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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저절로 되지 않으면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작성자김 글로리아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04 조회수97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2년 다해 성령 강림 대축일 

 

 

 

 

<저절로 되지 않으면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복음: 요한 20,19-23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 전도연은 아들이 유괴되어 잃고 신앙을 가지고 용서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겠다고 교도소로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미 하느님께 용서받았다며 편안해하는 그를 보면서 분노를 삭이지 못합니다. 교회도 나가지 않고 교회에 돌을 던지고 자해까지 시도합니다. 

 

 

    이 영화는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면서도 과연 진정한 용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왜 전도연은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진정한 용서가 되지 않았을까요? 성령을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용서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힘이 듭니다. 힘이 들면 언젠가는 포기하게 됩니다. 

전도연이 진정 기도하여 성령의 힘으로 용서하였다면 상대가 용서받았다고 해도 분노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은 이렇게 힘든데 가해자가 힘들지 않다고 말하니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 가운데 특별히 ‘용서’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이는 분명 교회에 성령의 힘으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내려주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용서에서도 성령의 힘이 작용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내가 하는 용서와 성령의 힘으로 하는 용서의 차이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하는 용서와 내가 하는 용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성령은 불가능한 일까지도 가능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용서를 하려는 이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트레이 랠포드가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2015년에 피자 배달하던 22살 청년 살라후딘 지트무드를 무참히 살해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재판정에서 학교 교장이자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인 희생자 아버지 솜밧 지트무드가 아들을 죽인 살인자에게 증언합니다. 

    “트레이 알렉산더 랠포드, 나는 당신이 가엾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어서요. 내가 도와주고 싶습니다. 선량한 시민으로 자라도록 아들을 도운 것처럼요. 살라후딘이 여기 있었다면, 살아 있었다면, 당신을 용서했을 겁니다. 그게 아들의 방식이에요. 나는 당신에게 화가 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내 아들을 해쳤다고 해서요. 나는 악마에게 화가 납니다. 악마를 탓합니다. 당신을 잘못 이끌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도록 인도했으니까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전혀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걸 꼭 알아주세요.”

 

 

    트레이는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것입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말을 이어갑니다. 

    “아들과 아내를 대신해 당신을 용서합니다. ”

한 인터뷰에서 지트무드는 아직도 아들이 죽은 악몽을 계속 꾼다면 힘들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가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믿음 때문임을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화가 나지 않지만, 저 자신을 탓합니다. 보호해주지 못해서요. 목이 완전히 잘려 나갔어요. 끝없이 슬퍼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죽인 그 남자를 여전히 미워하지 않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인생에 우연이란 없고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죠. ‘아들은 22세에 죽는 걸로 적혀 있구나.’ 알라신이 아들에게 멋진 22년 인생을 내려줘서 감사하다고 느꼈습니다.”

 

 

    믿음엔 이미 성령의 힘이 작용합니다. 저는 타 종교 안에서도 성령 강림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위험한 말이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솜밧 지트무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또 무너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자기 아들을 저렇게 무참히 살해한 살인자를 용서하였다면 그것은 성령의 힘입니다. 그가 믿는 종교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또 다른 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전해주시는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안아줍니다. 눈물을 닦으라고 수건도 줍니다. 성령으로 하는 용서의 특징은 나의 용서가 힘들지 않기에 상대와 함께 있는 것도 힘들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이 자기 아들을 죽인 이를 용서한 것은 분명 내 힘으로 한 용서입니다. 비록 그리스도를 믿어도 성령의 힘으로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미워하며 사는 게 싫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용서입니다. 이 용서에는 힘이 없습니다. 상대를 보는 것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한 용서는 상대와 함께 머물고 싶습니다. 원수를 보는 것이 괴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바자는 술을 마시다 총기가 오발로 발사되어 절친 도널드 로렌트를 사망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죄를 뉘우치며 도널드의 가족이 원하면 평생을 감옥에서 살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도널드의 부모는 오히려 그의 가석방을 추진하고 그가 나왔을 때를 대비하여 숙소와 일자리까지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용서하면 상대를 보는 것이 매우 괴롭습니다. 하지만 도널드의 부모는 자기 아들을 죽인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오히려 그렇게 용서할 수 있게 만든 힘이 자신들 안에 있음을 되새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정원 씨의 용서도 성령으로 한 용서입니다. 고정원 씨는 유영철을 만나려 했고 유영철을 통해 성령의 힘을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영철을 자기 양자로 삼았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은인으로 여기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용서로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나를 위한 내 힘으로 하는 용서여야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위한 주님 힘을 통한 용서여야겠습니까? 성령 강림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용서를 통해 성령을 체험하라고. 

    마리아 고레티는 자신을 찌른 사람과 천국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성령의 은총을 받게 한 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 때문에 그를 용서하는 게 힘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힘들면 안 됩니다. 성령의 힘으로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만 성령을 받으려는 노력은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기도’입니다. 제가 보좌 신부 때 한 자매는 일주일 동안 한 시간씩 성당에 앉아 있는 노력을 했는데 바람 나서 나간 남편이 용서되었고, 다른 자매는 일 년 동안 그렇게 했더니 남편이 미워 보이지 않고 불쌍해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들어오면 이전처럼 남편을 잘 대해줍니다. 아직도 바람을 피우고 있지만 그를 보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힘으로 하는 용서입니다. 



    내가 용서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힘들지 않을 때까지 성당에 앉아 있으십시오. 주님께서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 무슨 일을 합니까? 다만 나무에 붙어있는 노력만 할 뿐입니다. 그러면 성령강림이 일어납니다. 성령강림이 일어나면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맺힙니다. 성령께서는 하려고는 하되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아는 이에게 오십니다.



 https://youtu.be/sWkBxF_-xaY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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