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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 네부카드네자르의 공격 / 위협받는 유다[1] / 유딧기[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10 조회수1,245 추천수4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 네부카드네자르의 공격(유딧 1,1-16)

 

유딧기의 시작은 역사적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출발한다. 먼저 기원전 605년에서 562년까지 바빌론을 다스린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여기에서는 기원전 612년에 그의 부왕 나보폴라사르와 메디아인들의 연합군에 점령된 니네베의 임금으로 나온다. 그는 바빌론 임금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파괴한 뒤에 예루살렘 주민을 유배지로 끌고 가기도 한 장본인이다. 그러한 그가 군대를 팔레스티나로 원정 보내는데, 이 군대가 유배에서 막 돌아온 이스라엘인들에게 패배한다. 바빌론 유배지에서 이스라엘인들의 예루살렘 귀환은 키루스 칙령에 의거 기원전 538년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유딧기의 시작은 역사적으로 실제 사항이 아닌 가상의 시나리오이다.

 

아무튼 유딧기 시작은 이렇다. 대성읍 니네베에서 아시리아인들을 다스리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 제십이년의 일이다. 그때에 아르팍삿은 엑바타나에서 메디아인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가 엑바타나 둘레에 너비가 세 페키스고 길이가 여섯 페키스로 다듬은 돌로 성벽을 쌓았는데, 성벽 높이는 일흔 페키스고 너비는 쉰 페키스였다. 그리고 성문마다 예순 페키스 너비로 기초를 놓고 높이가 백 페키스인 탑을 세웠다. 그리고 성문들은 자기 부대들이 한꺼번에 드나들고 보병들이 거기에서 정렬할 수 있게, 높이가 일흔 페키스고 너비가 마흔 페키스가 되게 구축하였다.

 

페키스는 본디 아래 팔을 뜻하는데, 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약 46센티미터이다. 히브리의 길이 단위인 암마와 치수가 같]. 그때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아르팍삿 임금과 대평야에서 전쟁을 벌였다. 바빌론을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한 니네베와 동쪽에 위치한 엑바타나간의 싸움이었다. 그것은 라가우 경계 안에 있는 평야였다. 그리하여 산악 지방에 사는 모든 주민,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와 히다스페스 강 가, 그리고 엘람인들의 임금 아르욕에게 소속된 평야에 사는 모든 주민이 아르팍삿에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아주 많은 민족들이 켈레웃인들과 싸우려고 집결하였다. 이는 다분히 아르팍삿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아시리아인들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사절들을 파견했다. 페르시아의 모든 주민과 서쪽 지방의 모든 주민, 곧 킬리키아, 다마스쿠스, 레바논, 안티레바논의 주민들, 해안 지방의 모든 주민, 카르멜, 길앗, 갈릴래아 고지대, 이즈르엘 대평야의 민족들, 사마리아와 그곳에 딸린 성읍들,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요르단 건너편 지역, 바타네, 켈루스, 카데스, 팔레스티나 남단 지역의 이집트 마린내’, 타흐판헤스, 라메세스, 온 고센 땅의 주민, 타니스와 멤피스 너머의 주민들에게까지, 그리고 심지어는 에티오피아 경계선에 이르는 이집트의 모든 주민에게까지 보냈다.

 

그러나 이 지방의 주민들은 모두 아시리아인들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말을 무시하고, 그의 편으로 전쟁에 가담하지를 않았다. 이유는 네부카드네자르를 한낱 필부로 여겨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의 사절들을 망신스럽게도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이 온 지방에 몹시 화를 내었다. 그러면서 킬리키아와 다마스쿠스와 시리아의 온 영토에 보복을 하고, 또 모압 땅의 모든 주민, 암몬 자손들, 온 유다 주민, 두 바다의 경계에 이르는 이집트의 모든 주민을 자기 칼로 반드시 처단하겠다고, 자기의 왕좌와 왕국을 걸면서 맹세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네부카드네자르는 제십칠년에 자기 군대와 함께 전열을 갖추고 아르팍삿 임금과 맞섰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그는 아르팍삿의 온 군대와 그의 온 기병대와 병거대를 패주시켰다. 그리하여 네부카드네자르는 아르팍삿의 여러 성읍을 차지하고, 엑바타나까지 이르러 그곳의 탑들을 점령하고 시장들을 약탈하여, 엑바타나의 영광을 거의 수치 수치로 바꾸어 버렸다. 또 아르팍삿을 라가우 산악 지방에서 사로잡고서는 자기 창으로 내리 찔러, 그를 완전히 파멸시켜 버렸다. 그러고 나서 자기의 연합 군대를 모두 거느리고 니네베로 귀국하였다. 그것은 굉장히 많은 전사들의 무리였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자기 군대와 함께, 무려 백스무 날 동안이나 쉬며 잔치를 벌였다.

 

그 후 네부카드네자르 제십팔년 첫째 달 스무이튿날 아시리아인들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왕궁에서는 그가 전에 말한 대로 그 온 지방에 보복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계속]

 

[참조] : 이어서 ‘4. 홀로페르네스의 공격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네부카드네자르,나보폴라사르,키루스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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