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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부활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16 조회수1,854 추천수7 반대(0)

한국의 자동차에는 대부분 있는데 미국의 자동차에는 대부분 없는 것이 있습니다. ‘Black Box'입니다. 한국에서는 블랙박스가 있으면 자동차 보험료를 할인받습니다. 저도 블랙박스를 설치하였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험사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3년간 미국에서 살면서 블랙박스가 있는 차를 거의 보지 못하였습니다. 블랙박스가 있으면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서로 언성을 높일 일이 거의 없습니다. 블랙박스에 사고의 영상이 녹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보험사나 경찰이 와서 운전자와 이야기할 것도 거의 없습니다. 영상을 보고 확인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사고가 나면 경찰이 오고, 경찰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해야 합니다.

 

한국의 길거리에는 대부분 있는데 미국의 길거리에는 대부분 없는 것이 있습니다. ‘CCTV'입니다. 한국의 길거리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범인을 찾기에 용의하고, 실종된 사람의 이동경로를 찾기도 수월합니다. 미국은 카메라가 거의 없기 때문에 범인을 찾는 것이 쉽지 않고, 실종된 사람의 이동경로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미국과 한국 사회의 차이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사회의 안전을 우선하는 문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주님 부활대축일입니다. 초대교회는 주님의 부활을 증거나 증인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음과 변화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신앙의 신비가 되었습니다. 믿지 않으면 주님의 부활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주님의 부활은 그저 지나간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빈 무덤을 이야기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빈 무덤은 텅 빈 무덤으로 남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부활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빈 무덤은 텅 빈 무덤으로 남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부활을 찾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 기고한 이호자 수녀님의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약함 안에서 드러나는 힘, 그리스도의 희생의 힘, 살아있는 실재인 그분의 희생적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십자가가 종착점인 양, 그리스도의 삶과 희생이 더 이상 아무 영감도 줄 수 없는 절망적인 낭패이고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패배인 양 살아가는 것입니다.(토마스 할리크의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에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의 문을 꼭꼭 잠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의 눈이 어두웠고 아직도 비몽사몽 비참한 죽음의 골짜기만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감옥에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자네, 내가 감옥에 갇혀서 마음이 부서졌을 거라고 걱정했지? 마음은 부서지게 되어있는 거라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마음을 부서지게 하는 과정이지. 내가 이 감옥에서 괴로워하는 이유는 부서진 마음이 아니라 절대로 부서지지 않겠다고 감옥 담보다 더 지독한 콘크리트 담을 마음에 쌓은 이곳 사람들의 부서지기를 거부하는 마음 때문이라네. 우리의 마음이 절대로 부서질 수 없게 무장되었을 때 우리의 삶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네.” 세상에는 부서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스스로 부서져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무덤으로 향해 달려가는 두 제자의 모습을 봅니다. 실망하여 낙담하며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함께 머물고 가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 벅찬 감격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무덤으로 달려간 두 제자는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근심과 걱정이라는 담을 높이 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아라는 무덤 속에서 나와야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에 근심, 걱정, 두려움, 욕심, 교만함이 가득한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아도 믿지 못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믿으면 봄에 피는 꽃을 보듯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제가 사제답게, 수도자가 수도자답게, 신자가 신자답게 살아가는 것이 곧 그분의 부활을 믿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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