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04 조회수1,782 추천수6 반대(0)

제가 강의를 하면서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제목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가사의 내용이 아름답기에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침을 기다리는 새벽별처럼/ 내 마음 깊은 그곳에/ 고요히 밝아오는 빛의 향기로/ 우리 사랑은 영원히/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빛나는/ 내 마음 깊은 그곳에/ 마르지 않는 샘물 되어 흐르오./ 우리 사랑은 영원히/ 때로는 외로움에 눈물지어도/ 그대 나에게 등불이 되어/ 말없는 눈빛으로 기도해/ 영원한 사랑을 위해/ 나 이제 당신 위해 꽃을 드려요/ 눈빛 순결한 사랑의/ 고요한 두 마음이 두 손을 모아/ 영원한 사랑을 위해저는 아침을 기다리는 새벽별처럼이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영원한 사랑은 갈망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는 복음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을 수학적인 공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리적인 법칙으로 알아내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수학적인 계산으로 답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물리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도 물어보십니다. ‘여러분들도 내 곁을 떠날 것입니까?’ 베드로 사도는 대답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사랑 때문에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았습니다. 스테파노 부제, 바오로 사도, 신앙의 선조들은 이런 삶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분들에게 물리적인 방식의 영원한 생명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수학적인 방식의 영원한 생명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지도 않은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충실한 삶이 과거가 되는 것이고, 지금의 행복한 삶이 미래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한 삶은 신앙 안에서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과 갈망이 만나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건들을 모아서 아이티에 있는 꽃동네로 보내는 자매님이 있습니다. 귀찮은 일입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일을 몇 년째 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의 사랑과 갈망은 굶주리고, 병들어가는 아이티의 고통 받는 이들에게 생명의 빵이 되고 있습니다. 물리학적인 시간, 생물학적인 시간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순간을 말씀 안에서 충실하게 사는 사람은 신앙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끝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 끝은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감사하십시오. 매일 기도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