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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21 조회수2,039 추천수6 반대(0)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뽑을 때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됨됨이를 잘 아셨습니다. 그 중에 예수님을 배반할 제자도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능력과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두려움에 예수님을 배반하기도 하고,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도 하고, 십자가를 포기하고 다락방에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능력과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셨고, 사람들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셨고, 사람들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셨던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공감하는 것입니다. 표징과 기적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알베르트 까뮤는 페스트에서 성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페스트가 창궐한 세상에서 사제는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율법과 계명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성스러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페스트가 창궐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도망가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성스러움의 또 다른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도망가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는 것은 의사로서 나의 직무에 성실하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내 직무에 성실하지 않고 도망간다면 나는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성실함은 곧 성스러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까뮤는 페스트를 옮기는 세균은 어쩌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페스트는 자아를 잃어버린 인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직무에 태만한 인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마틴 루터 킹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 축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부활의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부활의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주님의 제자로서 규율은 지키지만 이웃의 아픔과 슬픔에 깊이 공감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성당에 다니는 것은 혼자만의 신앙은 외롭고,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을 함께 걷는 것은 축복이고 은총입니다. 베드로와 동료들은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들이 어부였기 때문에 고기를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너희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겠다.’라고 하신 분, ‘중풍병자를 치유하시고,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풍랑을 잠재우셨던 분, 하늘나라를 선포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던 분과의 기억은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빌딩 숲에 있던 한 그루의 목련처럼 제자들은 외로워보였고, 그 향기가 도시의 화려함에 묻혀버린 것처럼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제자들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다시 기운을 차립니다. 역시 주님과 함께 해야 힘이 나고, 주님께서 이끌어 주셔야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고,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는 외로움도, 두려움도, 쓸쓸함도 찾을 수 없습니다. 밤새 충전한 핸드폰의 배터리는 한참을 통화해도 충분한 것처럼, 주님과 함께했던 제자들에게는 박해도, 시련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이웃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이웃의 기쁨과 희망을 함께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나눔이 있고, 그 안에 위로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의 부활이 이루어지는 삶의 현장입니다.

 

매년 주님의 부활 축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단순히 매년 왔다가 가는 행사와 전례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을 향해 모든 것을 버리고 뛰어내려야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부활을 삶 속에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모든 것을 얻으셨습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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