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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속(救贖)으로 하느님은 인간을 신성(神性)에 참여시키셨다.
작성자이정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26 조회수1,094 추천수1 반대(0) 신고

하느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류의 영혼을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해내시어 예수의 몸 안으로 옮겨주시고(콜로1,13-14), 예수의 몸 안에서 예수의 피로 인간을 속량하시어 의롭게 해 주셨다. (1코린1,30; 에페1,7) 이는 인간의 믿음과는 무관하게, 우주적으로 거저 베푸신 구속으로써, 구속의 중재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이다. (로마3,21-26) 예수는 인류의 속죄를 위해 속죄 제물과 화목 제물로 봉헌되었는데,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희생이 아니고 전 인류를 위한 희생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인류의 영혼을 예수의 몸 안에서 예수와 결합시켜 그분의 지체가 되게 하시고(1코린12,27) 예수와 한영(one Spirit)을 이루어 주시어(1코린6,17),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도록 허락하셨다. (2베드1,4; 요한6,56)

 

 

이러한 하느님의 구속 신비에도 불구하고, 마르틴 루터는 인간이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 되었다고 한 것과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오직 믿음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리고 죤 칼빈은 예수와 인간의 신비적 연합으로, 그리스도의 ()가 인간에게 전가되었고, 인간에게 전가된 예수의 의는, 믿음 때문에 인간의 () 주 된다(reckoned as righteousness)고 주장한다. (기독교강요, 1559, III)

 

우선 마르틴 루터가 주장한 인간이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는 의미는 한 인간 안에 새 인간옛 인간이 공존한다는 동시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동시성을 철저히 배제(排除)한다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경은 은총 아래에 사는 우리에게서 옛 인간은 이미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새 인간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쳐 준다. (로마6,6-8.11; 6,14; 콜로3,3-4) 따라서 루터의 동시성 주장은 오류이다.

그리고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주장 또한 오류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고, 믿기 전에 하느님은 이미 인간을 의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은 인간의 믿음이 생기기 전에 사탄의 세계로부터 인간을 구해 내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옮겨주시고 속량해 주셨다. (콜로1,13-14; 1코린1,30) 그리고 예수의 몸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요한1,4; 로마8,2) 이유는 하느님이 인간을 예수의 몸 안으로 옮겨주신 때는 예수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된 순간임으로, 인간의 믿음이 생기기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책, 1294,2-4; 8-11; 217-1 참조) 그리고 믿음은 의화의 수단이지 근거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4장 제2항 참조) 그래서 인간의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루터의 논리는 명백한 오류이다.

 

다음은 칼빈이 주장하는 칭의의 메커니즘으로써,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예수가 인간 안에 내주(內住)하시면서, 인간과 신비적 연합을 이루었다신비적 연합으로 외부의 의(), 곧 예수의 의()가 인간에게 전가(imputed)되었다인간에게 전가된 예수의 의()가 인간의 것(믿음)으로 간주 되었다.   칭의는 불의한 인간을 의로운 인간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고,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칭의는 죄를 제거한 것이 아니고, 죄를 덮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실제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고, 다만 하느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셔서 의인으로 간주 되는 것이다. (칼빈의 구원론과 교회론, SFC, 22-47쪽에서 요약)

 

루터와 칼빈은 분명 성경과 다른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칼빈의 주장이 어떻게 성경에 배치되는지 편의상, 칼빈의 주장은 A, 성경의 가르침은 B로 구분하여 비교 검토해 본다

    

I. A : 예수가 인간 안에 내주(內住)하시면서 인간과 신비적으로 연합되었다. (칼빈의 구원론과 교회론, SFC, 21-23) B : (칼빈의 주장과는 반대로) 하느님은 인간의 영혼을 예수의 몸 안으로 옮겨주셔서(콜로1,13) 예수의 몸 안에서 예수와 인류의 영혼을 결합시켜 한영(one Spirit)을 이루어 주시고 속량해 주셨다. (콜로1,14; 1코린6,17; 마태19,6; 요한6,56; 15,5-6)

 

II. A : 인간을 구속한 힘은 예수의 의()이다. B : 인간을 구속한 힘은 하느님의 의()이다. (로마1,17; 3,21-31; 10,3; 2코린5,21; 필리3,9)

 

칼빈이 로마3,21 주석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예수의 의를 바오로가 왜 하느님의 의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유다인들도 알고 있던 사실을 칼빈이 왜 모를까? (로마10,3 참조) 구속의 메커니즘에 대해 칼빈의 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수와 한영을 이룬 인간은 예수의 몸 안에서 하느님의 의를 공유하고 교류하였다. (콜로2,9-10) 예수는 구속의 중재자이어서, 하느님은 인간을 예수의 몸 안으로 옮겨주시고, 예수의 몸 안에서 당신의 의를 인간과 공유하셨다

 

III. A : 예수의 의()가 인간에게 전가되었다(imputed). 그런데 전가된 예수의 의가 믿음으로 인간의 것이 되었고, 따라서 죄인인 인간이 의롭다고 간주 되었다. B: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의()공유하고 교류하신 분이고(콜로1,19; 2,9), 또 예수와 결합하여 한영이 된 인간 역시(1코린6,17) 예수의 몸 안에서 예수와 함께 하느님의 의()를 공유하고 교류하게 하셨다. 즉 하느님의 본질적인 의로움이다. (콜로2,10; 요한6,56)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신성(神性)에 참여(Deification)하게 된 것이다. (시편82,6; 2코린3,18; 2베드1,4; 1요한3,2)

 

IVA : 인간에게 전가된 예수의 의(), 믿음으로, 인간의 의로 간주 되었다. B : 예수와 한영()이 된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었다. (콜로1,13; 로마3,24; 1코린1,30; 6,17) A : 칭의의 근거는 예수의 의()이다. B : 칭의의 근거는 예수그리스도의 몸, 구체적으로 예수의 피이다. (에페1,7; 히브9,22; 요한6,54-55)

 

V. A : 인간에게 전가된 예수의 의()가 인간의 죄를 덮었다. 인간의 죄가 단지 예수의 의로 덮어 씌워지고, 죄가 제거된 것이 아니어서, 인간의 내면은 변화되지 못하고 실제로는 죄인의 상태로 남아있지만, 인간의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이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다. B : 예수의 몸 안에서 인간은 육신을 벗어버린(콜로2,11) 인간 내면(영혼)에 있는 죄가 예수의 피로 완전히 처단되고 제거되었다. (로마8,3; 에페1,7; 히브10,22) 구속으로 인간에게 남아있는 죄는 없다. 유전되는 일도 없다. 따라서 인간은 실제로 의롭고 거룩하게 속량되었다. (1코린1,30; 콜로1,14; 에페1,7)


VI.A : 하느님은 인간을 의롭다고 인정하셨다. B : 하느님은 인간의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하셨다. (창세5,16; 로마4,22)


하느님께서 인간의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하실 때에는, 그 본성 그대로 두고 그 안에 있는 악을 깨끗이 없애지 않은 채 의롭다고 인정하지 않으신다. (히브10,16-17; 10,22) 불의한 죄인을 의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법적 허구(legal fiction)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시안더, 칼빈의 구원론과 교회론, 53)

 

더욱이 오늘날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1) 예수의 피로는 인간의 죄를 제거하지 못하고 죄를 덮을 뿐이다. (2) 죄책(guilt)은 완전히 없어졌지만, 죄로 인한 부패 또는 오염은 여전히 남아있다. (3) 인간이 의인이 되었으나, 계속하여 죄를 짓고 있다.”는 등의 이유다. 그러면 그들의 주장들은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성경은 인간이 죄의 개념에 대해, 율법 시대에는 죄가 곧 죽음이며 인간을 지배하였으나(=죽음), 은총의 시대에는 죄가 죽음을 초래할 수 없으며, 더 이상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고 가르쳐 준다. (죽음) 또한 구속 위업의 일환으로 인간의 영혼이 예수의 몸 안으로 옮겨져 살면서 예수와 한영을 이루었기 때문에(콜로1,13-14; 1코린6,17; 1코린1,30), 죄가 예수에 의해 통제되어(peccatum regnatum) 죄 때문에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되지는 않는다. 성경은 이러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증언한다.

 

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총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6,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분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8,1-2)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로마8,33)

 

상기 로마서 81-2절에서 성령의 법은 하느님이 예수의 몸을 통해 이루신 구속의 육적 개념을 의미한다. 그리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은 우리의 영혼이 예수 안에서 그분과 한영이 되었음으로, 율법(창세2,17)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하느님은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시어 그를 통해 인간과 새 계약을 맺으시고, 인간을 속량해 주셨다. (예레31,33-34; 에제36,27; 37,14) 우리의 영혼은 예수의 몸 안에서 살면서 예수의 지체가 되어, 그분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콜로1,13-14; 1코린12,27)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고, 예수로부터 받은 우리의 새로운 생명(Zoe)은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다. (콜로3,3-4)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된 것이다. (필리3,20) 예수의 공로로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 것이다. (사도26,18; 에페2,5; 2코린5,17; 히브2,14; 1요한3,14)

 

둘째, 하느님에 의한 죄의 면제는 예수를 통해 죄의 힘을 분쇄하고, 죄를 처단하고(로마8,3) 씻어준(히브10,22) 신비를 의미한다. 반면에 죄의 용서는 하느님께서 죄를 벌하지 않고 덮어두신 것을 의미한다.(로마3,26) 구약 시대에 '죄의 용서'는 있었으나, '죄의 면제' 없었다. 구약시대 1년에 한 번씩, 대 속죄일(Yom Kippur)에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지성소에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그곳에 안치된 계약궤의 덮개인 속죄판에 피를 뿌릴 때 하느님은 전 이스라엘인들의 죄를 용서해주셨는데(레위기 16), 속죄판에 짐승의 피를 뿌림은 '죄의 용서' 예식이었다. 죄를 제거하는 죄의 면제예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짐승의 피로는 죄를 제거하지 못하고, 죄를 덮을 뿐이어서(히브10,4), 매년 같은 예식을 되풀이해야 했다.

 

 죄의 면제죄의 용서는 하느님께서 피를 통해 이루신 신비이지만(히브9,18), 죄의 면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예수의 피로(로마8,3;히브 9,12-14; 10,22) 성취하신 구속 위업을 의미한다. 예수의 몸 안에서 그분의 피로 모든 죄가처단되었고(로마8,3) 우리를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히브10,12.14), 예수의 공로로 죄가 영원히 제거된 것이다.(이사25,8; 호세13,14; 요한1,29; 1코린15,55)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1)예수의 피로 죄를 덮었다.”는 주장은 예수의 피로 우리 인간의 죄를 제거해 주신 죄의 면제 신비를, 구약시대 짐승의 피로 죄를 덮으신 죄의 용서 예식으로 착각하여 구속 진리를 왜곡한 주장이다. 하느님은 새 계약을 통해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 (예레31,31-34) 그리고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의 세력은 분쇄되었기 때문에(로마8,3; 2코린5,21; 갈라3,13), 이제는 (원죄+본죄)가 없어지고 유전되는 일도 없다.

 

그런데 현세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죄를 짓기 때문에 예수의 공로로 의인이 된 우리가 다시 죄인으로 돌아가는가? 앞서 본 것처럼 우리가 은총 아래에 있어서 죄가 우리에게 군림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로마6,14) 성경에 노아, 아브라함과 롯은 의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노아는 창세 9,20 이하에, 아브라함은 민수20,10-11에 그리고 롯은 창세기 19장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에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다고 한다. (로마3,23; 5,12) 그렇다면 그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의인이라고 하는가? 의인과 죄인을 구분 짓는 잣대는 죄를 짓는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라, 결국 하느님의 결정에 달렸다고 본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를 옹호하는 (2), (3)번도 왜곡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2코린5,17), 헬라어로는 이를 καινκτίσις(kainē ktisis)라고 표현한다. 헬라어로 새롭다는 의미가 있는 단어는 두 개가 있는데 ‘neos’‘kainē이다. 두 단어의 차이는 ‘neos’는 방금 생겨났지만, 이미 비슷한 것들이 존재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고, ‘kainē는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몸 안에서의 새롭게 된피조물은 이제는 타락한 본성을 지니는 인간이 아닌, 새롭게 변형된 ‘kainē 인간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 된 것이 구속인데,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는 주장은 성경과 배치된다. 또한 칼빈이 주장하듯이 구속으로 인간이 의롭다고 간주 되는 것이 아니고, 총체적 죄인에서 총체적 의인으로 변형되었으며, 예수 안에서 재창조(regenerated)되어 다시 태어난 것이다. (요한3,3-8; 로마6,3-4; 1코린12,13; 2코린5,17)

 

셋째, 개신교의 구속론은 법정적 칭의이다. 즉 하느님의 신적 선언으로 인간의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하셨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예수의 몸을 통한 인간의 재창조를 (콜로1,13-14; 1코린12,13; 2코린5,17) 구속 신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오류이다. 개신교 신학자이면서 의사인 슈바이쳐 박사도 종교개혁자들이 예수 안에 있음(Being-in-Christ)’ 신비주의 구속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믿음을 하느님의 구속 사업의 출발점으로 삼은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The mysticism of Paul the Apostle, 1998, A. Schweitzer, the Jones Hopkins University Press, 220)

 

넷째, 인간이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절체절명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만약 루터와 칼빈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완전히 의롭게 되지 못하고 죄인의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면, 종말에 있을 구속의 완성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된다. 무슨 말인가? 세상의 종말에 구속의 완성의 때에는 의롭게 부활하게 될 인간의 육체와 예수 안에서 이미 의롭게 된 인간의 영혼이 서로 결합하여 영적인 몸으로 변하게 되는데, 우리의 영혼이 죄인의 상태라면 영적인 몸으로 변할 수가 없다. (1코린15,50-56 ) 따라서 인간이 천국(天國)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신교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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