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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과 하나라고 믿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작성자김 글로리아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09 조회수1,632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2년 다해 부활 제4주간 화요일

 

 

 

 

<하느님과 하나라고 믿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복음: 요한 10,22-30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오늘 복음은 ‘착한 목자’로서의 그리스도께서 참 목자가 되기 위해 왜 당신이 아버지와 하나여야 함을 말씀하시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하시는데,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 합니다. 그들은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 하였다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시며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었으면 당연히 하느님이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요한복음은 오늘 ‘성전 봉헌 축제’날이라고 말합니다. 마카베오가 그리스인들을 몰아내고 성전을 다시 주님께 봉헌한 날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왜 굳이 이 날이라 말하는 것일까요? 성전은 목자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또한 하느님의 집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마치 목자처럼 양들을 자신 안에 모읍니다. 그런데 그 성전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집을 모독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예수님께서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당신이 하느님이시라고 주장하셨는지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양들을 당신께로 이끌고 오라고 파견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처럼 하느님이라 믿지 않으면 그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이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고 여기면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내가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만들 수 없고 내가 하는 사죄경이 아무 효과가 없다고 여기면 어떨까요? 이때 나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권위,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걸을 때 가졌단 믿음은 그래서 교회가 가져야 할 꼭 필요한 믿음이었습니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의 공통점은 모두 암행어사 직을 수행했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암행어사라고 하면 유일하게 기억하는 인물이 ‘박문수’입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박문수를 신으로 섬기며 아직도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어사 박문수는 탐관오리들을 숙청하는 일은 물론 젊은 사람들의 혼례까지 해결해주고 다녔습니다. 한 가난한 집에 들렀을 때 늙은 아버지가 젊은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뛰어 들어간 박문수는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부잣집 늙은 사람이 자기 아들의 신부를 빼앗아 가 다음 날 혼례를 올린다는 것입니다. 박문수는 하루만 참아달라고 하고 암행어사 출두합니다. 

 

 

    또 부자 양반의 딸과 가난한 청년이 사랑에 빠졌는데, 그 부잣집 양반이 결혼을 불허하는 것은 물론 청년을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박문수는 그 부자 양반을 찾아가 딸을 그 청년과 혼인시키도록 하고 재산의 절반을 그 청년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횡포처럼 보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혼인을 못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였습니다. 박문수는 이렇게 임금에게 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서울 밖의 처녀로 나이가 많아 20~30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간 자가 매우 많아 원망이 가슴에 맺혀 화기(和氣)를 손상할 것입니다.”(영조실록, 1730년 12월 24일)

 

 

    하지만 박문수가 위대한 인물일 수 있는 이유는 ‘임금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조의 마음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임금이면 가져야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영조에게까지도 비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백성은 궁핍하고 재물은 고갈되어 하나도 믿을만한 것이 없으니 삼백 년 종사가 어찌 전하 때에 망하려는 조짐이 아니겠습니까? 국사를 물리치고 마음을 붙이려 하지 않으시니 장차 국가를 어떤 지경에 두려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한 신하가 자신의 정치를 비난하는 것에 화가 날 만도 했지만, 영조는 친필로 “쓸데 없는 비용을 삭감했다”라는 글을 써서 박문수에게 주었습니다. 

    

 

    하지만 박문수는 이렇게 임금의 신임을 받아, 갈수록 더욱 다른 신하들의 마음에 거슬리는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왜 서민만 무거운 세금을 감당해야 하느냐며 양반들에게도 세금을 거둘 것을 건의했고, 나라와 양반 두 군데서 뜯어가는 세금에 백성이 굶주리니 신하들의 녹봉을 감하여 그것들이 백성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주장하는 것마다 마음에 거슬렸던 노론파가 소론파에 속한 박문수를 모함하여 감옥에 가두는 일이 생겼습니다. 신하들의 마음도 신경을 써야 했던 영조는 그래도 박문수를 믿어 한 달만에 박문수를 다시 복귀시켰습니다. 

    

 

    하지만 소론파가 역모를 꾸몄고 거기에 박문수도 가담했다는 노론파의 주장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30여 년간 영조를 목숨을 바쳐 섬겼던 박문수는 영조 앞에서 심문당하는 모욕을 당하였고 이 일이 있고 난 후 1년 만에 사망하게 됩니다. 영조마저 처음에는 박문수를 믿지 않았고 박문수도 죄인이라 자청하며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자 영조는 슬퍼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박문수이며 박문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나였다.”(영조실록, 1756년 4월 24일)

 

 

    영조실록의 기록에 그는 이렇게 평가되어 있습니다. 

    “나랏일에 마음을 다했다.”

  

[출처: ‘한국사전-박문수는 왜 암행어사의 전설이 됐나’, 유튜브, ‘KBS 역사저널 그날’]

 

 

    그는 마치 자신이 임금인 것처럼 임금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고 또 임금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임금의 흐트러진 마음까지도 바로잡게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내가 임금이라면!’이란 생각하지 않고서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을 아버지와 동등하게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성전이고 아버지는 그 성전의 주인임을 확실히 하셨습니다. 다만 성전도 그 안의 주인과 하나임을 믿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우리는 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성체로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우리가 그분과 하나이고 그분이라 믿어야 그분 마음을 알게 되고 그분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파견받은 자의 의무입니다. 



    슈퍼맨이 지구의 사람들을 살리는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인간의 후손이 아니라 다른 별에서 왔음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의 아버지는 자신을 희생하며 아들을 놓아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본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그래야 자신을 지구로 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마음과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가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임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 때문입니다.

   

 

 https://youtu.be/XGWW9n3IdhQ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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