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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 나를 사랑하니?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10 조회수931 추천수3 반대(0) 신고

복음과 독서의 내용을 보니 어제 저의 하루를 요약한 것 같습니다. 어제는 지난 월요일에 32년 만에 만나 뵌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주신 커피를 가지고 등교를 하였습니다.

 

냉장고에 넣어 두어서 시원하고 무농약 커피라고 해서 아주 아끼고 있다가 어제 그것을 먹었습니다.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커피 원액 자체가 너무 진한것입니다. 그것을 아무런 생각없이 먹었습니다. 먹고 나서 속이 난리가 난것입니다.

 

토하고 설사를 하고, 속이 고장이 나서 화장실을 자주 들락 날락 하였습니다. 도저히 학교에서 정상적인 연구가 불가하여서 짐을 챙겨서 집으로 귀가 하였습니다. 일반 배탈이 난것과는 거리가 먼 그런 아픔이었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계속 토하려 하고 음식물을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잠을 청하려 하여도 겁이 났습니다. 어렵게 잠을 잤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정성들여 주신 것을 먹고 나서 배가 탈이 난것이라 선생님에게 무어라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것은 선생님이 부탁한 것, 선생님 회사에 연구소장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그것은 않할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음식은 제가 모르는 것이라 아무리 선으로 행동하려 하여도 연구소장으로 역할은 사양할 생각입니다.

 

선생님을 만나서 기쁘기도하고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상기 사건을 격으면서 내가 좋은 의도로 다가서려 하여도 나 같이 모르는 사람이 연구소장을 하면 나중에 저같이 배가 탈이 나면 그것을 설명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선생님에게 짐이 될것 같아 사양하려 합니다.

 

살아남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나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정확히 아는 것은 어둡고 밝음을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정확히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앙도 냉정함이 요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엘리야는 두번의 풍파를 격으면서 그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 풍파가 넘어가고 나서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영적인 감각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파고 속에서 그 파고의 높이를 보고 하느님의 뜻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나의 길을 찾는다면 100% 인간 패인이 됩니다. 파고를 견디어 내고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 인내가 결국은 승리로 이끌어 갑니다.

 

주님도 사람들이 죄수로 몰아가서 십자가의 사형수로 생이 끝이 났지만 그 비탄 속에서 자신의 생이 끝으로 여기신 분이 아니고 끝까지 그 파고의 아픔을 격고 기다리셨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 잔잔한 가운데 다시 일어나셔서 우리 앞에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과 실의에 찬 우리를 깨우시고 무릎을 다시 세우도록 말씀하십니다. 독서에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오늘 복음은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지체가 의미하는 것은 삶의 집착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 주님 중심의 것이냐 아니면 나 중심의 것이냐?

 

나 중심의 것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만일 내가 몸이 않좋아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았더니 큰 병이 발견이 되었다면 죽음의 두려움과 병이 회복 못할 것이 두려워서 하느님과 대화를 단절한다면 그것은 더 큰 좌절을 맛볼것입니다.

 

앞서 독서에서 엘리야가 파고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듯이 나에게 오는 큰 파고의 고통속에서 좌절은 주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과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일종의 시험입니다. 너 나 사랑하니? 그 질문이 삶의 파고 속에서 오는 진정한 질문이고 답입니다. 정말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나? 입으로만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그 질문을 하고 계신것입니다.

 

이젠 답을 해드려야 할 시점입니다. 저에게는 당신이 전부이고 나의 이 파고의 넘어에 당신이 열어 주실 것이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답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당히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 가신것이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다시 질문하십니다. 너 나 사랑하니? !!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질문하여 보세요. 너 나 사랑하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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