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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5 부활 제5주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14 조회수677 추천수2 반대(0) 신고

1독서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21-27
그 무렵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21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21

데르베에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만들었으니 이 도시에 대한 선교의 목적이 달성된 셈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곳을 떠나 안티오키아로 돌아간다.

 

22

바오로가 리스타라와 이코니온에 들른 것은 단순한 여행경로만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격리하기 위한 사목적 방문이었다. 정신을 굳세게 한다는 표현은 예수께서 체포되시기 전날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에도 나온다(루가 22.32).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표현에 대해 루카 18,23-25; 23.42 참조.

 

23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지역교회마다 원로들을 임명했다는 보고는 디도 1.5와 일치한다. 그러나 이 보고는 바오로의 친저 서간에 소개된 본격적 고동체 조직과는 거리가 있다. 루카는 단순히 자기 당대의 교회조직이 이미 바오로 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을 암시하기 해 이 구절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원로들은 예루살렘 지도부와 사도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에서 고별연설을 할 때 그 교회의 원로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인다. 단식과 기도의 특별한 기능에 대해 9.9; 13,2-3 참조.

 

25

아딸리아는 베르가몬의 왕 아딸로스 2세가 창건한 항구였다.

 

27

13-14장 전체의 이야기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 지역교회의 충실한 선교사로 묘사한다. 그들은 이 교회로부터 파견되었고 다시 이 교회에 돌아와 자신들의 선교활동을 보고한다. 하느님이 함께하셨다는 내용ㅇㄴ 요셉에 대한 언급과 예수의 공생활 요약에도 등장한다. 루카는 구세사의 위업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느님임을 언제나 강조한다. 이 구절에 나오는 믿음13-14장 전체의 주요 주제인 동시에 믿음이 구원의 중요한 조건임을 종식적으로 밝히는 15,9.22의 내용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2독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1,1-5
나 요한은 1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

구약성서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란 무엇보다도 상징적 의미로 메시아에 의해 선택된 백성의 재건과 개혁을 뜻했다. 그러나 종말론적 배경에서는 아마도 조ㅚ와 죽음의 무대인 이 세상에 대한 근본적 개혁의 의미로서,“새로운 창조를 뜻할 것이다. 이 개념들은 묵시문학 작품에서 자주 나타난다. “전에 있던 하늘은 없어지고 새 하늘이 나타난다. 하늘의 빛은 일곱 배나 밝을 것이며, 그 새로 창조된 것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종말론적 상황에 대해 말하는 신약성서 본문들에서도 이런 사상을 볼 수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면 무엇이 존재하고 어떠한 상태일지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되지만, 결국은 같은 개념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다. 슬픔잊혀지고, 죄는 없어지고 어둠은 사라질 것이며, 시간은 영원으로 바뀔 것이다.

 

고대 우주관에 의하면 바다는 혼돈이, 암흑의 권세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새로운 창조에서는 이러한 악의 자리가 없다. 이 사고방식은 바빌론의 티아마트설화에까지 소급될 수 있는데, 이 바다 신은 바다 깊은 곳에 갇혀 있다고 한다.

 

2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란 두 가지 구약성서 주제의 종합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종말론적 예루살렘의 실현이요 다른편으로는 백성들 사이에서 하느님 현존의 표징이었던 천상 하느님 현존의 원형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두 주제는 하느님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또 완성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거룩한 도시는 재림 때의 이상적이고 영광스런 교회를 표상한다. 교회는 거룩한 백성이 모이는 장소라는 의미에서도 예루살렘으로 불릴 수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교회가 인간적으로 실현되는 공동체가 아니랄 하느님이 세우고 인도하시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새 예루살렘의 이미지를 도성에서 여인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미 구약 전승에 예루살렘을 여인으로 표현하는 예가 있다. 어린양을 위해 단장한 여인은 화려한 옷과 표적으로 장식한 큰 창녀와 대조를 이룬다. 큰 창녀는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영광을 선포하기에 급급했지만 여인인 예루살렘은 오직 신앙인 주님만을 위해 살게 된다

 

3

레위 25,11-12; “내가 너희 가운데 나와 있을 자리를 정하고 너희를 저버리지 아니하리라. 나는 너희 가운데 살며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 말씀이 여기서 실현된다, 7,15-17에서처럼 사람들 가운데의 하느님 현존이 출애급의 범주 안에서 표현된다. 그리고 육화의 신비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된 하느님의 현존을 최종적으로 성취된다.

 

이사 7.14임마누엘에 관한 예언이 최종적으로 성취된다.

 

4

이미 7.17에서 인용된 이사 25.8의 실현이다: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나의 주님 야훼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벗겨 주시리라.”

 

 

 

 

 

 

복음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3.34-35
방에서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31

최후만찬 자리에서 떠난 유다의 행방은 18.1-에 보도된다.

예수가 십자가에 들어올려져 영광스럽게 되는 시간. 곧 예수 죽음의 시간을 가리키는, 사건의 전환점을 뜻한다.

영광스럽게 되었다란 과거 형태는 배신자 유다가 떠나간 시점에서 언급된 표현이다. 유다가 떠남으로 인해 예수가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이미 왔기 때문이다. 배신의 밤은 곧 영광의 시간이다. 십자가상 죽음이 임박했고 그 죽음으로 인해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 안에서또는 (사람의 아들)한테서라고 직역할 수도 있다.

 

32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란 미래 형태는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한 것에 대한 하느님의 대응적 특성을 시사한다.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이 서로 영광스럽게 하는 상호적 관계가 언급된다.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이 서로 영광스럽게 하기 때문에 하느님이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이란 시간적 표현으로 강조된다. 이란 표현은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을 극도로 영광스럽게 하는 시간, 곧 십자가상 죽음을 가리킨다.

 

33

직역하면 어린애들이여라고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칭호는 스승이 제자들을 귀엽게 여겨 부르는 일종의 애칭이기 때문에 문맥상 의역했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음 아픈 이별을 해야 하는 엄연한 사실을 예고한다. 따라서 예수의 이 말은 유당니들에게 말한 것과는 문맥상 전혀 다른 역할을 한다. 유다인들에게는 영원한 이별이 되겟지만 제자들에게는 지나가는 일시적 이별이 될 것이다.

 

34

이웃사랑에 관한 구약성서 계명에 대한 반명제가 아니라, 사랑에 관련된 예수의 인품과 행동을 표현한다. 예수의 사랑 계명이 새롭다는 것은 예수의 사랑이 가득한 봉사와 죽음으로서의 헌신을 통해 그 사랑의 유일무이한 특성이 나타났다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이 몸소 놀라운 무조건적 사랑을 새롭게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 실천의 새로운 방식을 시사한다. 예수가 사랑한 대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이웃사랑을 새로운방식으로 실천하여 삶의 장이 새롭게되는 것이다. 새 계명은 제자들과 이별을 예고하는 맥락에서 언급되므로 마지막 유언의 특성을 지닌다.

 

사랑 실천의 척도와 동기와 근거를 제시하면서 새 계명의 실천을 더욱 강조한다.

 

35

사랑 실천이 곧 예수와 함께하는 제자 신분을 나타내는 표징이라는 뜻이다. 이 표징을 통해 모든 사람이 예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또한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새 계명의 표현성과 영원한 유효성도 시사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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