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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 부활 제4주간 목요일...독서, 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11 조회수1,309 추천수2 반대(0) 신고

1독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3

바오로 일행은 키프로스 서쪽 끝에서 밤필리아로 알려진, 오늘날의 터키 해안을 향해 북서쪽으로 항해했다. 베르게는 아딸리아 포구에서 19키로미터쯤 내륙으로 올라간 세스투스 강변의 항구도시다. 루카는 바오로 일행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바르나바보다 그를 더 부각시킨다.

 

요한이 왜 바오로 일행과 떨어져 예루살렘으로 갔는지 이유가 밝혀지지 않으나 이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이에 갈등이 생겨 서로 갈라지게 된다.

 

14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는 오늘날의 술타 다그의 남쪽비탈 지역에 자리잡은 도시로서 셀레우코스 니가틀이 창건했다. 셀레우코스 가문의 왕들은 많은 유다인을 프리기아와 리디아에 정착시켰는데, 안티오키아는 비시디아와 근접한 프리기아 지방에 속해 있었다.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는 기원전 25년부터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예수의 첫 설교처럼 바오로의 첫 설교도 유다인 회당에서 이루어진다.

 

15

이 시대에 유다인 회당에서 이루어진 예배 형식의 내용을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미슈나가 증언하는 예배 요소를 열거하자면 쉐마 낭송, 십팔 축문을 비롯한 축복의 기도, 율법서의 낭독 등이다.

 

루카의 저서에 나오는 회당장”, 루카 8.41.49‘13.14; 사도 18,8.17 이 낱말은 고대의 비문에서 일반적으로 안수로 나오는데, 여기서는 마르 5.22에서처럼 복수로 사용된다. 아마도 집단지도체제를 가리키기 위한 것 같다. 이 회당장들이 바오로에게 격려의 말씀을 청한다. 격려의 말씀은 방금 읽은 독서와 관련된 설교로 이해할 수 있다.

 

16

회당에서 설교하는 사람은 일어서지 않고 앉아서 한다. 루카는 헬라계 독자들을 위해 바오로를 그리스식 연설가로 묘사한다. 그래서 바오로로 하여금 유다인 회당에서는 불필요한 손짓도 하게 된다.

 

루카는 여기서 마치 하느님 경외자들을 본격적인 이스라엘인들과는 구별되지만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독립된 그룹처럼 소개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명칭으로 불리는 그룹이나 계층이 하나의 종교적, 사회적 신분으로 존재했는지는 의심스럽다.

 

17

7장의 스테파노 설교에서처럼 구세자가 성조시대로부터 간략하게 소개된다. 구세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루카 당시에 유행하던 설교 형식이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스테파노의 설교에서보다 이 구세사가 더 짧게 요약되어 있다. 이 요약문에는 칠십인역 어휘가 많이 등장한다.

 

이스라엘 하느님 백성이라는 주제는 루카의 문학적 또는 신학적 목적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게 하신 약속을 끝까지 지키셨지만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된 평화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복음은 자연스럽게 이방인들에게로 돌아간다.

 

18

스테파노의 연설에는 없는 정보다. 루카는 같은 내용을 말할 때 변형을 보이면서 문학적 기량을 발휘한다.

 

19

이 일곱 민족의 소개가 신명 7.1에 나온다. 요세푸스도 가나안의 일곱 민족에 대해 언급한다. 땅의 분배에 대해서는 여호 14.1 참조,

 

20

스테파노의 설교에서처럼 여기서도 연대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이 설교들에 역사적 사실같은 부여하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450년이라는 숫자가 나왔는가? 이집트 체류 400년 광야에서 40년 가나안 정복 기간 10, 이렇게 계산한 것 같다.

 

판관들은 가나안 진입 이후부터 왕정이 수립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셨던 영도력을 지닌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평화시에는 백성들의 송사를 주관했고 유사시에는 전쟁을 지휘했다. 오세푸스는 이 판관시대를 500년 이상 계속된 것으로 본다. 1 열왕 6.1에서는 출애급에서 솔로몬 왕의 성전 건축까지를 480년으로 본다. 학자들은 판관시대를 대략 200년으로 잡는다.

 

21

사울에 관한 언급은 1사무 10.21-24;11.15의 요약이다. 루카는 이스라엘 왕정제도에 대해 전혀 거부감을 가지지 않으며 예수께서 왕이라는 개념도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사울에 대한 루카의 기록도 중립적이다. 루카는 사울이 40년동안 다르렸다고 보고하는데, 이는 오세푸스의 증언과 일치한다. 요세푸스의 약간 의심스런 다른 본문에서는 20년으로 증언한다.

 

22

사울의 축출에 대해서는 1사무 15.23;16.1에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선택과 관련하여 사용된 동사 일으켜 세우다30절에서 예수의 부활에 적용된다. 이는 두 인물 위에 하느님의 능력이 활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시편 (LXX) 88.211사무 13.14와 이사 44.28을 혼합시킨 본문, 루카는 이처럼 칠십인역 그리스 성서 본문을 자주 혼합하여 인용한다.

 

23

이 강조형 대명사는 문장 첫머리에 위치하여 다윗과 예수를 연결짓는데, 사도행전에 자주 나온다.

 

24

요한과 예수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루카 1.17;3.2-20;5.33; 7.18-33; 9.7-9;11.1;; 16.16; 20.4-6; 사도 1.5.22; 10.37; 11.16 참조. 루카는 요한의 설교활동이 예수의 선교와 분명히 구별되고 요한이 예수보다 낮은 위치에 있음을 끊임없이 증언한다.

 

25

인생길은 직역: “경주또는 경주 장소”.

 

요한의 말은 루카 3,16-17에서보다 더 예수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6

예수의 모범을 따르고 예수의 권위에 근거한 행동을 하도록 강조하는 격언 같은 말이다.

 

17

이론과 실천, 지식과 행동의 일치를 강조한다. 진리와 사랑을 알고 실천함으로써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된다는 뜻이다.

 

18

유다의 배신행위를 암시하는 말로서 10절을 다시 반복한다. 문맥상 경고의 뜻을 지닌다.

공관복음처럼 시편 41.9를 임의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유다의 배신을 우선 성경 말씀을 토대로 이미 예견된 하느님의 섭리 차원에서 설명한다. 유다의 배신을 식사공동체의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로 특정지을 뿐 아니라, 예수의 주도권도 강조된다.

 

19

흡사한 형태가 고별담화 끝부분에도 있다. 유다의 배신이 실행될 때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금 일러둔다는 뜻이다. 이 믿음이 내가 그이다란 표현과 함께 그리스도론적으로 강조된다. 이해하기 힘든 유다의 배신행위가 이루어지더라도 예수는 여전히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요, 그 행위는 오히려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진 높이 들어올리는사건이라는 신학적 의미가 강조된다. 따라서 유다의 배신행위는 믿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예수의 정체를 드러내는 계기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

마태 10.40에도 보도되는 일종의 토막말로서 현 문맥에서는 제자들을 보호 또는 옹호하는 의미를 지닌다. 유다의 배신행위로 실추된 제자들의 위치와 역할을 보증하고 보호하고자 한다. 아무튼 제자들은 예수로부터 파견된 자들로서 예수의 계시와 구원 능력에 참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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