그렇게 살다 갔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그런 일이 여러분 삶 속에서 일어날 때에 예수님의 그 십자가상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잘 기억하시면서 아 이 삶이 맞구나.. 하느님이 자꾸 나를 이 세상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내 삶 속에 불을 지르고 계시는 거구나.. 그냥 나는 불이야하고 튀어 나가면 되는 거구나근데 안돼또 불 질러요하느님이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오시면 돼요그리고 결국에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몸이로다이 사망의 몸에서 나 좀 건져줘야 되지 않겠는가하느님의 은혜가 그래서 필요한 거구나그거 절실히 깨닫고 인제 하느님이 선악과 먹지 말라고 그러면 여러분~대 먹지 말아야지 그거 배우고 하느님나라 가면 되는 거예요그러면 끝!

거기 올라갔는데 여러분이 뭐 이 세상에 착한 일 몇 개 했는지 하나하나 세어서 자너 상 열개~. 넌 열두 개이우넌 잘했구나스무 개너는 모했니개털모자이런 일 없어요천국에 무슨 상이 있습니까거기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삶은 영생밖에 없어요절대만족모든 존재가 절대만족으로 사는 곳에서 무슨 상이 있어요거기서 상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다 만족스러운데나 상 받았다~^ ..도 자랑스럽게 여겨주질 않아다 자기는 만족하고 있거든요근데 거기서 무슨 상이 의미가 있어요근데 상 받겠다고 지랄들을 떨어요아주교회가.. 그것 자체가 마귀적 발상이에요남들보다 나는 더 큰 대우를 받겠다는 거그게 뭡니까그게 마귀지 뭐예요~. 자기 챙기기여전히.

나는 죄인이에요당신의 나라 임할 때 내 이름만 불러주신다면 저는 감지덕지입니다이게 가운데였잖아요그럼 우리가 이 세상 떠날때 하느님저 일을이만큼 했는데 저한테 주실 상은 뭘까요아유 너무 궁금해~. 이런 마음으로 갈 수 있을까요누가과연 누가데 전부 상 받겠다고들.. 집 팔고 논 팔고 밭 팔고 가정 팽개치고 난리 굿을 치는 것입니다아니에요 그냥 일상에 성실하게 그냥 평범하게 사세요살면서 하느님을 배우시고 그 하느님의 은혜를 꼭 붙드는 이로 지어져 가면 되는 거예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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