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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05 조회수1,013 추천수2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교부 시대부터 쓰였는데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에서 마리아에게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부여하였다마리아는 성령 강림 이후 어머니로서 교회를 돌보았고여기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 드러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하였다.

 

 

 

1독서
<그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기도에 전념하였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2-14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
12 사도들은 올리브 산이라고 하는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 산은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에 가까이 있었다.
13 성안에 들어간 그들은 자기들이 묵고 있던 위층 방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아필립보와 토마스,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혈당원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였다.
14 그들은 모두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2

루카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장소를 올리브 산이라고 밝힌다올리브 산은 예루살렘 입성 장면에 등장하는 장소로 루카는 이곳을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는 동안 밤에 물러가 쉬시던 곳으로 소개한다루카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장소를 올리브 산에 있는 베다니아라고 밝히는데

 

실제로 베다니아와 올리브 산은 같은 장소가 아닌 것 같다안식일에 멀리 걸어가면 안식일 노동금지 규정을 어기는 것으로 여겨진다안식일에 걸어도 괜찮은 거리는 약 1키로미터다올리브 산은 예루살렘 동쪽 산으로시내에서 키드론 골짜기를 건너면 곧바로 발길이 닿는 곳이다.

 

13

다락방은 기도하기에 알맞은 장소다루카가 예수께서 최후만찬을 드신 이층방과 같은 방이라고 여겼는지 아닌지는 밝힐 수 없다루카 24.50-53의 승천기에선 이층방에서 기도했다고 하지 않고 언제나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지냈다”(53)고 한다다락방은 원래 유다의 지식인들이 서로 모여 성서와 율법을 공부하고 기도하기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다물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주거지로 이용될 수도 있었다.

 

전통적 해석으로는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인 이유가 유다인들이 무서워 숨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이는 루카 24.53의 그들은 언제나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지냈다는 표현과 모순된다성전에서 기도하는 일은 공적 장소에 자신들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사도행전에는 제자들이 유다인들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 다락방에 모였다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루카의 의도는 예수의 승천 뒤 예루살렘에 돌아간 제자들이 일반적으로 기도시간과 예배시간에는 성전에 갔고 나머지 기간에는 다락방을 숙소로 정하여 높은 데서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그곳에서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13절의 사도 명단은 루카 6,14-16의 명단과 같다마르 3,16-19에도 사도 명단이 있는데거기서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대신 타대오라고 한다사도행전에서는 처음 세 사도의 활약상만 전한다야고보와 요한은 형제인데헤로데 대왕의 손자 아그리빠 1세가 43년 또는 44년 해방절 전에 야고보를 참수했다. “열혈당원 시몬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에 열혈당원이었다기원전 4년 갈릴래아 출신 유다와 바리사이 사독이 로마 압제에 반기를 들어 열혈당을 조직했다.

 

14

그리스도인들 또는 복음에 동조하는 이들은 한마음으로” 처신한다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적수들도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한다.

부인들은 루카에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갈릴래아 출신 마리아헤로데의 신하인 쿠자의 아내 요한나수산나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 그리고 일요일 새벽에 예수의 빈 무덤을 확인한 여자 가운데 하나인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등이제 그들도 사도들과 더불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루카복음에서 예수의 탄생사와 유년사예수의 면회 장면에 나온다사도행전의 경우 성모 마리아는 1.14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온다그런데 이곳에서 그분이 차지하시는 위치와 역할은 각별하다루카복음서에서 마리아는 메시아 예수를 탄생시키기 위해 성령의 힘을 받는데여기서는 교회를 탄생시키기 위한 성령의 선물을 기다린다그분은 예언의 영을 받는 이스라엘의 딸들을 대표한다.

 

예수의 형제들은 야고보.요셉.시몬이 가운데 야고보는 부활하신 예수를 뵙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또한 부인을 동반하고 이스라엘 전도도 했다. 62년 대제관 아난에게 돌로 쳐죽임을 당했다이스라엘에서는 형제란 친동기를 뜻하기도 하고 그냥 가까운 친척을 뜻하기도 하는 까닭에 여기 예수의 형제들이 친동기인지 아닌지 밝히기 어렵다개신교 주석가들은 친동기로 보고 천주교 주석가 대부분은 가까운 친척들로 본다.

 

 

 

 

 

 

 

 

복음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5-34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25

네 군인과 대조하여 네 여인이 의도적으로 서술된 듯하다군인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감시하는 반면에여인들은 참고 기다리면서 지켜보는 모습이다. “그분 어머니의 자매는 제베대오의 아들들의 어머니 살로메를 가리키는 듯한다.

 

26

여기서는 충실한 제자로서 또한 십자가사건의 목격증인으로서 시사된다(19.35; 21.24 참조).

 

27

십자가상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말한 이 두 마디는 간곡한 당부의 특성을 지닌다표면상 우선 죽어가는 아들로서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시사된다, “애제자는 지상 아들 예수를 대신하고 마리아는 그 제자의 어머니 관계를 가지도록 예수는 마리아와 애제자의 일치를 원하고 당부한다하지만 요한복음 전체 맥락에서 보면예수의 이 원의와 당부는 더 깊고 구체적인 의미를 시사한다, “부인이란 호칭은 가나 혼인잔치에서도 보았듯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독특한 관계를 신학적으로 뜻한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는 예수로부터 오는 구원을 찾고 기다리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예수의 선물을 청하는 자상한 모습을 드러냈다그런 마리아에게 예수는 포도주를 선물함으로써 마리아의 청이 이루어졌다면이제 그 청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시사된다마리아는 예수 자신의 애제자를 아들로 맞아들여 함께 머물고그 아들은 어머니의 청을 중재하고 예수가 남긴 것을 계속 드러내 보일 것이다.

 

예수로 인해 맺어진 이 모자관계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예수와 그 공동체가 비롯된 어머니의 품안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그리스도인은 마리아 안에서 메시아적 구원을 기다리는 자라는 뜻이 시사된다마리아가 구원을 찾는 자들을 대표한다는 관점은 애제자의 역할로 인해 더욱 강조된다그 제자는 예수의 내적인 것을 직접 들을 수 있을 만큼 신뢰받은 제자요 예수의 졔시를 설명하도록 부름받은 신앙인이며 동시에 믿음으로

 

깨달은 자다인간을 위한 예수의 자기계시와 구원계시곧 예수의 복음을 중재하고 설명하는 제자다곧 예수의 복음을 중재하고 설명하는 제자다따라서 애제자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어머니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마리아로 하여금 어머니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이런 맥락 가운데 애제자가 주께서 오실 때까지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말도 유의해 볼 만하다그러므로 십자가상 예수의 이 말은 자기계시의 내용이 널리

 

지속적으로 전파되어 결실을 맺도록 바라고 돌본다는 의사표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애제자는 구원의 문을 연 마리아와 함께 그 증인으로 언급된다(35절 참조).

 

예수가 지상에서 아버지께로 가는 시간을 가리킨다.

 

직역하면 그 제자는 그분을 자기 것들 안으로 받아들였다”, 단순히 을 가리키기보다 정신적 의미로 소유를 뜻한다그 제자는 예수의 어머니를 영적 공간 안으로 맞아들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사도 1.14 참조).

 

28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과 연결짓는 표현이다동시에 예수의 마지막 사건이 아직 덜 이루어졌음도 시사한다.

 

예수는 이 세상에서 부여받은 임무를 이미 완성했다는 것을 뜻한다원문에 따르면,“끝까지 행하다라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예수가 내적으로 미리 안다는 표현은 요한복음의 그리스도상에 속한다특히 수난사에서 예수의 이런 모습은 죽음의 시간을 알고 있다는 의미로 더욱 돋보이게 묘사된다여기서도 그런 맥락 가운데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다문맥상 예수의 인식은 예수 자신의 길에 대한 인식이요 동시에 예수 자신의 과업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가리킨다.

 

성경(말씀)이 이루어진다는 표현과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여기서는 성경 말씀 전체가 완전히 마지막으로 다이루어진다는 질적 의미가 강조된다.

 

29절의 식초와 함께 생각할 때이 짤막한 말은 시편 22.16보다 오히려 시편 69.22와 더 관련되어 있다십자가상 예수의 육체적 갈증은 지독한 고통이요 쓰라린 슬픔이다하지만 목마르다라는 표현은“(이루어졌다는 예수의 마지막 말과 연결되어 더 깊은 의미를 시사한다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음식은 자신을 파견하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다 이루는 것이다또한 예수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을 마셔야 한다따라서 배고픔과 갈증은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다 이루고자 하는 갈망의 형상어에 속한다그러므로 목마르다란 예수 자신이 수난과 죽음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다 마시겠다는 원의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예수가 식초를 받았다는 표현도 바로 이 점을 더욱 강조한다.

 

29

가난한 서민층이 마시는 신 포도주나 물과 섞어서 마시는 신맛나는 강한 청량제를 가리킨다그러나 여기서는 시편 69.22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쓰디쓴 음료를 가리킨다이 음료는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죽음의 고통에 대한 하나의 형상어다.

 

솔잎처럼 가는 잎사귀가 많이 달린 식물로서 특히 어떤 액체를 뿌리거나 마를 때 많이 사용된다원전에는 히솝이 아니라 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0

예수 자신이 지상에서 수행해야 하는 일을 다 이루었다는 뜻이다예수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는 이로서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의 임무를 지상에서 다 완성한 예수는 평화로이 의식적으로 아버지께로 간다예수의 승리를 시사한다여기서 “”은 성령이 아니라 예수의 인간적 “, 곧 심령이나 생명력을 가리킨다예수가 을 아버지께 넘겨주었다는 것은 예수 자신이 죽음을 적극적으로 또한 의식적으로 맞이했음을 뜻한다예수는 죽음의 운명을 아버지로부터 받아들였고 또한 아버지께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31

해방절 준비일을 가리킨다그 다음날이 안식일이니 금요일에 해당된다.

 

해방절과 안식일이 겹치기 때문에 중요한 축일이라는 뜻이다.

 

유다인들의 규정에 의하면기둥에 처형된 자의 시체는 축복의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당일 저녁이 되기 전에 반드시 치우도록 되어 있었다그런데 여기서는 특히 안식일과 관련짓는다아마도 안식일로 인해 시체 치우는 일이 뒤로 늦추어질 가능성을 시사한 듯하다유다인들은 형집행을 빨리 마무리짓고자 한 것이다.

저자는 유다인들이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상에서 되도록 빨리 치워 버림으로써 유다인들의 왕으로서 공포되지 않기를 원했다고 말하고자 한 듯하다로마인들은 시민들의 범법행위를 막기 위해 처형된 자의 시체를 온종일 기둥에 그대로 두었다.

 

유다인들은 특히 대제관들을 가리킨다(23절 참조).

 

다리를 꺾어서는 죽음을 앞당기기 위한 일종의 처형방법이었다.

 

33

다리를 꺾는 일도 예수를 중심으로 묘사된다(19절 참조).

 

34

그리스도인들의 전설에 의하면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군인의 이름은 문지노다이 이름은 그리스어 롬케(”이라는 뜻)에서 연유된 라틴어 음역인 듯하다그리고 공관복음에서 언급된 백부장과 동일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예수의 죽음을 눈으로 보고서 다리를 꺾지 않는 대신에 창으로 찔러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따라서 옆구리보다는 심장을 찌른 것이 더욱 이치에 맞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옆구리의 상처는 부활한 예수의 중요한 표적으로서 언급된다(20.20.27).

 

다양하게 해석되는 구절이다예수의 죽음을 구원적 의미로 보면서 제2의 아담인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는 교회 또는 성체와 세례 성사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이에 비해 예수의 죽음에 대한 사실 확인과 보증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여기서도 두 견해로 나뉜다하나는 그리스도의 가현설에 대한 반박적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다.

 

다른 하나는 예수의 분명한 죽음에 대한 사실적 확증으로만 해석하는 견해다이 견해는 예수의 역사적 수난 보도 차원에서 볼 때 가장 타당하다그러나 목적 증언의 증언에 대한 진실성과 증언의 목적이나 의도가 언급된 대목과 함께 고려할 때상징적이고 신학적 의미가 배제될 수는 없다하지만 예수의 수난사는 어떤 기적 보도와는 거리가 말고, ”피와 물이 나온

 

것은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결과를 묘사한다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분명히 죽었다는 확증이 당시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인간은 피와 물이 절반씩 섞여 구성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자연적 사건 과정을 예수의 수난사 보도 가운데 언급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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