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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 입문[1/2] / 위협받는 유다[1] / 유딧기[1]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08 조회수1,391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입문[1/2](유딧 1,1-16,25)

 

유딧기 전체 줄거리의 요약은 단순하다.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이스라엘을 유딧의 한 여인이 나서서 구하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다룬 것이다. 이 소재는 팔레스티나 땅의 조그마한 성읍이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이 내려다보는 요충지인 배툴리아가 포위되는 사건이다. 그때에 신심 깊은 한 과부가 나서서 적군의 진지로 들어간다. 유딧이라는 이 여인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적장 홀로페르네스는 그녀를 꾀려고 연회를 여는데, 그녀가 그 기회를 틈타 적장을 술에 취하게 하고는, 그가 잠든 틈을 노려 적장의 목을 베어 버린다. 이로써 침략군이 혼비백산하여 패주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먼저 기원전 605년에서 562년까지 바빌론을 다스린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여기에서는 기원전 612년에 그의 부왕 나보폴라사르와 메디아인들의 연합군에 점령된 니네베의 임금으로 나온다. 이 임금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파괴한 뒤에 예루살렘의 주민을 유배지로 끌고 가기도 한 자다. 그러한 그가 군대를 팔레스티나로 원정 보내는데, 이 군대가 유배에서 막 돌아온 이스라엘인들에게, 패배하고 괴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물이 실제 역사와는 부합되지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배툴리아 지역 역시 유딧기의 묘사에 들어맞지가 않는다.

 

더둔다나 지역 문제는 배툴리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딧기에는 니네베, 다마스쿠스, 티로처럼 널리 알려진 이름들과 함께 다른 지명도 나오는데, 그곳이 지리적으로 정확히 어디에 위치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라가우 경계 안에 있는 대평야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말도 있다. 이 라가우는 현재의 라이, 곧 토빗기에서도 언급되는 메디아 땅 엑바타나 북동쪽에 있던 라게스의 변형일 수가 있다. 그러나 다른 지명들의 문제가 모두 이런 식으로 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문제들을 비롯한 여러 어려움은 유딧기의 내용이 역사 기술이 아닌, 어떠한 가르침을 드러내려고 자유롭게 구성한 이야기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는 실제 사건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저자가 이러한 여인의 이야기를 모조리 창작해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종의 교화적 성경해설로서 미드라쉬라고 불리는 유다 문헌에도, 이와 비슷한 설화가 꽤 자주 등장한다. 이렇게 유사하면서도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 그리고 대중 라틴 말 성경과 유다교의 여러 문헌에 따르면 관건이 되는 공적을 기념하는 축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 설화 전통의 기원에 실제 사건이 자리 잡고 있음을 드러내는 새 표지가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페르시아 제국이 근동 지방을 다스릴 때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유딧의 무공덕에 평화가 상당 기간 지속되는데, 그런 상황은 페르시아 시대에 가장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딧기가 말하는 사건의 정확한 연대와 정황과 규모 등을 이 이상 더 자세히 알아낼 방도는 없다. 이처럼 유딧기는 이미 본 바와 같이 역사서가 아니다. 역사의 틀을 가지지만 상상의 사건들을 전개시키는 교훈적이다. 또 사료에는 나오지 않는 부차적인 사건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꾸며 내는 이야기다. 따라서 유딧기 이야기는 일종의 미드라쉬이다.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건으로 이루어진 밑그림을, 기존의 성경에서 끌어온 자료들을 가지고 자유롭게 윤색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작업은 최종 목적인 교화를 목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야기를 비유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여기에는 좀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곧 그 출발점이 어떠한 교의에 관한 교육적 예증을 제시하려는 원의에서 나온 게 아닌, 이미 존재하는 알려진 이야기인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의 가르침이 한 가지에 제한되지 않고 다양하다는 것이 소설적으로 독자를 유혹한다. 어떤 학자는 유딧기가 일종의 묵시록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 둘은 거리가 멀다. 물론 유딧기에도 사건들이 확대되거나 과장된다. 그리고 유딧기는 묵시 문학에서처럼 종말의 대재앙이 아닌, 긴 평화 시대로 결말이 난다.

 

유딧기 원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본디 셈족 말, 아마도 히브리 말로 이 책을 저술하였을 것이다. 그 뒤에 그리스계의 각색자가 칠십인역을 이용하면서 그것을 그리스 말로 번역한다. 그래서 칠십인역과 히브리 말 성경이 서로 다를 때는 그리스 말 역본을 따른다. 이 그리스계 편집자는 셈족 말, 아마도 히브리 말로 된 본문을 가지고 작업하면서, 히브리 말 문체를 충실히 반영하는 여러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본문을 때로는 문자 그대로 번역한다. 그러나 예로니모 성인이 아람 말 본문을 라틴 말로 옮긴 것처럼, 때로는 아주 자유롭게 각색하기도 한다.

 

또한 이 책의 원저자는 틀림없이 자기보다 훨씬 이전의 이야기를 이용하면서, 종교와 율법과 성전과 관련해 위협받는 동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계속]

 

[참조] : 이어서 ‘2. 입문[2/2]’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유딧,배툴리아,홀로페르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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