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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 토빗의 유배지 살이 / 시련과 기도[1] / 토빗기[4]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14 조회수1,552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4. 토빗의 유배지 살이(토빗 1,10-22)

 

모세의 법에 쓰인 규정에 따라 충실히 살면서, 고향에서 부모님께 효도하며 아들까지 얻은 고향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나는 포로가 되어 정든 고향산천을 떠나 타국 땅 아시리아로 유배를 왔다. 포로가 되어 이곳 니네베로 끌려온 것이다. 유배지에서의 내 친척과 동족들은 모두 이민족들의 음식을 잘 먹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조심하여 피가 들어있는 살코기나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 하지 않는 돼지 등의, 이민족들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창세 9,4; 신명 14,8 참조).

 

여기서 이민족들의 음식이란 율법의 규정을 따르지 않고 준비한 음식을 말한다. 사실 음식에 관한 금령의 준수가 특히 유배 이후에는 유다인들의 충실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마음을 다하여 나의 하느님을 잊지 않았으므로,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내가 살만에세르에게서 호의와 귀염을 받도록 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임금에게 필요한 모든 물품을 사들이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임금이 죽을 때까지, 나는 메디아로 가 임금을 위한 여러 물품을 사 오곤 하였다. 그곳은 티그리스 강과 카스피 해 사이의 고지대로서 수도는 엑바타나였다.

 

그때에 나는 메디아 땅에서 가브리의 동기 가바엘에게 지금의 기준으로 410킬로그램가량 되는 은 열 탈렌트가 든 자루들을 맡겨 두었다. 그런데 살만에세르가 죽고 그의 아들 산헤립이 뒤를 이어 임금이 되자 메디아로 가는 길들이 가로막혀, 나는 더 이상 메디아로 갈 수가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 살만에세르의 후계자는 사르곤 2세이고(기원전 722-705), 산헤립은 이 사르곤의 뒤를 잇는다(기원전 704-681). 이와 같이 토빗기의 역사적 사실은, 실제가 아니다.

 

이 살만에세르 시대에 나는 내 친척과 동족들에게, 누구보다도 알게 모르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배고픈 이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이들에게는 입을 것을 주었으며, 그리고 내 백성 가운데 누가 죽어서 니네베 성 밖에 던져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그를 곧장 묻어주곤 했다. 더군다나 산헤립이 저지른 신성 모독 때문에 하늘의 임금님께서 심판을 내리실 적에, 그가 유다에서 도망쳐 나와 죽인 이들도 나는 묻어 주었다. 산헤립이 분노를 터뜨리며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내가 그들의 주검을 훔쳐 내어 묻어 주었던 것이다.

 

사실 율법에 따르면,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은 최악의 저주로 여겼다. 그러므로 죽은 이를 장사 지내 주는 일은 성스러운 의무이기도 했다. 가까운 친척이든, 이러한 토빗의 선행은 토빗기에서는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그 주검들을 산헤립이 찾았지만 찾아내지를 못하였다. 그때에 니네베 주민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임금에게 가서, 내가 죽은 이들을 묻고 있다고 알렸다. 그래서 나는 몸을 숨겼다. 임금이 내 일을 알뿐더러 나를 죽이려고 찾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두려운 나머지 몰래 달아난 것이다. 그러자 나의 모든 재산이 몰수되었다. 내 아내 안나와 아들 토비야 외에는 하나도 남지 않고, 모조리 임금차지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마흔 날도 지나지 않아 산헤립의 아들 둘이 그를 죽이고 아라랏 산으로 달아났다. 그의 다른 아들 에사르 하똔이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기원전 680-669). 이 역시 실제 역사가 아닌 저자가 허구로 자신의 뜻에 맞게끔 쓴 것이다. 그가 나의 동기 하나엘의 아들 아키카르에게 나라의 모든 재정을 맡겼다. 그래서 아키카르가 모든 행정에 관한 권한을 쥐게 되었다.

 

아키카르, 토빗기에 여러 번이나 나오는 이 인물은 근동의 아주 오랜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아키카르의 지혜에서 빌려 온 것이다. 이렇게 그는 당시에는 일종의 전설적인 인물로서, 아시리아의 두 임금 아래에서 봉직하였던 그는 사려 깊은 정치가이고, 금언을 만들어내는 현인의 표본이었다. 이 대중적 영웅을 토빗의 조카로 내세움으로써, 저자는 고대 근동에서 가장 유명한 세속적 지혜의 흐름 하나를, 자기의 것으로 삼는 아주 기묘한 방법을 동원해 연출하였다.

 

그러자 아키카르가 나를 위하여 간청을 드려 나는 니네베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아무튼 아키카르는 아시리아인들의 임금 산헤립의 헌작 시종장이고 옥새 책임관이었으며 행정관이고 재정관이었다. 그렇게 아키카르는 산헤립의 총애를 받아왔다. 그래서 에사르 하똔 임금이 그런 아키카르를 전임자 때의 일 처리 능력을 보고는 다시 주요 자리에 임명한 것이다. 이 아키카르는 나의 조카로서 가까운 친족이었다. 이렇게 그는 토빗을 위해 개입의 여지를 남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산헤립 다음의 에사르 하똔 임금 시대에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내 아내 안나와 아들 토비야를 되찾게 되었다.[계속]

 

[참조] : 이어서 ‘5. 눈이 먼 토빗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니네베,살만에세르,가바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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