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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5.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02 조회수1,64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2년 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요한 6,22-29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22 이튿날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미국 버클리 대학의 심리학자

오즈렘 에이덕(Ozlem Ayduk)

미시간 대학의 이선 크로스(Ethan Kross)

벽에 붙은 파리를 예를 들어

설명한 것에 유래한 벽에 붙은

파리 효과(Fly-on-the-wall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부정적인 상황에

갇혀 있을 때그 안에서 빠져나와

제삼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고민이 아무리 크더라도

벽에 붙은 파리가 듣는다면

그거 아무것도 아니네라고 여길 것처럼,

제삼자의 객관적 시선으로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인칭 시점에서 부정적 상황을

떠올리면 혈압과 심박수가 올라가면서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삼인칭 시점으로 보면

감정의 변화도 줄어들고,

그 안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찾게 됩니다.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자고 하신 것도

일인칭 시점인 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배려가 아닐까요?

주님과의 관계를 보면서 새로운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

주님과 함께할 수 있도록

더 힘을 쏟아야 합니다.

나만을 떠올리고내 탓만 따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지게 됩니다.

빵의 기적이 있고 난 뒤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세상 요구의

만족을 위하여 예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예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을 향한

호칭에서도 랍비라고 말합니다.

이는 대체로 아직 예수님의 정체를

모를 때 부르던 사회적 존칭이었습니다.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니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요한 6,27)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느님의 표징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했습니다바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면,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임을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믿음은 하느님과 우리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믿음 없이는 하느님과

우리의 연결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이 연결이 있어야 영원한 생명도

주어지는데연결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어리석음은 아니었을까요?

객관적으로 주님과 나의 관계를

묵상해보시길 바랍니다.

나의 입장에서가 아닌 주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 시선이 바로 믿음의 시작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어떤 균열이든 두 팔로 끌어안고

지속하는 그것이사람의 일이야(전경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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