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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8.“아무도 그들을(내 양들) 내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07 조회수1,685 추천수2 반대(0) 신고

요한 10, 27-30(부활 4주 주일): 성소주일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며, 착한 목자 주일이요 성소주일이며, 동시에 어버이 날이고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합니다. 

이날 우리는 참으로 귀한 말씀을 듣습니다. 

사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목소리들이 혼탁하게 들려옵니다. 

온갖 뉴스들이 들려오고, 자신 안에서도 요란스런 생각들의 소리가 거세게 흘러 다닙니다. 

우리는 이 많은 소리들의 홍수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구별할 줄 알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지금 대체,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세상에 흘러 다니는 뉴스소문들인가?

타인들의 평가나 비난인가? 자기 자신의 목소리인가? 주님의 목소리인가?


착한 목자주일이요, 성소주일인 오늘 <제1독서>에서는 모든 시대의 목자들을 위한 모델로 사도 바오로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땅 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사도13,47)라고 밝히며,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차 이었다.”(사도 13,52)고 말합니다.

<제2독서>에서는 하늘나라에서 어린양이라 불리는 목자의 보살핌으로 안전하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을 보여주는데, “그분께서는 그들을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하시고,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며,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으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 7,16-17 참조) 라고 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요한복음> 10장으로 “착한 목자”에 대한 장으로, 예루살렘에서 ‘성전봉헌축제’ 때 벌어진 논쟁을 들려줍니다. ‘봉헌절’(ενκαíνοσ)이란 단어는 ‘새롭게 함’, ‘쇄신’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새 포도주’(마태 9,17;26,29), ‘새 것’(마태 13,52), ‘새 계명’(요한 13,34), ‘새로운 계약’(2코린 3,6;히브 8,8.13.), ‘새로운 창조물’(2코린 5,17), ‘새 사람’(갈라 6,15;에페 2,15), ‘새 하늘 새 땅’(2베드 4,13;묵시 21,1), ‘새 노래’(묵시 5,9) 등에서도 사용되고 있듯이, 새롭게 되는 것, 곧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새롭게 되는 날’이 되어야 할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요한 10,27)

 

여기에는, ‘듣다’, ‘알다’, ‘따르다’, ‘준다.’ 라는 동사가 연이어 나옵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 목소리나 듣는 것이 아닙니다. 들려오는 그 많은 말들이 아니라, 참된 말씀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양이라면, 분명 그 많은 목소리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듣는 데는 먼저 자신의 생각이나 고집을 내려놓고 듣는 일이 필요합니다. “듣다”라는 이 말에는 ‘더 깊이’라는 뜻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단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알아듣는 것’, 곧 ‘마음으로 듣는 것’,마음으로 깨달아 알아듣는 것입니다. 곧 내면적인 것인 관계의 형성을 의미하며, 받아들여 관계 맺는 인격적인 교류를 뜻합니다.

또한 “알다”의 단어의 뜻은 단순히 정보를 안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밀애의 영역에서 체험하여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곧 목자와 양은 서로를 몸소 체험하여 경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 성소의 길은 ‘말씀을 듣고 체험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알고 있는 앎을 바꾸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막상 그 길을 가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고집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소의 길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따르다”는 뜻은 ‘받아들이다’, ‘환영하다’란 의미로, 나아가서 ‘곁에 있다’는 표현입니다. 곧 ‘곁에서 함께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세 동사는 모두가 관계를 깊이 맺는 진실 된 ‘관계성’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진정한 관계가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사랑’을 믿는 이에게,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요한 10,28).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그들을(내 양들) 내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요한 10,27)

 

그렇습니다. “당신의 손”은 ‘당신의 권능’을 드러냅니다. 당신의 손에서 아무도 그분의 양들을 빼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잘 알아들여야 할 것은 ‘아무도 우리를 그분의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지, ‘아무도 그분의 손에서 떨어져 내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곧 아무도 우리를 그분의 손에서 채 갈수는 없지만, 자칫 스스로가 자유로이 그분의 손에서 떨어져 내릴 수는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처럼, 스스로 완고함으로 “주님의 목소리”를 믿지 않고 배척하는 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가리켜 “너희는 내 양들이 아니기 때문이다.”(요한 10,2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결코 우리는 예수님의 손에서 스스로 빠져나가는 일이 없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서 아무도 양들을 빼앗아갈 수 없음을 목자이신 당신은 목장의 주인이신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서 이렇게 밝히십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이와 마찬가지로, 목자와 양들도 서로 알아보고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목자는 당신의 지체인 양들을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무엇보다도 양들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양들을 구하시시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 10,27)

주님!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서

숨지 않고 피해 달아나지 않게 하소서!

당신 면전에 나서서 주님임을 알고

당신 사랑의 목소리 듣게 하소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듣게 하시고 깨달아 알게 하소서!

깨달아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새기게 하시고 따르게 하소서!

당신 말씀을 따름이 제 행복입니다. 아멘.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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